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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9화
PAYLUA ORIGINAL · 제9화

9화. 잔액 0의 사람들

빚을 먹는 금고 · 5,557자

오프라인 책장
서강재의 손이 장부를 향해 뻗었다. 우빈은 망치 손잡이로 그 손을 쳐냈다. 뼈를 때린 감촉이 아니라 두꺼운 책 표지를 친 듯한 반동이 돌아왔다. 서강재는 비틀거렸지만 정신은 돌아왔다. "다은이는 저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손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어릴 때부터 저를 오빠라고 부른 적이 없어요. 형이라고 불렀습니다." 장부에서 나온 그림자는 한순간 균열이 생겼다. 마른 얼굴의 여자가 눈썹을 찌푸렸다. "검증되지 않은 개인 기억을 공식 기록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그래요? 그런데 당신 공식 기록에는 제 동생이 저를 오빠라고 부른다고 써 있습니까?" 그 질문은 대답이 필요 없었다. 그림자의 발밑부터 검게 변했다. 아이의 윤곽이 무너지며 수십 장의 신청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강재는 종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가족 상봉 재청구 / 가상 이미지 제공] "사람의 마지막 소원까지 흉내 내는군요." 그가 낮게 말했다. 여자는 장부를 닫았다. 그녀 뒤의 직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우빈은 소라를 통로 쪽으로 밀었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덤벼드는 직원들을 피하며 좁은 계단을 올랐다. 계단 난간에 손을 대자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타인이 빚을 갚아 주겠다는 약속을 기다리는 감정. 낯선 아이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 어쩌면 누군가 여기에서 자신을 담보로 맡겼던 기억이었다. "계단에는 손대지 마세요." 소라가 외쳤다. 그녀는 가방에서 비닐장갑을 꺼내 우빈에게 던졌다. 현금자동입출금기나 공공전화기를 만질 때 쓰던 일회용 장갑이었다. 우빈은 장갑을 끼고 난간을 놓았다. 머릿속을 파고들던 감정이 희미해졌다. 계단 끝 문을 열자 지상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왔다. 바깥은 아직 어두웠고, 멀리 건물 옥상 사이로 구름이 천천히 흘렀다. 도로의 차들은 평범하게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 어깨 위로 엷은 숫자가 떠 있었다. [계약 대기] [정산 대상] [명의 확인] 우빈만 보는 줄 알았던 글자를 소라도 보고 있었다. 서강재도 걸음을 멈췄다.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왜 사람들이 저렇게 보이죠?" "원본이 열린 거야." 서강재의 목소리가 떨렸다. "복제품끼리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도시 전체의 채무를 한곳으로 모으고 있어요." 그들이 건물 앞 광장에 이르렀을 때 처음 이상을 알아챈 사람은 청소 노동자였다. 그는 휴지통에 버려진 영수증을 집어 들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종이 한 장이 그의 손바닥에 착 달라붙었다. "이거 뭐예요? 접착제야?" 주변 사람들이 달려왔다. 우빈은 그들을 밀치고 청소 노동자에게 다가갔다. 손바닥에 붙은 영수증에는 카드 결제 내역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 편의점에서 산 생수 한 병 값이었다. [채무 인수 의사 확인] "이 종이 어디서 났어요?" "쓰레기통에…… 전 버리려고……" 청소 노동자가 말했다. 서명하지 않았다. 누군가 물은 적도 없었다. 우빈은 영수증 끝을 잡고 조심스럽게 떼었다. 종이는 피부에 달라붙어 찢기지 않았다. 청소 노동자의 손등에 작은 숫자가 하나씩 생겨났다. "누가 돈을 썼는지 알아요?" 소라가 물었다. "모르죠. 제가 쓴 것도 아닌데." "그럼 당신 것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 것도 아니에요." 우빈이 망치를 내려놓았다. 그는 손바닥을 종이 위에 얹지 않고 청소 노동자에게 자기 이름을 다시 말하게 했다. 남자는 이름을 말했다. 손등 숫자가 줄어들었다. 낯선 빚이 정체를 잃자 영수증이 떨어졌다. "그게 되네요?" 소라가 중얼거렸다. "저 사람은 빚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아직 명의가 확정되지 않았던 거죠." 서강재가 설명했다. "하지만 한 번 승인됐으면 이렇게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빈은 길가의 쓰레기통들을 바라봤다. 오래된 전단지와 영수증이 바람을 타고 도로에 날리고 있었다. 저 종이가 모두 다른 사람의 이름과 삶을 훔치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도시 전체에 뿌릴 생각인가 보군요." 청소 노동자가 손을 털어 내자 가장 가까이 있던 여자가 자기 지갑을 꺼냈다. 여자는 편의점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그녀가 건넨 물티슈로 손바닥을 문질렀다. 검은 잉크가 조금 묻어났지만 이상한 숫자는 더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 거죠?" 청소 노동자가 물었다. "아직 장담은 못 해요. 그래도 남의 빚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괜찮을 겁니다." 우빈은 솔직히 말했다. 당장 모든 것을 아는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몇 시간 전 자신도 금고 앞에서 다른 사람 말만 믿었다. 무턱대고 괜찮다고 장담해 주는 것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었다. 야간 근무 여자가 말했다. "요즘 새벽마다 이런 사람이 생겨요. 영수증을 버린 다음 계산한 적 없는 금액이 찍혔다고 싸우는 손님이 있어요. 저는 기계 오류라고 생각했는데." "신고한 적은 없어요?" "몇 번 했죠. 그런데 문제없는 거래라고 답을 받았어요. 손님이 물건을 사 갔다는 기록은 있는데, 물건은 진열대에 그대로 남아 있었거든요." 소라는 작은 수첩을 꺼내 시간과 장소를 적었다. "영수증을 가져올 수 있나요? 개인 정보는 가리고요. 거래 시각만 있어도 됩니다." 여자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가방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거 아까 손님이 두고 간 거예요. 이상해서 버리지 못했어요." 종이에는 결제 금액 0원, 취소 금액 0원이 찍혀 있었다. 얼핏 보면 아무 문제 없는 영수증이었다. 하지만 맨 아래에 작은 글씨로 '책임 이관 예정'이 적혀 있었다. "이 영수증을 아무 데나 두지 마세요." 우빈이 말했다. "저 종이가 사람을 찾아갈 수도 있어요." 세 사람은 종이를 비닐봉지에 밀봉했다. 우빈은 주머니에서 공업용 테이프를 꺼내 봉지를 봉했다. 종이는 안쪽에서 꿈틀거렸지만 곧 움직임을 멈췄다. 닫힌 봉지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글자는 없었다. "완전히 막은 건 아닙니다." 서강재가 설명했다. "우리가 어떤 거래를 인정했는지 모른 채 서류에 손을 대면 다시 움직일 수 있어요." 소라는 청소 노동자와 야간 근무 여자에게 필요한 연락처를 남겼다. 두 사람 모두 여전히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지만,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에는 조금 안도한 듯했다. 길을 건너면서 우빈은 문득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빚의 장부와 달리 이 기록은 누군가를 강제로 묶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를 봤고 들었다는 증언을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 차이는 한 사람의 동의가 있었느냐는 데 있었다. "소라 씨. 우리가 모으는 기록도 위험해질 수 있겠네요." "그래서 제가 동의를 묻는 거예요. 기억하지 못할 일을 대신 기억해 주는 것과 누군가의 이름을 훔치는 건 다르니까요." 우빈은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자신은 아버지를 찾는 것뿐 아니라, 애초에 무엇이 사람의 책임인지 배우고 있었다. 도로 신호가 바뀌었다. 삼거리 맞은편에서 출근 버스가 첫 운행을 시작했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아직 잠이 덜 깬 아이를 안고 있었고, 누군가는 도시락 가방을 지켜 쥐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누구도 하루를 공짜로 살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하루의 수고를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가져가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 사람은 인근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에서는 대출 원리금 상환 유예 정책을 홍보하는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광고 출연자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고객님의 부담을 다른 곳으로 옮겨 드립니다.' 소라가 리모컨으로 화면을 껐다. 그러나 검은 화면 위에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일괄 채무 조정 / 시범 운영] [서비스 시작: 06:00] "새벽 여섯 시?" 우빈은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네 시 사십 분이었다. 어머니와의 관계 보류도 오래 남지 않았다. 소라가 노트북을 켰다. 예전에 금융사기를 당했던 업체의 계약 문서를 다시 검색했다. 회사명은 다르지만 같은 주소, 같은 대리인, 같은 문구가 반복되었다. '채무 관계를 신속하고 편리하게 조정해 드립니다.' "이건 대부업체 하나의 사기가 아니에요. 이름만 바꾼 여러 회사가 같은 프로그램을 쓰고 있어요." 화면에 연결된 사업자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생활안심 보증, 새빛 채무조정, 미래 가족 보호 서비스. 가입 대상과 광고 문구는 달랐지만 모두 원본 불일치 때 채무를 외부에 이관할 수 있다는 특약을 품고 있었다. 서강재가 낮게 말했다. "원본 소유자가 없는 책임. 그걸 매일 수천 명에게 나눠 씌우면 누구도 시작점을 찾지 못합니다." 우빈은 손바닥을 꽉 쥐었다. "누가 그걸 원하는 거죠?" "금고를 운영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빚을 누군가에게 넘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모두요." 소라가 말했다. 그녀는 문서 하나를 확대했다. [종합 조정 플랫폼 / 최종 테스트] [작업 주소: 제2정산소 물류센터] "거기로 가야 해요. 00번 금고가 거기 있다고 했잖아요." 세 사람은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창밖의 도로에 사람들이 하나둘 서 있었다. 멀쩡히 걷던 시민들이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입에는 비슷한 말이 맴돌았다. "확인만 누르면 된대." "빚이 없어지면 좋잖아." "나랑 상관없는 일이겠지." 우빈의 휴대전화에도 알림이 떴다. [긴급 채무 경감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동의 후 즉시 원금 100% 감면] 그는 화면을 끄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자신도 똑같이 생각했다. 서류를 넣으면 빚이 사라진다. 더는 가족을 괴롭히지 않는다. 결과만 보면 그보다 쉬운 선택이 없었다. 그러나 그 결과를 감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자신을 잊을 뻔했다. 제2정산소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폐백화점 물류센터였던 건물은 마치 아직 영업 중인 것처럼 불이 켜져 있었다. 출입구 옆에는 '고객 부담 제로'라고 적힌 새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출입문 앞에 열두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나이도 옷차림도 다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모두 손에 종이 한 장씩을 들고 있었다. 맨 앞 노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들한테 빚을 안 물려주려고 왔어요." 뒤편 청년이 말했다. "동생 학비만 좀 막아 주면 돼요." 서강재가 창백한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저 사람들 전부 자발적 신청자로 등록돼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막기가 어려워요." 우빈은 사람들 앞에 섰다. "서명하기 전에 원본부터 보여 달라고 하세요. 여러분 빚이 진짜 누구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그를 밀쳤다. "남의 사정 모르면 끼어들지 마세요. 누가 좋아서 여기 왔겠어요?" 맞는 말이었다. 우빈은 더 말하지 못했다. 그들도 자신처럼 마지막 희망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때 건물 안쪽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우빈 씨. 대표 신청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열두 사람이 동시에 그를 돌아봤다. 그들 손의 종이에는 방금 전까지 없던 서명이 떠올랐다. [정우빈 / 대표 보증인] 서강재가 신음했다. "지금 들어가면 밖에 있는 사람 열두 명의 책임까지 같이 져야 합니다." 우빈은 닫힌 정산소 문을 바라봤다. 어머니를 구하려면 문을 열어야 하고, 문을 열면 누군가의 빚이 자신에게 쏟아진다. 마침내 그는 아버지의 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럼 문을 부수죠. 손잡이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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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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