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00의 두 번째 상품은 여섯 지역의 이름을 달고 있었다.
모두 전날 서람중앙역에 관한 이야기가 퍼졌던 곳이었다. 한 곳은 역사 인근의 상가였고, 다른 한 곳은 시립병원이었다. 나머지는 복지관, 임시보호소, 물류 창고와 오래된 아파트 단지였다. 그곳에 당장 재난이 발생한다는 증거는 없었다. 다만 ‘위험을 알린 사람’의 이름이 빠짐없이 붙어 있었다.
[정우빈 / 최초 대응 촉발자]
[파생 관측: 6개 지역]
[미확정 손실: 별도 산정]
“제가 어제 역에 갔다는 이유로 다른 곳까지요?” 우빈이 물었다.
박현정은 새 문서의 접수 경위를 살폈다.
“이 문서만으로 우빈 씨가 어떤 책임을 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기관에 같은 말이 퍼지면 사람들은 먼저 두려워하겠죠.”
소라는 노트에 여섯 지역의 날짜를 적었다. 그중 물류 창고에는 서강재가 과거에 회수 독촉을 보냈던 직원이 있었다. 복지관에는 성인 강나래가 최근 기억 회복 상담을 받으러 다녔고, 임시보호소는 아직 행방을 찾지 못한 강민호의 마지막 기록과 연결돼 있었다.
“무작위로 뽑은 곳이 아니군요.”
“우리가 찾아다닌 장소만 따라온 거예요.” 우빈이 말했다.
그날 오후 정태수가 오래된 전화번호 하나를 적어 줬다. 1998년 실험동에서 서류의 동작을 점검했던 외부 검토 담당자, 문세희의 번호였다. 퇴직 뒤에도 현장의 직원 안전 교육을 도와 왔다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내가 만든 쇠상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끝까지 물었어.” 정태수가 말했다. “그땐 귀찮아서 대충 대답한 적도 많지.”
문세희는 시립 자료관의 작은 회의실에서 그들을 만났다. 반듯하게 묶은 머리와 오래된 수첩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우빈의 설명을 듣고 곧장 원본 00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건 예언 장치가 아닙니다. 원래 명칭은 선제 보호 기록함이었어요. 사고가 예상될 때 보호 조치를 준비하고, 누가 도움을 받았는지 나중에 검증하려는 것이었죠.”
“그런데 사진에 내일 모습이 있어요.”
“원래 장치에서는 그럴 수 없어요. 관측 실험에서 상황을 가정한 그림은 만들었습니다. ‘이 경우 이런 경로로 사람이 몰릴 수 있다’는 시나리오였죠. 미래를 촬영한 사진이 아닙니다.”
그녀는 닳은 수첩을 폈다. 붉은 줄이 그어진 페이지 한쪽에 작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가정을 사실로 표시하지 말 것.’
“이 지침 때문에 제가 계약 연장을 거절했어요. 장치가 예상 장면을 출력하는 건 좋지만, 그걸 이미 일어난 손실처럼 처리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누굽니까?” 소라가 물었다.
문세희는 선뜻 답하지 않았다. 대신 수첩 뒤에서 검은 종이를 꺼냈다. 소라가 알아본 것은 오미령의 계정 표시였다.
[OM-01 / 개입 반응 관측]
[관측자에게 제공된 권한: 경고 발행]
[금지된 권한: 손실 귀속]
“오미령은 경고를 만드는 일에 관여했어요.” 문세희가 말했다. “하지만 손실을 누구에게 청구할지 정하는 권한은 별개였어요. 그걸 하나로 합친 사람이 있습니다.”
우빈이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을 만난 적 있어요?”
“얼굴은요. 이름은 없었습니다. 회의 때마다 빈 의자에 회의록을 올려 두고 떠났죠. 서명란에는 늘 ‘원발행’이라고만 적혔습니다.”
문세희는 마지막 장을 펼쳤다. 흰 종이에 세 개의 문구가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문세희는 자신이 가진 수첩을 무릎 위에 놓고는 우빈에게 과거의 서류를 함부로 만지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 종이는 유일한 원본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기억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남겨 둔 물건이었다.
“그날 회의에서 제가 물었습니다. ‘앞으로 사고가 난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난 것처럼 청구할 건가요?’ 다들 말이 없었어요. 누가 반대했는지보다 누가 눈을 돌렸는지가 더 기억납니다.”
“그중에 정태수 씨도 있었습니까?” 소라가 물었다.
“그분은 시설에 관한 질문에만 답했어요. 그게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본 것은 그렇습니다.”
문세희는 잠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저 역시 그 뒤에 떠났다는 이유로 잘못이 끝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원회에 제출할 기록을 더 모아야 해요. 단순히 회의를 그만둔 사람의 깨끗함을 증명하는 데 그치고 싶지 않습니다.”
‘위험 경고.’
‘대응 기록.’
‘보호 조치.’
그리고 나중에 붉은 잉크로 추가된 네 번째 줄.
‘대응자가 발생시킨 손실.’
“이 한 줄 때문에 장치는 도움을 준 사람을 채무자로 기록하게 됐어요.”
소라가 물었다.
“그 한 줄을 누가 추가했는지 알 수 있나요?”
“기록이 남아 있어요. 다만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실험동이 폐쇄될 때 중요한 장부 하나를 사람들에게 나눠 줬거든요.”
“왜 나눠 줬죠?”
문세희가 우빈을 바라봤다.
“그때는 한곳에 모아 두면 누군가 한 번에 지워 버릴까 봐 그랬습니다. 이제는 서로 다른 증언을 다시 모아야 해요.”
그녀의 휴대전화에서 경고음이 났다. 평범한 문자였다. 하지만 발신 번호가 비어 있었다.
‘문세희. 예방 조치 설명에 참여한 시간 43분. 미확정 손실의 1차 원인으로 등록.’
문세희는 화면을 끄고 수첩을 닫았다.
“보셨죠? 제가 말하기만 해도 그들이 값을 매깁니다.”
우빈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발급된 청구서를 보며 입술을 다물었다. 수첩에는 빨간 줄이 그어진 원칙이 있었다. 가정은 사실이 아니다. 이번에는 그 문장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다.
제8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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