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 시 삼십 분, 서람중앙역의 공기가 달라졌다.
사람들이 갑자기 비명을 지른 것도 아니고, 시설이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운영실이 현장 혼잡을 확인한 뒤 평소보다 많은 안내 인력을 배치하고, 일부 구간의 통행 방향을 조정했기 때문이다. 안내 방송은 이동 시간을 충분히 두고 대체 경로를 알려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승객에게는 조금 불편한 퇴근길이었다.
우빈은 승강장이 내려다보이는 공개 대기 공간에 있었다. 혼자 현장에 뛰어들어 무언가를 바꾸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소라는 박현정과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고, 조은채는 자신의 본래 업무를 수행했다. 이명숙은 병원에서 보낸 문자대로 다른 경로로 돌아오기로 했다.
[예정 시각까지 00:29:58]
우빈의 휴대전화가 떨렸다.
“이렇게 사람들을 분산하면 끝나는 건가요?” 그가 물었다.
“끝난다는 보장은 없어요.” 소라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안전 담당자들이 확인 가능한 조치를 하고 있다는 건 분명해요.”
누군가는 급한 약속에 늦었다고 화를 냈고, 누군가는 어르신의 가방을 들어 주었다. 통로 구석의 빵집 사장은 예상보다 손님이 적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 모두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 위에 아직 오지 않은 사고를 얹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다섯 시 오십오 분. 은채가 관리실에서 나와 우빈에게 물었다.
“저 서류를 보낸 회사, 답이 왔나요?”
“없어요. 선제보증운영은 자기들이 운영을 지시한 적 없다고 합니다.”
“저는 지시를 받은 적도 없고요.”
은채는 자기 일지를 보여 주었다. 운영 변경의 근거와 승인 시각, 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판단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우빈은 그 일지를 바라보다 자기 전화의 붉은 글씨와 비교했다.
[책임 후보: 조은채]
[예비 대체 후보: 정우빈]
“이것들이 기다리는 건 사고가 아닌 것 같아요.”
“네?”
“누가 결정을 내렸는지 기다리고 있어요.”
여섯 시 정각, 역 안은 조용했다.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섯 시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끝난 뒤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우빈은 잠깐 웃을 뻔했다. 그러나 옆에서 누군가 크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배달 가방을 멘 청년이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동 시간이 늘어서 다음 주문을 놓쳤네요.” 청년이 중얼거렸다.
우빈은 사과할까 하다가 멈췄다. 자신이 운영을 결정한 것도 아닌데 대신 사과하면 또 다른 오해가 생길 수 있었다. 청년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발목을 돌렸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기다림은 실제였다. 원본 00이 엉터리 청구를 한다고 해서 이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은채는 불편 신고도 별도의 기록으로 남겨 달라고 안내했다. '손실이 없었다'는 말과 '재난이 없었다'는 말은 다르다고 했다. 우빈은 그 구분을 가슴에 새겼다. 자신들이 싸우는 것은 현실의 불편이 아니라, 불편을 핑계로 확인되지 않은 빚을 만드는 일이었다.
누군가 넘어졌다는 신고도, 큰 시설 고장도 없었다. 운영실에서는 관련 구간을 계속 점검하면서 변동 사항을 알렸다. 우빈은 자신이 긴장을 풀기 전까지 휴대전화의 시계를 세 번이나 확인했다.
“끝났어요?” 소라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예고됐던 시간은 지났어요.”
그 말은 정확했다. 사건 전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후 여섯 시 일 분, 원본 00의 화면이 바뀌었다.
[사전 인식 손실 확정]
[인명 피해: 0]
[시설 피해: 확인되지 않음]
[운영 지연 손실: 잠정 산정]
[책임자 등록: 조은채]
우빈은 화면을 내리다 손을 멈췄다. 사고가 없었다는 줄을 읽고 안도한 바로 다음에, 은채의 이름이 나타났다.
“그건 누가 등록했습니까?” 은채가 물었다.
“아무도요.”
천장의 스피커가 지직거렸다. 평소 안내 방송 사이로 지나치게 매끄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예상 손실에 대한 예방 조치가 성공했습니다. 예방 조치로 발생한 비용은 관리 책임자에게 귀속됩니다.”
은채가 스피커를 바라봤다.
“말도 안 돼. 내가 지시받은 것도 아니고, 내 판단으로 이용객을 안내한 건데.”
그녀의 그림자 뒤로 납작한 종이 손이 솟았다. 우빈에게만 보이는 줄 알았던 그것을 은채도 분명히 보았다. 손끝은 사람을 붙잡으려 들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사원증 사진 위에 도장을 찍으려 했다.
우빈은 사원증을 빼앗지 않았다. 소라는 은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직접 보여 주세요. 당신이 어떤 판단을 했고 무엇에 동의하지 않았는지. 다른 사람이 대신 쓰면 또 같은 일이 반복돼요.”
은채는 자신이 작성한 일지를 펼쳐 들었다. 종이 손이 잠깐 멈췄다.
“통행 조정은 이용객 안전을 위해 시행했어요. 선제보증운영과 계약한 적 없고, 사고 예상 손실을 제게 청구하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일지에는 업무 담당자와 승인자의 실제 이름이 각각 있었다. 금고는 그중 하나의 이름만 가져가려고 했다.
[귀속 정보 불일치]
[임시 부과 유지 / 재확인 대상]
손이 사라지자 은채는 벽에 등을 기댔다. 소라가 물병을 건넸다. 우빈은 그녀가 무서워하는 얼굴을 처음 보았다.
“이렇게까지 해서 사람한테 돈을 달라고 하나요?” 은채가 물었다.
“이번에는 실제로 돈을 빌리지도 않았어요.” 우빈이 답했다. “그냥 필요한 일을 했을 뿐인데.”
잠시 뒤 현정이 확인서를 보내 왔다. 역사 운영기관은 원본 00이 보낸 청구서를 인정하지 않았고, 계약 관계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회신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은채의 개인 휴대전화에는 이미 낯선 독촉장이 도착해 있었다.
[예방 조치 대가: 2억 4천만 원]
[납부 의무 발생: 18:00]
우빈은 한참 금액을 바라봤다.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움직인 대가가 빚이라면, 다음번에는 누가 위험을 알리고 싶어 할까.
은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일도 제 근무일이에요.”
“이런데도요?”
“그래서요. 제 이름으로 협박했다고 제가 안전 업무를 그만두면,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게 이루어지잖아요.”
그녀는 사원증을 다시 목에 걸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빈은 처음으로 금고의 목적을 이해한 것 같았다. 돈을 벌기 위해 사고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다음 사고를 막을 용기를 잃게 만드는 것. 그 공포 자체가 상품이었다.
역을 나서려는 순간 차윤서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왔다.
‘오늘 18시의 청구는 예고된 사고 때문이 아닙니다. 원본 00은 누가 경고를 믿고 행동하는지 시험했습니다. 다음 상품은 오늘 확인된 행동을 바탕으로 생성됩니다.’
뒤이어 새 문서 하나가 전송됐다.
[미래손실 00-2 / 등록 완료]
[대상: 6개 지역]
[최초 책임 후보: 정우빈]
제8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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