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진 속 내가 진짜로 저기에 가면 안 되는 건가요?”
정우빈의 질문에 차윤서는 즉시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 두 장을 각각 투명 봉투에 넣고, 자신이 확보한 자료의 경위를 적었다. 소라가 요구한 일이었다. 수상한 사진을 ‘내일의 증거’라고 부르려면 무엇이 진짜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사진은 원본 00 단말기의 미리보기 화면을 출력한 거예요. 촬영 장치의 원본 파일은 아직 못 봤습니다.”
“그럼 합성일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시스템이 그 장면을 만들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차윤서는 국숫집 밖으로 나가고, 우빈과 소라는 운영실로 돌아왔다. 조은채에게 사진을 보여 주되 해당 시각에 우빈이 등장한다고 설명하는 것은 자제했다. 대신 환승 통로의 위치와 사람의 흐름, 다른 안내 자료와 모순되는 부분을 함께 확인했다.
은채는 두 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한 부분을 가리켰다.
“이 시간에는 저 벽 앞에 임시 안내 표지가 세워질 예정이에요. 지금 사진은 그게 없네요.”
“그럼 과거 사진인가요?” 우빈이 물었다.
“아마도요. 그런데 미래를 확정하는 데 쓰는 자료라면 이런 차이는 기록해 둬야죠.”
은채는 자신의 판단이 공식 현장 책임자에게도 전달되도록 했다. 혼잡 시간대에는 일부 출입구의 이용을 조정할 가능성이 있었고, 실제 운영 변경은 현장 상황을 보면서 결정하기로 했다. 불확실한 예고를 핑계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방적 통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오후가 되자 우빈은 집으로 갔다. 이명숙은 작은 식탁 위에서 귤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정태수는 소파에 앉아 낡은 공구 가방을 꿰매고 있었다. 매일 보아 왔던 풍경인데 오늘따라 낯설었다. 어떻게 해야 이 평범함을 지킬 수 있을까.
“아버지, 00번 원본이 원래 뭘 하던 물건이에요?”
태수는 바늘을 내려놓았다.
“너도 그걸 들여다보게 됐구나.”
“사고가 나기 전에 책임을 정하는 장치라던데요.”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태수는 오래된 실험동에서 만들었던 상자를 떠올렸다. 1998년의 시설은 사고가 난 다음에 지원 대상을 찾느라 며칠씩 허비했다. 아이를 보호한 사람들은 비용을 어디에 청구해야 할지 몰랐고, 응급 지원은 공문을 돌다 지체됐다. 그래서 누군가 현장에 나가면 필요한 물품과 도움을 미리 기록할 수 있도록 보관함을 만들었다.
“보호할 준비를 적는 상자였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고의 책임을 사는 상자가 아니었어.”
“그럼 왜 숫자가 그렇게 나오죠?”
“지원이 늦어지면 무엇이 필요한지 계산하도록 만들긴 했어. 하지만 계산값은 실제 사람한테 돈을 청구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태수는 한숨을 쉬었다.
“우린 누가 악용할 수 있는지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했어야 했는데.”
이명숙이 귤 한 쪽을 아들 앞에 놓았다.
“네 아버지는 그런 얘기를 하고 나면 꼭 오늘 일이 어쩔 수 없었다는 얼굴을 하더라.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건 없어. 잘못한 건 잘못한 거야.”
태수는 반박하지 않았다.
“네.”
태수는 식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인 공구 가방을 끌어당겼다. 손잡이 가죽이 해지고 밑바닥에 구멍이 났는데도 버리지 못하는 가방이었다. 그는 그 안에서 녹슨 나사 한 개를 꺼냈다.
“예전에 문이 닫히면 누구라도 안에서 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손잡이를 만들었지. 그런데 실제 사고 때 나는 그 장치가 어떻게 쓰이는지 끝까지 확인하지 못했어.”
“그걸 지금 다시 고칠 수는 없잖아요.” 우빈이 말했다.
“그래. 그래서 앞으로도 고쳤다고 말하면 안 되겠지.”
태수는 나사를 작은 통에 넣었다. “문을 잠근 내가 해야 할 진술은 하고, 지금 사람들이 안전한지 확인하는 일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네가 혼자 뛰어가서 영웅이 되려고 해도 안 돼.”
우빈은 아버지의 말에 선뜻 화를 낼 수 없었다. 자신이 가장 원망했던 사람이 ‘혼자 책임지려 하지 말라’고 말하니 이상했지만, 그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이명숙은 두 사람 사이에 물을 놓고 TV 소리를 줄였다.
“말로 끝내지 말고 내일 약속부터 지켜.” 그녀가 말했다. “아버지는 조사 받으러, 너는 확인하러. 나는 병원 다녀와서 저녁 먹을 거야.”
이명숙은 아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너도 내일 나를 구하겠다고 아무 여자한테나 서명 받으러 다니지 마라. 내가 돌아갈 길은 나도 선택할 수 있어.”
우빈은 그제야 자신이 어머니를 위험에서 빼내는 것만 생각한 나머지, 어머니의 결정을 한 번도 제대로 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내일 병원은 어떻게 하실래요?”
“담당자 안내를 보고 갈 거야. 위험하다면 다른 길을 가고. 네가 데리러 오면 좋긴 하지. 하지만 나 대신 누굴 탓하진 마.”
그날 밤 소라가 사진의 출처 대조 결과를 전해 왔다. 첫 번째 사진은 실제로 지난주 촬영된 현장 자료와 일치했다. 두 번째 사진은 원본 파일이 없었고, 한 얼굴의 경계가 부자연스러웠다. 우빈이 들어간 부분이었다.
“나를 일부러 넣었네요.” 우빈이 말했다.
“어쩌면 당신이 오도록 만들려고요.”
우빈은 창문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금고는 미래를 알려 주는 척하면서 미래를 만들려고 했다. 정확히 그 지점에서 무서움이 분노로 바뀌었다.
새벽 직전, 조은채의 공식 업무용 메일에 한 통이 도착했다.
‘안전 관리를 위한 선제 위탁 계약. 내일 17시까지 승인하지 않을 경우 귀하의 예방 의무 불이행으로 처리.’
은채는 서류를 보내 온 기관이 어디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녀가 답장을 보내지 않자 화면에 또 다른 문장이 나타났다.
[위험 대응자 동의 없이 후보 확정 예정]
은채가 사본을 현정에게 전달했다.
“이건 안전 점검을 위한 계약이 아니에요. 제 이름을 빌려 가려는 계약입니다.”
우빈은 받은 파일의 맨 뒤를 보았다. 계약서 마지막 장에는 이미 도장이 찍혀 있었다.
‘정우빈, 현장 입회 예정.’
그가 입회하겠다고 말하기도 전이었다.
제8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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