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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83화
PAYLUA ORIGINAL · 제83화

83화. 사고의 소유주

빚을 먹는 금고 · 2,819자

오프라인 책장
미래에 일어날 사고를 파는 회사는 사무실 간판에 ‘사고’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선제보증운영 주식회사.’ 은색 글씨 아래에는 ‘내일의 위험을 오늘 관리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1층 안내원은 예정되지 않은 방문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소라가 거래설명서에 적힌 고객 문의 번호로 정식 자료 열람을 요청하자, 담당자는 일주일 뒤의 예약을 제시했다. 사고 예정 시각은 그보다 훨씬 빨랐다. “일주일 뒤면 이미 벌어진 일이겠네요.” 소라가 말했다. “저희가 실제 사고 발생을 예측하는 회사는 아닙니다.” 담당자가 대답했다. “미리 정의된 손실에 대한 위험 배분 상품을 운영할 뿐입니다.” “그 손실은 누가 정의했죠?” 대답이 없었다. 우빈은 더 따지려다가 소라에게 팔을 잡혔다. 회사에서 요구한 것은 감정적인 항의였다. 그것이 ‘고객의 과도한 업무 방해’ 같은 문장으로 바뀌는 일을 둘은 여러 번 겪었다. 둘은 발걸음을 돌려 시립 기록관리원으로 갔다. 건물을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우빈은 첫 번째 금고가 집 앞에 나타났던 밤을 떠올렸다. 그때 도영식은 전화로 연체 이자를 읊었고, 어머니는 소리 내어 울지 않으려고 싱크대 수도를 틀어 놓았었다. 그에게 빚을 없애 준다는 말은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을 살려 주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왜 저런 회사가 계속 생길까요?” 그가 물었다. 소라는 신호등을 보며 대답했다. “누군가 간절할 때는 서류 끝의 문장보다 지금 당장 줄 수 있다는 말을 먼저 듣게 되니까요. 저도 그랬어요. 도와주겠다는 말이 필요했거든요.” “지금은 무슨 말을 먼저 보세요?” “내가 받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받았다고 적힌 것이 실제로 내게 왔는지.” 우빈은 더 묻지 않았다. 소라가 자신의 피해를 매번 교훈처럼 설명할 의무는 없었다. 대신 그는 초록불이 들어왔을 때 그녀보다 먼저 발을 내딛지 않았다. 각자가 자기 속도로 건너갈 수 있는 횡단보도가 그날은 유난히 넓어 보였다. 박현정은 수신 기관에 보내는 확인 요청서 사본을 준비해 두었다. 질문은 단순했다. 선제보증운영이 주장하는 ‘미래손실’의 기초 자료가 무엇인지, 매수자가 무엇을 얻는지, 누구에게 보상 의무가 생기는지. “미래라는 이유로 자료가 없을 수는 있죠.” 현정이 말했다. “그래도 지금 계약을 팔고 있다면 계약 조건은 있어야 하잖아요.” 서강재는 옛 회수 업무에서 보았던 약관을 꺼냈다. 그는 오래전 자신이 만든 추심 문구가 어떻게 회계 처리 항목으로 바뀌었는지 설명했다. 사람을 찾지 못했을 때 ‘주소 미확인’으로 남겨야 할 것을 누군가 ‘회피 가능성’으로 바꾸면, 그 단어 하나가 새로운 수수료를 불렀다. “이번에도 같은 겁니다. 위험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과 위험이 있었다는 말 사이에 돈을 끼워 넣었어요.” 그때 김소라의 휴대전화로 알림이 왔다. 발신자는 차윤서였다. ‘상담이 필요하면 오후 네 시, 남쪽 상가의 빈 의자 옆으로 오세요. 거래소가 아닌 곳에서.’ 우빈은 나가지 말자고 했다. 지난번 자판기에서 카드를 던졌던 음성의 주인이었다. 소라는 만남을 결정하기 전에 현정에게 장소와 시간을 알리고, 사람이 오가는 공개된 장소에서만 대화하겠다고 회신했다. 남쪽 상가에는 오래된 국숫집이 있었다. 한쪽 빈 의자에 검은 우산이 놓였고, 건너편 탁자에서 여자가 일어났다. 차윤서는 생각보다 젊었다. 검은 장갑도, 부드러운 스피커 음성도 없었다. 그녀는 손등에 작은 화상 자국이 있는 맨손으로 물컵을 잡았다. “저를 믿을 이유가 없는 건 알아요.” “그럼 이유를 하나라도 만드세요.” 소라가 말했다. 윤서는 종이 한 장을 식탁 위에 놓았다. 정식 거래 승인을 받은 계약서의 일부였다. 그녀가 보여 준 것은 피해자의 이름이 아니라 상품 구성표였다. ‘기초 손실: 인명 및 재산 피해 가능성.’ ‘부가 손실: 예방 조치에 따른 영업 중단 및 지연 비용.’ ‘책임 귀속: 위험을 최초 공지한 주체 또는 최종 현장 대응자.’ “사고가 나도 돈을 벌고, 안 나도 돈을 벌죠.” 우빈이 말했다. “예. 다만 매수자는 손실을 대신 갚는다고 주장해요. 실제 지급보다 먼저 책임자를 정할 수 있으니까, 그 책임을 담보로 더 큰 계약을 만듭니다.” “그럼 왜 이걸 알려 주죠?” 차윤서는 한참 망설였다. “제가 17번 거래를 운영했어요. 그때는 미수령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말의 무게를 모르고 동의한 기록을 다뤘죠. 이제 정산이 멈췄으니 해고될 겁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한 일이고, 누군가 더 다치게 둘 이유는 없어요.” 우빈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용서를 요구하지 않은 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그녀의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차윤서가 마지막 부분을 짚었다. “이번 상품을 산 사람은 손실액을 예측하는 게 아니에요. ‘누구의 행동으로 손실이 발생했다고 써도 되는 권리’를 사려는 겁니다.” “법적으로 그런 권리는 없어요.” 소라가 말했다. “알아요. 그럼에도 금고가 그 문장을 현실의 독촉장으로 만들어 줍니다.” 국숫집 냄비에서 김이 올랐다. 아주머니가 세 사람에게 주문할 건지 물었다.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치 평범한 식사까지 서류의 일부가 될 것 같았다. 차윤서가 일어나기 전에 봉투 하나를 건넸다. “원본 00은 언제나 사고를 맞히는 장치가 아닙니다. 제가 본 문건에는 ‘개입 반응 평가’라는 항목이 있어요. 예고를 받은 사람이 무엇을 바꾸는지 관측하는 겁니다.” 우빈이 봉투를 열었다. 가장 위에 사진 두 장이 있었다. 하나는 평소의 환승 통로, 다른 하나는 사람들 발밑에 붉은 금액이 떠 있는 통로였다. 그 두 번째 사진의 구석에서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우빈이었다. 사진이 찍힌 시각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 오후 5시 59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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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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