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람중앙역의 오후는 이상하리만큼 평범했다.
오가는 사람들은 안내선이 아니라 휴대전화 화면을 보며 걸었고, 커피를 쏟은 남자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냈다. 이 모든 사람에게 사고 예정 시각을 알려 주면 어떻게 될까. 우빈은 상상하다가 말을 삼켰다. 금고가 정말 원하는 것이 공포일 수도 있었다.
조은채는 새벽부터 정기 점검을 앞당겨 실시했다. 특별한 고장 징후는 확인되지 않았고, 사람이 몰리기 쉬운 시간대의 안내 인력을 추가 배치하도록 요청했다. 역의 공식 운영 판단은 별도로 이루어졌다. 정체 모를 파일 한 장이 운영을 지휘하게 두지 않으면서도 제보를 무시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일은 이렇게 해야죠.” 은채가 점검표를 내밀었다. “확인한 것,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 두 칸을 섞지 않는 거예요.”
소라는 그 말을 듣고 얼마 전 초록색 지급대장의 빈칸을 떠올렸다. 금고의 모든 재앙은 확인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고 쓰는 데서 시작됐다.
지연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거래소를 떠나 자신의 검토 업무에 관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번 자료는 정식으로 신고된 공개 설명서 범위에서만 확보했다고 말했다.
“기묘한 상품이 올라왔어요. ‘미래손실 선보증 00-1’. 기초 자산은 서람중앙역 오후 여섯 시의 사고예요. 그런데 지금 표시되는 예상 손실액이 매분 바뀌어요.”
“사고를 예측하니까요?”
“아뇨. 신고 건수가 늘 때마다 바뀌어요. 사람이 위험을 걱정하며 연락만 해도 상품 가격이 올라가요.”
“그럼 우리 제보도요?”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신고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에요. 누가 그걸 이용하는지가 문제죠.”
우빈은 안전 운영실 창문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몇몇 사람은 역사 입구에서 영상을 찍고 있었다. 누군가 익명 게시판에 ‘오후 여섯 시 폭발 예고’라는 글을 올린 것이었다. 실제 문서에는 폭발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터무니없는 소문이 번지는 속도만큼, 통로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다른 출입구에 몰렸다.
은채가 운영 책임자에게 보고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고 원인을 유포하지 않되, 혼잡 상황을 실제로 관찰하고 필요한 동선 안내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우빈은 그녀의 침착함을 보며 부끄러워졌다. 자신은 어머니 생각에 겁부터 먹었는데, 은채는 오늘 역에 오는 모든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검은 비닐봉지를 든 청소 노동자가 운영실로 들어왔다.
“어제 통로 끝에서 이걸 주웠어요. 분실물로 맡겨 놨는데, 혹시 오늘 점검하신다기에.”
봉지 안에는 광고 전단과 찢어진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우빈이 알아볼 수 있는 서식이었다.
‘예상손실 귀속 확인서.’
종이는 빈 양식이 아니었다. 수십 개의 이름이 기계적으로 찍혔다 지워져 있었다. 맨 마지막 이름만 또렷했다.
[조은채 / 사고 대응 미흡 가능성]
은채의 얼굴이 굳었다.
“저는 이걸 본 적도 없는데요.”
“그래서 바로 보존하겠습니다.” 소라가 말했다. “서류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과 은채 씨가 그 일을 했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청소 노동자는 잠깐 주저하더니 말했다.
그녀의 명찰에는 ‘최혜란’이라고 적혀 있었다. 혜란은 아침마다 통로 바닥을 닦으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흘리는지 잘 알았다. 커피, 영수증, 잃어버린 지하철 카드, 가끔은 누군가 급히 써 놓은 전화번호까지. 그러나 서명이 없는 계약서가 며칠째 같은 장소에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고 했다.
“저는 글자를 잘 모르는 건 아니지만, 계약서 전문을 읽을 수는 없어요. 그래도 저한테 물어볼 수도 있잖아요. 제가 봤던 걸 본 대로 말할 수 있는데.”
은채가 혜란을 바라봤다.
“그래서 와 주신 게 고맙습니다. 위험을 보셨으면 우리가 살펴봐야죠.”
혜란은 슬쩍 웃었다. “그럼 그 종이 제가 가져왔다고 제게 빚을 지우진 않겠죠?”
농담처럼 들렸지만 우빈은 웃지 못했다. 불과 전날만 해도 자신은 똑같이 물었을 것이다. 그는 소라에게 혜란이 종이를 발견한 시각을 별도로 적게 했다. 주웠다는 사실과 작성했다는 사실이 다르다는 것을 누군가 나중에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전단 뒷면에 또 있었어요. 영수증 같은 게.”
그녀가 봉지를 뒤집었다. 자그마한 종이에 현금 출납 숫자 대신 문장이 찍혀 있었다.
‘예방 업무를 수행한 사람은 손실의 원인으로 간주할 수 있다.’
“막으려고 나섰다는 것 자체를 잘못으로 만들어요?” 은채가 물었다.
“사고가 없으면 당신 때문에 못 팔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지연이 통화 너머에서 대답했다.
우빈은 화를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누군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면 그 행동을 손실의 원인으로 팔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으면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팔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돈이 되는 규칙이었다.
한편 이명숙은 집에서 다음 날의 병원 예약을 확인하고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괜찮다. 내일 환승역 말고 다른 길로 갈게. 네가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우빈은 메시지를 두 번 읽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걱정하는 이유를 완전히 모르면서도 스스로 경로를 바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작은 선택을 금고가 ‘예방 담당자’로 등록하려 든다면 어떻게 될까.
운영실의 벽시계가 오후 한 시를 가리켰다. 컴퓨터 한 대가 꺼졌다 켜지더니 화면 아래 문장이 생겼다.
[위험 대응 참여자 자동 추적]
[정우빈 / 김소라 / 조은채 / 이명숙]
[선택 기한: 18:00]
소라가 그 문장을 보고 말했다.
“이제 누군가를 고르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사람 모두를 후보로 만들고 있네요.”
우빈은 화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바깥의 안내 방송은 평소처럼 다음 열차의 도착을 알렸다. 내일의 시간이 아니라 오늘의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계속 개찰구를 지나갔다.
제8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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