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목 철공소의 옛 작업장은 낮에도 어두웠다.
철골 지붕 사이로 햇빛이 실처럼 들어왔고, 불 꺼진 용접기의 손잡이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정태수가 수십 년 전 처음 깎았다는 쇠뭉치가 작업대 아래에 굴러다녔다. 우빈은 아버지가 한 번도 버리지 못한 물건들을 둘러봤다.
“여기에도 누군가 들어왔어요.” 소라가 말했다.
바닥에는 최근 끌고 간 듯한 카트 바퀴 자국이 있었다. 먼지가 쌓인 곳에서만 선명해진 두 줄의 선은 창고 뒤편으로 이어졌다. 창고 문 위에는 ‘출입 금지’라는 종이와 함께 최근 관리를 맡은 건물주의 연락처가 붙어 있었다.
박현정은 건물주에게 연락했고, 자료를 확인할 권한을 가진 관계자가 입회하는 조건으로 안쪽을 점검하기로 했다. 허락받기까지 걸린 시간이 아까웠지만, 가져온 증거가 도둑질한 물건이 되면 누가 이익을 볼지 모두 알고 있었다.
창고 안에는 기다란 나무 상자 세 개가 있었다. 한 상자는 비어 있었고, 두 번째 상자에는 낡은 우편 봉투가 들어 있었다. 세 번째 상자의 뚜껑에는 일곱 개의 얕은 홈이 파여 있었다.
“아버지가 만든 수령함하고 구조가 똑같아요.” 우빈이 말했다.
서강재는 상자를 열다가 손을 멈췄다. 안쪽에 연한 초록색 장부가 얹혀 있었다. 표지에는 ‘정산’이라는 말이 없었다.
‘실물 지급 확인 대장.’
“이거였구나.” 지연이 중얼거렸다. “돈을 보내기로 한 금액하고 실제로 보낸 금액을 구분했던 장부.”
첫 장에는 날짜, 지원 대상, 지급 방법, 본인 확인 여부가 있었다. 여러 칸에는 ‘미지급’, ‘주소 미확인’, ‘이체 실패’라는 단어가 적혔다. 그 옆에 훨씬 나중에 붉은 잉크로 찍힌 ‘수취 완료’ 도장이 겹쳐 있었다.
“원래 돈이 안 간 걸 알고도 받은 것처럼 만들었군요.” 우빈이 말했다.
“일부 행의 경우는 분명히 모순됩니다.” 박현정이 답했다. “다만 모든 항목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니까, 실제 지급 기관의 원장과 대조해야 합니다.”
지연은 자신이 거래소에서 보았던 값을 떠올렸다. 미수령 기록 한 건당 수백만 원이었던 숫자가 다른 계정을 거치며 수천만 원, 수억 원으로 부풀었다. 실제로 그 돈을 받았다는 사람이 없는데도 숫자만이 여러 번 거래됐다.
“그럼 매수자들이 산 건 무엇이죠?” 우빈이 물었다.
“원래 지급됐어야 할 돈에 대한 권리도 아니에요. 지급됐다고 간주할 수 있다는 주장. 그 주장에 대가가 붙은 겁니다.”
그때 작업장 안쪽에서 불꽃 하나가 튀었다. 낡은 용접기에 전원이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세 번째 상자 밑면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종이에서 연기가 솟아났다.
“뒤로!”
서강재가 소리쳤다. 지연이 상자를 덮으려 하자 우빈이 그녀를 막았다. 맨손으로 잡으면 화상을 입을 온도였다. 그들은 곧바로 건물 밖으로 물러나 관리인에게 소화기 위치를 물었다. 소방 신고가 접수된 뒤, 박현정은 현장 보존을 위해 누구도 장부를 들고 나가지 못하게 했다.
불꽃은 금세 거세졌다. 그러나 이상했다. 나무 상자에는 그을음이 생겼는데 초록색 장부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불꽃이 장부를 피해 돌아가며 벽에 숫자들을 남겼다.
[기록 보존 실패 유도]
[책임자 1명 필요]
우빈이 소화기를 들었다. 창고 안에 남아 있던 실제 종이와 상자에는 분말을 뿌려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했다. 서강재는 바깥에서 폐쇄된 배전반을 확인했다. 소방대가 도착했을 때 일반 화재 흔적은 한쪽 벽면에 국한돼 있었고 이상한 붉은 숫자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또 누군가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려는 거군요.” 우빈이 말했다.
“이번엔 우리 중 누가 서류를 태웠다고 만들려고 했겠죠.” 소라가 답했다.
박현정은 장부를 회수하지 않았다. 대신 소방과 관리인이 입회한 상태에서 발견 위치와 외관을 기록했다. 이후 적법한 보존 절차를 밟기로 했다. 지연은 자신의 설명서를 대조하며 그 안의 거래번호 두 개가 초록 장부의 지급번호와 같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소방대가 현장을 정리하는 동안 우빈은 밖에 놓인 낡은 철제 의자에 앉았다. 그의 작업복에는 소화 분말이 하얗게 묻어 있었다. 정태수가 만들어 놓은 망치는 가방 속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왜 이렇게 힘들죠?” 우빈이 물었다. “금고 안에 들어갈 땐 겁만 났는데, 장부를 하나 찾으니 지켜야 할 게 더 많아요.”
소라가 의자 옆에 섰다. “처음엔 금액 하나가 사라지는 걸 보고 싶었잖아요. 지금은 그 돈이 실제로 어디 갔는지 보고 싶은 거고요.”
“그게 다른 일인 줄 몰랐어요.”
“그래도 알게 된 게 있죠.”
우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일곱 장치의 원본을 다 찾은 것도 아니고, 이 싸움이 끝날 때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남을지도 몰랐다. 다만 불에 타지 않은 장부를 바라보며 이번에는 그냥 지나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원본이 사라지기 전에 대조 신청부터 합시다.” 지연이 말했다.
오후 두 시가 가까워질 무렵, 차윤서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찾았나요?”
“예.” 소라가 말했다. “그리고 누가 장부를 태우려고 했는지도 조사 중입니다.”
윤서가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도 결제는 진행될 거예요. 거래소는 지급했는지 여부를 보지 않습니다. BJH-06이 최종 확인 도장을 찍었는지만 봐요.”
“그 도장 찍은 사람이 누군데요?”
“그것 때문에 제가 숨어 있어요.”
“말해 주세요.”
잠시 뒤 윤서가 말했다.
“BJH-06은 제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사람이 아니었어요. 빈 책상에 장갑만 있었죠. 그런데 거래는 계속됐어요.”
우빈은 어제 보았던 금속 고리를 떠올렸다. ‘직무 인계 중.’ 사람이 앉지 않는 자리, 그 자리를 지키는 장갑. 누가 다음 손을 넣을지에 따라 책임이 달라지는 구조였다.
윤서가 덧붙였다.
“원래 권한 기록을 찾아야 해요. 제일 오래된 판에는 장갑을 낀 손만 찍혀 있습니다. 이름이 없죠. 이름이 없어도 도장을 찍게 만든 사람이 있어요.”
“백재헌입니까?”
“그도 한 사람이죠. 하지만 계정을 영원히 살려 두기로 결정한 사람은 따로 있어요.”
윤서는 말을 멈췄다. 통화 끝에 가벼운 쇳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문고리를 돌려 보는 소리였다.
“조심하세요.” 우빈이 말했다.
“당신들도요. 이제 네 시간 남았습니다.”
[결제까지 04:00:00]
녹슨 창고 지붕 위로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빈은 아버지의 망치를 가방에 넣었다. 그가 꼭 찾고 싶었던 것은 금고의 마지막 열쇠가 아니었다. 누군가 책임지지 않는 사이 도장이 찍히게 된 최초의 순간이었다.
제7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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