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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77화
PAYLUA ORIGINAL · 제77화

77화. 가려진 열일곱 사람

빚을 먹는 금고 · 2,845자

오프라인 책장
한지연이 보내 온 목록에는 열일곱 사람의 이름이 없었다. 정확히는, 이름이 있을 자리에 여러 겹의 회색 줄이 그어져 있었다. 옆에는 서로 다른 금액, 마지막 접촉일, ‘주소 불명’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회색 줄은 누가 그었어요?” 우빈이 물었다. “원본을 발행한 기관에서요.” 지연이 답했다. “개인정보를 가리려고 만든 코드였어요. 그런데 거래소는 그걸 ‘누구에게나 대체 가능한 자리’로 읽었죠.” 소라는 화면을 확대했다. “그럼 이건 이름을 찾기 위한 명단이 아니라, 미확인 상태를 유지해야 했던 목록이네요.”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대로라면 당사자가 확인할 때까지 지급도 회수도 보류했어야 합니다.” 박현정은 확보된 자료를 접수번호별로 분리했다. 실명을 포함한 부분은 피해자 확인에 필요한 담당 기관만 열람하도록 하고, 그 밖의 사람은 오류 발생 경위와 숫자만 볼 수 있도록 했다. “지금 공개하면 온 세상이 가짜 가족을 진짜로 믿어 버릴 수 있어요.” 우빈은 이해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비밀과 누군가의 잘못을 숨기기 위한 비밀은 같지 않았다. 오전 아홉 시 무렵, 성인 강나래가 기록소에 도착했다. 어린 나래는 이명숙과 함께 안전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 나래는 자기 어린 시절의 기록을 필요 이상으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고 먼저 말했다. 그 대신 자신이 분명히 기억하는 한 장면을 이야기했다. “우린 어느 방에서 종이 인형을 만들어 놀았어요. 이름 대신 표정을 그렸죠. 다 울고 있는 얼굴이었는데, 한 아이만 웃는 얼굴을 그렸어요.” “누구였어요?” 우빈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냥 웃는 애라고 불렀어요. 그 애는 자기 그림을 서랍에 넣고 잠갔어요. 어른이 함부로 가져가지 말라고.” “그 아이가 열일곱 번째일까요?” “그럴 가능성만 있어요.” 나래가 말했다. “저도 남들이 자꾸 제 이야기에 맞는 이름을 찾아 줄 때가 가장 무서웠어요.” 그녀는 일행이 만든 대조표에서 열일곱 번째 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건 빈칸으로 남겨 주세요. 빈칸이 사람을 지우는 게 아니라, 아직 몰라서 채우지 않은 거라고 적어 주세요.” 우빈은 빈칸 옆에 작은 주석을 달았다. ‘당사자 확인 전까지 추정 등록 금지.’ 그때 거래소로부터 이의 접수 현황이 도착했다. 열일곱 건 중 세 건에는 이미 실제 사람이 응답했다. 한 사람은 원래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고 했고, 또 한 사람은 반송된 적 없다고 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자신이 아닌 가족에게 계속 청구서가 왔다고 진술했다. “당사자가 실제로 나타나도 정산이 자동으로 멈추지 않네요.” 소라가 말했다. “심사 대기 상태가 되긴 합니다.” 지연이 화면을 넘겼다. “하지만 매수인은 ‘이의 처리비용’을 거래 가격에서 빼 버리죠. 피해자가 나타났다고 손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람의 이의를 또 숫자로 만들어요.” 서강재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실제로 응답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신영미라는 여성이었다. 나래가 직접 만나는 건 원치 않았지만, 담당 상담자를 통해 전한 짧은 말이 있었다. '지원금은 구경도 못 했는데 아들 앞으로 정산 통지가 왔어요. 누가 우리 가족을 마음대로 빌려갔나요?' 우빈은 그 문장을 한 번 읽고 다시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자신이 처음 금고를 쓸 때 어머니가 받았던 부채 통보와 비슷한 문장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이유로 위험에 놓였지만, 종이가 가족을 대신 결정한다는 점은 같았다. 지연은 당사자 동의 범위를 확인한 뒤 그 진술을 공식 오류 신고에 첨부했다. 신영미가 더 원치 않는다면 추가 진술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우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의 피해를 증명하려고 또 다른 대가를 치르게 해서는 안 됐다. “그럼 그 자료를 결제 담당자한테 보내야죠.” “그 경로가 바로 BJH-06이에요.” 지연이 말했다. “그 계정이 접수되는 이의의 통로도 쥐고 있어요.” 모니터 한쪽에 붉은 점이 켜졌다. 정해원의 이름으로 새 이의 신청이 올라왔다는 알림이었다. 소라는 신청 내용을 읽지 않고 먼저 서명 방식과 제출 경로를 확인했다. [정해원 / 이의 제출] [경로: 외부] [실명 검증: 미완료] “이 사람도 막 끌어다 쓰면 안 돼요.” 그녀가 말했다. “본인이라는 확인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우빈은 마지막 첨부 메모에서 익숙한 문장을 보았다. ‘아무도 받지 않은 것은 아무에게도 팔 수 없다.’ 지난번 정해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에도, 그들이 찾은 파란 장부에도 있던 원칙이었다. 오전 열 시가 조금 지나자, 우빈의 휴대전화로 다시 차윤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자동 안내가 아니었다. 누군가 울음을 참으려는 숨소리가 먼저 들렸다. “정우빈 씨. 당신들은 조합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아직 절반도 몰라요.” “직접 만나서 말해 주세요.” “나가면 죽는 건 나예요. 그들이 내 이름을 지운 건 내가 거래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거래를 멈추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빈은 소라를 바라봤다. 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읍시다.” 그가 말했다. 차윤서는 한참 침묵하다 한 단어를 말했다. “창고.” “어디 있는 창고요?” “처음 금고를 실험하던 곳. 그 안에 실제 돈이 갔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종이가 있습니다.” 통화가 끊겼다. 지연이 고개를 들었다. “삼목 철공소 옛 작업장. 원래 정태수 씨가 망치를 쓰던 곳 말이에요.” 우빈은 아버지의 망치 손잡이를 만졌다. 자신들이 지나온 장소가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면, 그때 보지 못했던 종이를 이번에는 읽어야 했다. [결제까지 08:06:21] 작업장까지 차로 한 시간. 서류를 보존하고 검증하는 데는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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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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