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비 때문에 시장 골목의 포장상자들이 물에 불어 있었다. 우빈은 상자 위를 밟지 않으려고 길을 돌아갔다. 편의점 유리창에는 실종 반려견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이름도 있고, 찾는 사람이 없어서 이름 없이 남는 존재도 있었다.
새벽자산유통의 등기된 주소는 의외로 평범했다. 인쇄소와 세탁소 사이, 우편함이 열두 개 달린 소형 사무실 건물. 세 번째 층 복도에는 문패조차 없었다.
지연은 관리사무소에 정식 방문 목적을 밝힌 뒤, 법인이 계약한 사무실이 어디인지 확인했다. 그녀가 가져온 것은 공시된 주소 내역과 자기 회사에서 받은 거래 안내문뿐이었다. 서강재는 이 건물로 발송된 안내서가 반송되지 않았다는 내부 메모를 떠올렸다.
“여기 누가 사는지는 몰라도, 편지가 도착한 것처럼 만들어 둘 수 있었죠.”
문이 열렸다. 안쪽에는 책상도 컴퓨터도 없었다. 형광등 아래 열두 개의 우편함만 벽을 채웠다. 우편함마다 사람이 살지도 않는 아파트 동호수가 적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이명숙이 사는 집의 옛 주소였다.
우빈이 발을 멈췄다.
“엄마가 살던 집인데.”
소라가 곧바로 팔을 붙잡았다. “확인만 하고 만지지 마요.”
우편함 아래쪽에는 낡은 관리표가 붙어 있었다. 수신자의 이름 대신 ‘동의율’, ‘가족 추정 확률’, ‘예상 이의 비용’이라는 칸이 있었다. 사람의 집이 금융 상품의 운송 경로처럼 취급되는 표였다.
“이건 개인정보 유출이기도 해요.” 소라가 말했다. “피해 범위를 당사자에게 알리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지연은 휴대전화로 관리표의 전체 배치를 촬영했다. 특정 주소가 드러나는 사진은 외부로 보내지 않고 박현정에게만 전달하기로 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노인이 나타났다. 손에는 마트의 얇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세 사람을 보더니 한참을 망설였다.
“여기서 사람 찾습니까?”
“어떤 사람을요?” 우빈이 물었다.
“편지 찾으러 오는 사람이요. 가끔 와요. 자기는 여기 안 사는데 꼭 자기가 받은 편지라고 하더라고.”
노인의 이름은 오경수였다. 건물 관리인이 잠깐 집을 비운 동안 우편물을 분류해 주는 주민이라고 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받은 일이 아니라, 잘못 온 편지를 돌려놓다 보니 관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상한 건 말이오, 반송 딱지를 붙이면 며칠 후 똑같은 봉투가 돌아와. 수신인 글씨만 바뀌어 있지.”
오경수는 손에 든 비닐봉지에서 붉은 선이 그어진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는 주소만 있고 수신인은 없었다.
“이건 여기에 두면 안 되겠어서 보관해 둔 겁니다. 안에 뭔지는 몰라.”
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지 않은 채 보존해 주세요. 본인이 원한다면 접수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노인은 뜻밖의 질문을 했다.
“그런데 어디로 접수하면 돼? 여기 경찰도 두 번 왔다 갔어. 봉투 가져갔는데 다음 날 또 오더라고.”
우빈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처음 금고를 받았을 때 계약서 하나를 넣으면 모든 일이 끝난다고 믿었다. 이제는 편지 한 장을 제대로 돌려주기도 어렵다는 걸 알았다.
오경수는 오래된 우편함 하나 앞에 서서 손바닥으로 녹슨 문을 두드렸다. 그 상자는 십 년 넘게 비어 있었다. 노인은 그곳으로 배달된 편지를 한 번도 뜯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우편함의 관리표에는 최근까지 '전달 성공' 표시가 줄줄이 찍혀 있었다.
“여기 우체통에 편지가 들어가면 누가 가져간 건지 아는 사람 있어요?” 우빈이 물었다.
“없지. 여기 안 사는 사람 이름도 있는데.”
노인이 무릎을 굽혀 우편함 밑에서 납작해진 봉투 하나를 꺼냈다. 수신란은 깨끗했다. 반송 도장은 두 번이나 찍혀 있었지만 맨 위에는 새로 찍힌 '수령 확인'이 있었다. 세 사람은 말없이 그 봉투를 바라봤다. 사람이 없는 주소가 스스로 편지를 받았다는 기록. 괴물보다 무서운 것은 종이 한 장만 보고 그 말을 믿은 사람들이었다.
관리표에서 가장 오래된 날짜는 2002년 6월 13일이었다. 숫자를 보는 순간 지연이 몸을 숙였다.
“여기에 주소가 없었던 사람의 수령 기록을 만든 날이에요.”
그녀는 설명했다. 실제 집이 없는 사람, 주소를 옮긴 사람, 보호시설에 머문 사람의 연락처를 ‘미확정’으로 남겨야 하는데, 새벽자산유통은 그 공백에 대체 주소를 만들어 매입자에게 제공했다. 연락을 받지 못하면 이의가 없는 것으로 계산했다.
“매수인은 편지를 보냈다는 증명만 사는군요.” 우빈이 말했다.
“네. 받았는지 확인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그때 복도 위쪽에서 우편함 열두 개가 동시에 덜컹거렸다. 금속 문틈에서 접힌 종이들이 튀어나왔다. 종이에는 우빈이 거주한 모든 주소가 순서대로 찍혀 있었다. 학교 기숙사, 군 복무 전 원룸, 지금 사는 집까지.
“이걸 어떻게 알아?”
“실제 기록을 훔쳤거나, 여러 기관 자료를 묶었거나.” 소라가 말했다. “저게 다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어요.”
가장 마지막 종이가 그의 발앞에 내려앉았다.
[최신 주소: 정우빈]
[수취 대상: 17번 미수령 아동]
[두 사람의 주소를 통합하시겠습니까?]
종이의 검은 글자가 미세하게 뛰었다. 우빈은 뒷걸음쳤다. 엉터리 가족관계 확인서가 이제 주소를 합쳐 같은 사람인 것처럼 만들려 하고 있었다.
오경수가 우빈의 소매를 붙잡았다.
“젊은이. 남의 우편함에 자기 이름 쓰는 거 아니야. 그것만은 내가 알아.”
우빈은 웃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지연의 전화가 울렸다. 거래소 담당자에게서 온 음성 메시지였다.
‘주소 인증이 완료됐습니다. 매입자 공개 절차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인증한 적 없어요.”
지연은 메시지를 다시 들었다.
“인증한 건 우리가 아니에요. 이 건물의 우편함이죠. 방금 누군가 가짜 주소를 현실 주소로 넘겼어요.”
오경수의 비닐봉지에서 붉은 선의 봉투가 혼자 펼쳐졌다. 그 안에는 계약서가 아니라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매수인 이름: 기재 불가]
[대리 입장자: 검은 장갑]
[입찰 장소: 옛 중앙역 분실물 보관소]
다음 거래는 지하에서 열리는 게 아니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제7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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