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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71화
PAYLUA ORIGINAL · 제71화

71화. 값이 매겨진 빈칸

빚을 먹는 금고 · 2,897자

오프라인 책장
정우빈은 자신에게 온 문자를 세 번 읽었다. ‘당신들이 막은 건 수령뿐입니다. 매매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문자는 발신 번호가 없었다. 삭제하려고 길게 누르자 도리어 휴대전화 유리에 은빛 도장이 떠올랐다. 뒤집힌 삼각형, 가운데 숫자 06. 유리 아래에서 누가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바로 답하지 마.” 김소라가 말했다. 구륜 생활보호 기록소 주차장의 가로등은 두 개 중 하나만 켜져 있었다. 조금 전 떠난 검은 승용차의 배기가스 냄새가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에 남아 있었다. 서강재가 차 번호의 마지막 두 자리를 적어 박현정에게 넘겼다. 전체 번호를 본 사람은 없었다. “저 문장은 미상채권관리에서 썼던 경고문과 다릅니다.” 서강재가 화면을 들여다봤다. “거긴 회수 대상자를 부르지 매매를 언급하지 않아요. 매입자 쪽입니다.” “누가 사들이죠?” “돈을 빌려준 적도 없는 회사들이요.” 그 말에 우빈은 피식 웃을 뻔했다. 빚진 사람을 찾아다니기도 바쁜 세상에, 빚이 생긴 적 없다는 사실까지 돈을 주고 산다니. 그러나 어머니에게 도착했던 가짜 가족관계 확인서가 떠오르자 웃음은 목구멍에서 멈췄다. 기록소 회의실로 돌아왔을 때 시계는 오후 여덟 시 십일 분이었다. 박현정은 회수 계정의 접속 사실을 별도의 사고 기록에 남기고 있었고, 송윤희는 열일곱 번째 미수령 편지를 다시 잠긴 수령함에 넣었다. 누구도 대신 열지 않았다. 서강재는 한참 망설이다 옛 동료의 번호를 눌렀다. “한지연 씨. 나 서강재예요.” 전화 너머에서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 “퇴사한 사람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했죠.” 여자가 말했다. “알아요. 그런데 BJH-06이 돌아왔어요.” 그 소리가 뚝 멎었다. “어떤 날짜로?” “72시간 후 집행입니다.” “그거 회수가 아니에요. 결제일이에요.” 서강재가 의자를 끌어당겼다. 지연은 미상채권관리의 거래 심사 담당자였다. 내부 신고를 준비하다 다른 부서로 발령 났고, 이후 서강재와 연락을 끊었다. “정확히 뭘 결제한다는 겁니까?” 소라가 전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수령 여부를 알 수 없는 문서요. 원래 아무 돈도 받을 수 없는 서류죠. 그런데 일곱 개 원본의 도장을 통과하면 ‘누군가 지급받았고 누군가는 대신 책임진다’는 자산으로 바뀌어요. 거래소에서는 그걸 미확정채권이라고 부릅니다.” “그럼 존재하지 않는 빚의 가격을 매겨요?” “이름이 비어 있으면 가격이 더 올라가요. 나중에 누구든 끼워 넣을 수 있으니까.” 지연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하지만 서강재가 말했다. “우리는 정해원 씨 명의로 찍힌 BJH-06 기록을 확보했습니다. 원본 02가 사람을 수령자로 지정하지 못하게 막았어요.” 잠깐의 정적 끝에 지연이 낮게 말했다. 지연은 망설이다 한 가지 숫자를 더 알려 주었다. 설명회 자료에서 '원금'으로 적힌 금액과 과거 장부의 금액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원본 02에 남아 있던 지원 예정액은 십칠억보다 훨씬 적었다. 거래소는 지급되지 않은 원금을 사들인 게 아니라, 확인 불능 상태를 유지할수록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미래의 금액으로 계산했다. “실제로 입금된 돈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요.” 지연이 말했다. “내가 그걸 안 본 채 수익률만 검토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 일을 다시 하고 싶진 않아요.” 우빈은 열일곱 번째 미수령 아동의 편지가 아직 수령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누구도 대신 가져갈 수 없는 작은 편지. 그런데 누군가는 그 편지의 주인이 영영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며 십칠억 원을 적었다. “그럼 그쪽에서 손실을 한 번에 메우려고 할 겁니다. 지난번 경매에 실패한 사람들, 지금도 같은 장부를 들고 있어요. 내일 아침 아홉 시, 시청 건너편 오래된 상공회관에 오세요. 다만 내 이름은 아직 말하지 마세요.” 전화가 끊겼다. 서강재의 손이 떨렸다. “믿어도 될까요?” “믿고 안 믿고는 만나서 판단해요.” 소라가 대답했다. “지연 씨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우리도 무턱대고 들이닥치지 말고요.” 그날 밤 우빈은 집에 들렀다. 이명숙은 식탁에 콩나물국을 올려두고 아들이 신발을 벗는 걸 지켜봤다. 우빈의 목 뒤에는 금고를 본 날부터 생긴 검은 종잇조각 같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씻어도 안 지워지네.” 어머니가 말했다. “처음엔 무서웠는데, 이제 뭔지라도 알고 싶어요.” “다 안다고 무서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이명숙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우빈의 생일 때마다 정태수가 손으로 그려 놓았던 키 표시와 날짜들이었다. 맨 밑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있었다. ‘우빈, 오늘 처음 아빠라고 불렀다.’ “나는 네가 누구 가족인지 금고한테 물을 생각 없어.” 우빈은 그 종이를 접지 않았다. 식탁에 펴 둔 채 천천히 국을 먹었다. 열 시 사십이 분, 지연에게서 사진이 도착했다. 상공회관의 낡은 안내판 뒤에 붙은 작은 흰 스티커였다. [미확정채권 결제 설명회 / 비공개] [입장 기준: 보유 수익권 또는 회수 권한] 그리고 두 번째 사진. ‘경매 예정 자산’이라고 표시된 표의 첫 줄이었다. [자산 00017 / 실수령자 미상 / 가족관계 대체 가능] [최저 입찰액: 1,700,000,000] 열일곱 번째 아이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 한 장이, 누군가의 장부에서는 십칠억 원의 숫자가 되어 있었다. 우빈은 휴대전화 화면을 껐다. 아버지의 망치는 현관 옆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망치를 들기 전에 사람들이 값을 매기고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새벽이 가까워지자 목 뒤의 검은 얼룩이 조금 뜨거워졌다. [결제까지 68:00:00] [매도 대상: 미수령 기록 17번] 그 아래 마지막 줄이 나타났다. [현재 소유자: 공란] ‘공란’이라는 두 글자를 보며 우빈은 깨달았다. 이번 싸움에서 지켜야 할 것은 누군가의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끝내 이름이 적히지 않을 권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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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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