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온 우빈은 우편물을 먼저 만지지 않았다.
이명숙은 이미 식탁 위에 봉투를 놓고 한 걸음 물러서 있었다. 아들이 신신당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봉투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낯선 인물이 보호자로 기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건 처음 봐.”
봉투에는 구륜 생활보호 기록소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내용은 단순했다. 정우빈은 정태수의 장남이 아니라 ‘미상 아동 보호 관계에 편입된 참고인’이라는 것. 보호자 란에는 ‘정해원’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우빈은 편지를 들고 소라에게 영상을 연결했다. 소라가 인쇄 상태를 보며 말했다.
“원본 발급번호가 없어요. 발급 기관 표기만 있고 담당자도 비어 있어요. 이 서류가 공식 기록이라고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럼 정해원이라는 이름도 가짜일까요?”
“정해원이라는 사람이 없다는 뜻은 아니죠. 이 서류에 그 이름을 적을 권한이 있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해요.”
이명숙은 남편의 오래된 앨범을 꺼냈다. 우빈이 어릴 때 찍은 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중 하나에서 정태수는 갓 태어난 우빈을 안고 웃고 있었다. 사진 뒷면에는 병원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우리 집에 있던 자료가 전부 답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말했다. “적어도 너를 키운 사람이 누구인지 이 종이 한 장 때문에 달라지진 않지.”
우빈은 사진을 오래 바라봤다. 가족은 법적인 기록과 함께 살아가는 관계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이름을 빚으로 바꾸기 위해 새로 만든 가짜 서류가 그 관계를 마음대로 지울 수는 없었다.
그날 오후, 박현정은 원본 02의 수정 이력 중 일부를 확보했다고 연락했다. 보존 조치 이후 남아 있던 복제 장부를 비교한 결과였다. 2002년 6월 13일 새벽, 수취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상자에 ‘인수 완료’라는 표시가 추가됐고, 바로 그다음 줄에서 예외 승인 권한이 사용됐다.
[실물 수취 확인: 없음]
[전산 대체 수취: 승인]
[승인 주체: BJH-06]
[최종 완료 표시: BJH-07]
“이걸로 정해원이 서명하지 않았다는 점도 증명되나요?” 우빈이 물었다.
“한 단계는 분명해졌어요.” 박현정이 말했다. “2002년의 최종 승인 표시가 실제 수령 확인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다만 1998년의 명의 사용 문제는 별도로 조사해야 합니다.”
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알게 됐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하는 일이 예전보다 익숙해졌다.
그와 소라, 서강재, 박현정은 구륜 생활보호 기록소로 다시 모였다. 송윤희는 자신이 보관한 서류의 목록과 날짜를 설명할 준비를 해 두었다. 백재헌도 출석해 자신의 결재로 대체 서명 권한이 만들어진 사실을 다시 인정했다. 누구도 그를 대신해 변명하지 않았다.
“이 장부를 고치는 일에 제 도장을 쓰지 않겠습니다.” 백재헌이 말했다. “당시 무슨 권한을 어떻게 위임했는지 설명하고, 조사를 받겠습니다.”
우빈은 그 말을 듣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다만 늦게나마 책임을 자신의 이름으로 돌려놓으려는 첫 번째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박현정은 관련 기관으로부터 받은 회신을 차례로 읽었다. 생활보호 기록소의 실물 수령 확인은 여전히 없다. 정해원 본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진술서는 정식 검증이 진행 중이다. 세 기관에 퍼진 잘못된 가족 관계 중 두 곳은 철회됐고, 마지막 한 곳은 접수번호를 남긴 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 이제 ‘누군가 수령했다’는 문구를 자동 사실로 사용할 수 없어요.”
서강재가 본원금고의 대조 상태를 열었다.
[02 / 수령 완료 기록 보류]
[07 / 최종 수취 사실 확정 취소]
[동일 원본 참조 외부 기관: 정정 통지 발송]
화면 가장 아래에는 처음 보는 문장이 나타났다.
[미수령을 새로운 채무로 변환하지 않음]
우빈은 가슴 안쪽에 오래 붙어 있던 무게가 조금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02번 장치의 오류가 모두 해결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이 기록 하나 때문에 누군가에게 새로운 책임을 넘기는 일은 막았다.
그때 기록소 천장에서 종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검은 형상이 다시 나타났다. 예전처럼 높고 위협적인 괴물은 아니었다. 작은 아이만 한 그림자가 수령함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는 발송되지 못한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수신: 열일곱 번째 아동]
[반송 사유: 주소 확인 불가]
우빈이 다가가자 그림자는 고개를 저었다. 손에 든 편지는 그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대신 가져가면 곧바로 그 사람이 수령자가 되는 구조였다.
“그 사람 이름을 아직 모르는 거지?” 우빈이 물었다.
그림자가 끄덕였다.
“그럼 여기 둬. 본인이 찾으러 오면 그때 확인하면 돼.”
형상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다음 천천히 편지를 수령함 안에 넣었다. 금고가 처음으로 물건을 아무에게도 떠넘기지 않고 보관한 순간이었다.
[보관 상태 변경: 미수령 유지]
[대체 수취인: 없음]
송윤희는 울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업무 장부에 날짜와 시각을 적었다. 무슨 괴물을 봤다고 말하지 않고, 확인할 수 있는 사실만 남겼다.
‘보류 상태 유지. 실제 수령자가 확인되기 전까지 대체 서명하지 않음.’
우빈은 작업 가방의 지퍼를 닫았다. 아버지의 망치를 쓸 일이 없었다는 것만으로 오늘은 충분했다.
하지만 정문을 나서기 직전, 서강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미상채권관리의 내부 서버에서 보낸 공지였다.
[02 / 자동 수취 확정 경로 차단 확인]
[상위 정산 체계: 손실 인식]
[우회 집행 준비: 회수 권한 재할당]
“상위 정산 체계?” 소라가 물었다.
서강재가 화면을 내려 읽었다.
“일곱 장치를 관리하는 회사 외에, 그 장치들이 만든 채권을 사들이는 별도 거래 체계가 있어요. 우리가 02의 수령 확인을 막았더니 그쪽에서 손실로 잡은 겁니다.”
“어디서 운영합니까?”
“거래 상대방 이름은 가려져 있어요. 대신 회수 담당 계정 하나가 방금 활성화됐습니다.”
우빈은 고개를 들었다.
[회수 계정: BJH-06]
[담당자 확인: 검은 장갑]
[대상 채권: 정해원의 이름으로 발행된 모든 계약]
[집행 예정: 72시간 후]
조금 전의 백재헌은 자신이 만든 권한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빌린 다른 누군가는, 그 오래된 권한을 이용해 다시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서강재가 낮게 말했다.
“우리가 원본 하나를 바로잡으니까, 이제 누가 그 오류를 팔아먹었는지 드러나는군요.”
우빈은 수령함을 돌아봤다. 봉투는 그 안에 안전하게 놓여 있었다. 그 안의 사람은 아직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름이 없다고 해서 빚이 되는 건 아니었다.
박현정은 받은 통지의 사본을 따로 저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전처럼 출처 모를 숫자 하나를 쫓는 대신, 실제로 누가 거래를 제안하고 승인했는지 확인할 흔적이 필요했다. 서강재는 거래 체계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현직 회수자만 볼 수 있는 화면이었다.
“제가 아는 예전 담당자가 있습니다.” 서강재가 말했다. “하지만 몰래 자료를 빼내 달라고 하진 않을 겁니다. 그 사람이 안전하게 내부 신고할 수 있는 절차가 있는지부터 확인하죠.”
우빈은 검은 장갑을 낀 누군가가 세상에 여러 번 나타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1998년 사진의 장갑, 어머니가 기억하던 장갑, 적재함을 잠근 장갑. 그것들이 모두 같은 사람의 손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었다. 어쩌면 그 장갑 자체가 업무를 맡은 사람에게 지급되는 물건일지도 몰랐다. 특정 인물을 찾는 대신, 장갑이 가리키는 역할과 조직을 찾는 것이 더 정확했다.
“이번에는 금고가 아니라 거래한 사람을 찾아야겠네요.”
소라가 대답했다.
“그래요.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의 이름을 빌려 왔는지부터 확인합시다.”
건물 밖에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조용히 출발했다. 뒷유리에 비친 장갑 낀 손이 휴대전화 화면을 끄는 모습이 아주 잠깐 보였다.
차가 골목을 빠져나간 뒤 우빈의 전화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당신들이 막은 건 수령뿐입니다. 매매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7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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