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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69화
PAYLUA ORIGINAL · 제69화

69화. 열일곱 번째 빈칸

빚을 먹는 금고 · 3,228자

오프라인 책장
열일곱 번째 아이의 이름을 찾는 일은 명단을 뒤지는 것과 달랐다. 2002년에 남겨진 장부에는 그 아이의 이름이 없었고, 가족을 추정할 수 있는 주소도 적혀 있지 않았다. 잘못된 원본을 믿고 조회하면 시스템이 만든 가짜 가족을 다시 확인하는 셈이 될 수 있었다. “이 아이의 이름이 꼭 필요한 건 아닐 수도 있어요.” 김소라가 말했다. 정우빈이 그녀를 돌아봤다.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찾아야죠. 하지만 그 아이가 누군지 모른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대신 책임을 져서는 안 되잖아요.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자동 배정부터 멈추는 거예요.” 박현정은 원본 02에 대한 보존 조치와 별도로 오류 확산을 막는 요청을 관련 기관에 전달했다. 각 기관이 새로 생성된 대체 가족 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사실로 취급하고, 실제 당사자와의 대조가 끝날 때까지 자동 집행을 멈춰 달라는 내용이었다. 일부 기관은 신속히 응답했지만 몇 곳은 확인에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서강재는 오래된 접수 절차를 다시 살폈다. “이 장부엔 한 가지 이상한 특징이 있습니다. 원래는 모든 미수령 건에 확인 보류 코드를 붙였는데, 열일곱 번째만 번호 대신 문장이 있어요.” “무슨 문장?” “‘누구의 소유도 아님.’” 우빈은 종이를 들여다봤다. 그 문장을 본 순간 어린 나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이가 자기 이름을 말하기 전까지는 이름을 쓰지 말라는 가르침. 정해원은 그때 이름을 일부러 남겨 놓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름을 지운 사람이 반드시 적은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이름을 함부로 기록하지 않으려는 선택이 누군가를 지키기도 했다. 백재헌이 조용히 말했다. “그 아이는 사고 때 구조된 아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정해원은 가족 관계를 확인하지 못한 아동을 보호 대상으로 따로 분류했습니다. 부모를 찾을 때까지 타인이 서류로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려고요.” “그런 아이가 몇 명이었죠?” 소라가 물었다. “그건 제 기억만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우빈은 이제 그의 말에 자주 붙는 ‘모른다’를 예전처럼 비웃지 않았다. 책임질 일이 없다는 뜻으로 말하는 ‘모른다’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지어내지 않겠다는 ‘모른다’는 서로 달랐다. 다만 백재헌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한 과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우빈은 열일곱 번째 항목이 어린 나래에게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추측을 소리 내지 않았다. 이미 두 명의 나래는 자신들이 누구인지 확인받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잃었다. 근거도 없는 연결로 또 다른 두려움을 주고 싶지 않았다. 서강재는 원본 02를 받아 간 기관마다 서로 다른 오류 코드가 붙었다고 설명했다. 한 기관은 ‘미수령’을 ‘수취 완료’로 바꿨고, 다른 기관은 ‘가족 미상’을 ‘가족 대기’로, 마지막 기관은 ‘보호 중’을 ‘채무 승계 중’으로 해석했다. 최초 기록은 하나였지만, 그 기록을 복사할수록 원래 의미에서 멀어졌다. “만약 한 사람이 잘못 해석한 거라면 찾아서 고치면 되죠.” 우빈이 말했다. “하지만 이건 여러 기관이 자기가 원하는 값으로 빈칸을 채운 겁니다.” 소라가 답했다. “누가 언제 어떤 표로 바꿨는지 남겨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아요.” 그들이 만든 대조표에는 사람 이름 대신 코드와 날짜가 적혔다. 피해자의 실제 정보를 필요한 기관 외에 퍼뜨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름을 되찾는 일과 이름을 공개하는 일이 언제나 같지는 않았다. 그때 박현정이 정해원과 관련된 연락을 받았다. 서주 자료관에 최근 한 시민이 옛 보호 기록을 확인하고 싶다는 문의를 남겼다고 했다. 정해원이라는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확인을 요청한 문구는 정확했다. ‘열일곱 번째 항목의 인수자를 만들지 말아 주세요.’ 소라가 말했다. “그분께 지금 당장 누구인지 밝히라고 하지 마세요. 원하시는 방식으로 자료를 제공받고, 필요한 경우 직접 진술하실 수 있다고 안내해 주세요.” 그녀는 연락해 온 사람을 금고의 열쇠처럼 취급하지 않으려 했다. 오랜 세월 숨어 지냈을 수도 있는 사람에게 또 누군가의 안전을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건 잘못이었다. 오후 늦게, 정해원의 이름으로 서면 하나가 들어왔다. 신원은 아직 독립적인 확인이 필요했지만 내용은 구체적이었다. ‘나는 1998년 11월 3일 예외 승인실에 있지 않았다. 내 이름이 쓰인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미수령 증명을 수령 완료로 바꾸지 말아 달라. 열일곱 번째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편지에는 마지막으로 한 문장이 더 있었다. ‘내 이름의 권한을 누군가 가져갔다면 그 사람이 쓴 내역을 공개해 달라. 나는 사라진 적이 없다.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은 있었지만.’ 우빈은 편지를 읽고 생각했다. 긴 세월 뒤에 나타난 증언이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금고가 마음대로 처리했던 빈칸에 자신의 말을 남겼다. 그 순간 본원금고의 일곱 번째 장치에서 알림이 떴다. [02 / 최초 승인자 명의 오기 가능성 확인] [07 / 수취 완료 자동 확정 유보] [17건 대체 가족 생성 요청 일부 철회] “일부?” 우빈이 물었다. 서강재가 화면을 넘겼다. “다른 세 기관이 이미 신규 가족 관계를 받아들였어요. 정정 요청을 보내야 합니다.” 그들은 다시 사람들의 기록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느 기관에서 누구를 잘못 올렸는지, 실제 피해가 생겼는지, 누가 그 정보를 열람했는지 구분했다. 첫 번째 기관에서는 대체 가족 관계가 승인 단계에서 차단됐고, 두 번째 기관은 이미 안내문을 발송했다. 세 번째는 아직 응답이 없었다. 그때 우빈의 휴대전화로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빈아, 집에 모르는 우편물이 왔다.” “무슨 우편물이요?” “네가 아버지의 장남이 아니라는 확인서래. 그런데 서류 맨 위에 내가 모르는 여자 이름이 있네.” 우빈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것도 그 금고가 보낸 거니?”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은 그 서류대로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제가 가서 확인할게요.” 전화를 끊자 소라가 우빈을 바라봤다. “시스템이 이제 당신 가족 관계 자체를 바꾸려는 거군요.” 우빈은 장부의 열일곱 번째 줄을 다시 보았다. 이름이 없는 아이에게 누구의 가족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야만 빚을 넘길 수 있다면, 금고는 가족이라는 말마저 훔칠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이제 가족이 누구냐고 묻는 게 아니라, 누가 그 질문을 왜 만들었는지부터 확인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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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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