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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67화
PAYLUA ORIGINAL · 제67화

67화. 돌아오지 않은 증언

빚을 먹는 금고 · 2,865자

오프라인 책장
정해원에게 보낸 메시지가 열람됐다는 사실은 희망처럼 보였다. 소라는 곧바로 그 희망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본인이 읽었다는 보장은 없어요. 계정을 넘겨받은 사람이나, 시스템이 열람으로 표시했을 수도 있어요.” “알아요.” 우빈이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연락할 방법을 하나 찾은 거잖아요.” 그는 새벽 다섯 시가 가까워지도록 기록소 계단에 앉아 있었다. 바깥에는 쓰레기 수거차가 다니기 시작했고, 편의점 앞에는 첫 출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보관실에서는 송윤희가 남은 서류의 상태를 정리하고 있었다. 물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서류마다 찍힌 붉은 도장이 조금씩 진해졌다. 박현정은 원본 02에 임시 보존 조치가 적용됐다고 알렸다. 누가 와서 임의로 폐기할 수 없도록 출입과 반출 내역을 기록하는 절차가 시작됐다. 하지만 기록의 내용이 옳은지까지 판정된 것은 아니었다. “이건 지킨 겁니다.” 박현정이 말했다. “고친 건 아니고요.” 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 아홉 시. 소라는 서주 시립 자료관에서 받은 연락을 공유했다. 1998년 11월 3일 방문 명단과 함께 구내식당 식권 발급 기록이 남아 있었다. 정해원 이름으로 오후 두 시 육 분에 출입하고, 같은 날 오후 네 시 반에 퇴실한 기록이었다. 종이 묶음에는 다른 방문자의 필체와 식권 수량까지 남아 있었다. “동선에 대한 근거가 하나 더 생겼네요.” 소라가 말했다. “그 시각 사고 현장에는 없었던 거군요.” “사고가 언제 일어났는지와 이동 시간을 맞춰 봐야 해요. 지금은 중요한 가능성으로 남겨 두죠.” 백재헌은 그 자료를 보고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새벽의 당당한 태도는 사라졌다. 그는 정해원의 출장을 승인한 자신이 왜 그녀 명의의 대체 서명에 눈을 감았는지 조사받겠다고 했다. 박현정은 그 약속을 서면으로 남겼다. 우빈은 밤새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소라는 그에게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라고 했지만 머릿속에선 원본 02의 숫자가 계속 돌아갔다. 그때 어머니에게서 도시락 사진이 도착했다. 전날 데운 밥과 멸치볶음, 아들이 좋아하던 계란말이가 반찬통에 들어 있었다. ‘가방에 넣어 둔 거 먹어. 밥 먹고 나서 일해.’ 우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가방을 열었다. 도시락은 아직 따뜻했다. 거창한 약속이나 계약서가 없어도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었다. 그것을 누가 대신 수령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잠깐 먹고 합시다.” 그가 말했다. 소라가 웃었다. “그 말은 드디어 하네요.”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우빈은 자신이 사흘 동안 한 번도 어머니에게 금고의 진행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위험하지 않은 범위에서 현재 상황을 전하고, 내일은 집에 들르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빚으로 만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낮, 성인 나래가 자료실에 도착했다. 어린 나래는 병원 상담을 받은 뒤 쉬고 있었다. 소라는 나래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보기 싫은 자료까지 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나래가 먼저 묻는 것부터 대답했다. “정해원이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기억나요?” 우빈이 물었다. 성인 나래는 종이 위의 글씨를 한동안 바라봤다. “내가 어릴 때 나를 부르던 사람이 있었어요. 본래 이름을 알려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항상 '천천히'라고 했죠. 잊는 것보다 잘못 기억하는 게 더 무섭다면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정해원이라는 이름을 썼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종이봉투를 접는 방식은 기억납니다.” 나래는 서랍에서 빈 종이 한 장을 꺼내 세 번 접었다. 양쪽 끝을 안으로 넣자 봉투가 됐다. 우빈은 그 봉투의 모양을 알아봤다. 2002년 원본 서류에 있던 녹색 카드와 같은 접힘이었다. “아이들한테 개인정보를 적게 하지 않으려고 빈 봉투를 만들었어요.” 나래가 말했다. “자기가 원할 때만 이름을 넣으라고.” 소라는 접힌 모양을 사진으로 남기되 나래의 말과 별도로 표기했다. 기억은 단서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과거를 완전히 되살릴 수는 없었다. 그러다 자료실 전화가 울렸다. ‘정해원 씨의 연락처로 문자를 보내셨습니까?’ 상대는 서주 시립 자료관의 직원이었다. 오래된 기증 기록에 있던 비상 연락처로 문의했더니, 그 번호의 현재 사용자가 자신은 정해원이 아니라고 답했다고 했다. 대신 전달할 수 있는 메모가 있다고 했다. “무슨 내용입니까?” 소라가 물었다. ‘당사자가 원하면 이쪽으로 직접 연락하겠답니다. 그리고 방금 메모 한 줄을 남겼어요.’ 직원이 읽었다. ‘일곱 번째 도장이 찍히기 전에는, 아무도 수령자가 아니다.’ 우빈은 박현정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 문장은 금고가 끊임없이 어기고 있던 원칙이었다. 자료관 직원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또 하나요. 메모를 남긴 사람이 당신들한테 묻고 싶다더군요. 백재헌은 자기 이름을 찾았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남의 이름을 빌립니까?’ 통화가 끝난 뒤 우빈은 백재헌을 떠올렸다. 진짜 백재헌이라 주장하는 남자가 그 질문을 들으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그 순간 본원금고의 알림이 도착했다. [02 / 외부 증인 접근 경고] [권한 소유자 변경 요청] [변경 후보: 정해원] 소라는 곧바로 답장을 쓰지 않았다. 누가 정해원을 원본 권한 소유자로 올리려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본인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동의 없이 새 책임을 씌울 수는 없었다. “우리가 이 사람을 찾는 이유는 이름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우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맞아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으려고 찾는 거죠.” 그날 저녁, 모르는 번호로 짧은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백재헌에게 1998년 사고 당시 들고 있던 봉투가 아직 있는지 물어보세요. 없다고 하면 가방의 밑바닥을 보라고 하세요.’ 발신자는 자신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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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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