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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65화
PAYLUA ORIGINAL · 제65화

65화. 일곱 개의 도장

빚을 먹는 금고 · 3,045자

오프라인 책장
“손대지 마세요.” 박현정의 말에 백재헌은 열린 가방에서 손을 뗐다. 일곱 개의 도장은 한 줄로 놓여 있었지만 서로 색이 달랐다. 검은색, 짙은 남색, 녹색, 갈색. 마지막 것은 새것처럼 붉은 고무가 빛났다. 서강재가 구부정하게 몸을 낮췄다. “BJH-01부터 BJH-07까지군요.” “잘못 알고 계십니다.” 백재헌이 말했다. “이건 원래 일곱 개가 아니었습니다.” 우빈은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럼 몇 개였는데요?” “단 하나. 수취했다는 걸 당사자에게 확인하는 도장이었어요. 나머지는 그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을 늘리려고 만든 것입니다. 제가 허락했습니다.” 소라가 물었다. “왜 허락했죠?” “지원금과 보상금의 지급이 늦어져서요. 당시에는 서류가 모자라면 사람이 한 달씩 기다렸습니다. 제가 출장 중이거나 부재일 때도 처리가 되도록 하고 싶었죠.” “그래서 일곱 사람이 당신 이름으로 대신 서명하게 했고요.” “네.” “그 결과 누구도 최종 책임을 지지 않게 됐죠.” 백재헌은 대답하지 못했다. 우빈은 그가 누구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신분증과 오래된 사진, 도장에 대한 설명은 서로 맞아떨어졌지만 거짓말을 잘 준비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흉내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도장을 찍도록 둘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이 도장으로 원본 02를 없앨 수 있습니까?” “제일 마지막 도장만이 수취 완료를 확정합니다.” “누가 사용했죠?” “그걸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세 시 십팔 분. 시각이 넘어가자 보관실 안쪽 벽에 복도 하나가 나타났다. 벽돌이어야 할 자리가 길게 뚫려 있었고 안쪽에서 서류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실제 건물 구조도에는 없는 공간이었다. 경찰이 비춘 손전등에서는 평범한 콘크리트 벽으로만 보였다. 우빈과 서강재, 소라는 같은 복도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박현정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세 사람의 반응을 메모했다. “위험한 공간이면 들어가지 마세요. 제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도 남겨 두겠습니다.” 백재헌은 빈 벽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 안에서 네가 듣고 있나?” 안쪽에서 답이 왔다. ‘수령 권한을 가진 사람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금고의 목소리와 비슷했지만 조금 더 높은 소리였다. 백재헌이 고개를 돌렸다. “보셨지요. 시스템은 증언자가 누구인지를 따지지 않고 입장 권한이 있는 사람만 찾습니다. 제가 만들었던 절차가 지금은 사람을 막는 문이 됐습니다.” 우빈은 소라를 바라봤다. “들어가야 합니까?” “안쪽에서 뭔가 말한다고 꼭 들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먼저 밖에 남은 자료를 조사해요.” 보관실의 네모난 그림자는 조용히 다가오더니 우빈 앞에 종이를 펼쳤다. 문장을 읽는 순간, 우빈은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증언 보류로 인한 위험을 인정합니까?] [인정한다면 귀하의 이름을 작성하십시오] “인정해도 책임을 받는 거고, 인정하지 않으면 위험을 외면했다고 기록하겠지.” 우빈이 말했다. 서강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엔 제가 이런 문서를 보냈습니다. 동의했다는 칸만 남기면 처리 실적이 좋았어요. 고객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는지는 뒤로 밀렸죠.” 소라는 손목시계를 봤다. 위험은 실제였다. 하지만 위험을 설명하는 문서와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계약은 같지 않았다. “우리가 어떤 자료를 확인할지 결정하는 데도 이름을 쓸 필요는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확인할 자료가 무엇인지부터 남기고, 사람에게 설명하고, 그 사람이 선택한 것만 기록하면 되죠.” 종이는 공중에서 마구 접혔다. 종이 안에 갇힌 짧은 비명 같은 소리가 났다. 우빈은 망치 대신 귀를 막았다. 그 소리는 누군가가 다쳤다는 사실을 뜻하지 않았다. 하지만 겁을 주는 데는 충분했다. 금고는 다시 사람들이 빨리 결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벽 속 복도가 아니라 사람의 기록이었다. 송윤희가 보관해 온 수령 확인표, 운송 장부, 과거의 사진. 거기에 남아 있는 날짜를 맞추기 시작했다. 2002년 6월 12일. 적갈색 상자가 수취 불능으로 접수됐다. 다음 날 BJH-07 자동 확인으로 수취 완료 처리됐다. 2003년 송윤희가 부임했다. 그보다 앞서 정해원이라는 전임자가 빈 수령증을 보관했다. “정해원 씨를 아십니까?” 소라가 백재헌에게 물었다.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 사람은 기록소 직원이 아니었습니다.” “등록 자료엔 전임자라고 돼 있어요.” “제 옛 동료입니다. 기록을 설계한 사람이었어요.” “그럼 실종됐다는 말도 사실입니까?” “모릅니다. 떠난 뒤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백재헌은 처음으로 개인적인 감정을 보였다.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정해원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손끝이 떨렸다. “그녀는 종이 한 장을 보냈습니다. 제가 도장을 늘릴 때 반대했죠.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는 일을 대리할 수는 없다고요.” 우빈은 물었다. “그런데 왜 듣지 않았죠?” “편리했거든요. 하나의 도장으로 책임이 밀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계약업체들이 그 도장 값을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도장을 찍어 주는 일이 돈이 되더군요.” 백재헌은 가방 맨 끝의 붉은 도장을 가리켰다. “저 도장은 처음엔 없었습니다. 누군가 나중에 추가했어요. 종이에 찍혀 있는 걸 보고 알아챘지만 이미 제가 만든 것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했죠.” “그걸 누가 찍었는지 모르고요?” 소라가 확인했다. “제가 아는 이름으로는요.” 그때 갑자기 일곱 도장 중 검은색 도장이 굴렀다. 그대로 바닥을 두드린 자리에서 얇은 문서 한 장이 솟아났다. [1998년 구조기록 원본 / 반송 책임자 지정] [담당자: 정해원] [서명 확인: 본인 동의 없음] 백재헌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녀는 저 서명을 하지 않았어요.” “그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우빈이 물었다. 백재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정해원은 구조 현장에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다른 도시로 보냈으니까요.” 복도 안쪽에서 금고가 또각또각 도장을 찍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 누가 그날 그 이름을 썼습니까?’ 백재헌은 입을 열지 못했다. 우빈은 그 침묵이 그가 여태껏 지켜 온 무엇인가를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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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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