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윤희는 자신이 처음 기록소에 배치된 해를 분명히 기억했다.
2003년 봄이었다. 당시에는 생활보호 서류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지원을 신청한 뒤 어디에서 받아야 하는지 모르거나 주소가 바뀌어 우편물을 놓치곤 했다. 송윤희의 일은 그들이 실제로 받았는지 확인하고, 받지 못했으면 다시 안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998년 최초 확인자라니요. 그때 저는 이 지역에 살지도 않았어요.”
박현정은 카드의 사진을 찍고 원본을 다시 보관함에 넣도록 담당자에게 설명했다. 기록은 원래 위치와 함께 보존돼야 했다. 위조 여부를 알아보려면 종이의 재질, 잉크, 보관 흔적까지 확인해야 했다.
“시스템에서 새 이름을 썼을 수도 있어요.” 서강재가 말했다. “원본과 조회 기록은 별개로 봅시다.”
송윤희는 작은 열쇠 꾸러미를 꺼내 자신의 보관 장부를 열었다. 2003년 접수부터 이어진 필체는 단정했다. 누가 언제 무엇을 꺼냈는지가 매일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2002년 6월 12일 항목만 앞장에 따로 붙어 있었다.
‘이름을 확인하지 못한 수령증 1장. 인수자를 만들어 기재하지 말 것.’
우빈은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이걸 남긴 사람은 누구죠?”
“전임자예요. 서류상 이름은 정해원. 하지만 실제로 만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왔을 땐 이미 그만뒀거든요.”
“정해원 씨를 찾아야겠네요.” 소라가 말했다.
“실종자라고 들었어요. 가족들이 찾다가 포기했다고요.”
그러나 송윤희는 바로 말을 고쳤다.
“아니요. 포기한 게 아닐 수도 있어요. 내가 가족에게 직접 들은 게 아니니까.”
우빈은 그 말을 귀담아들었다. 금고는 누군가의 실종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회수 완료라고 쓰곤 했다. 사람들의 입에서 무심코 나오는 ‘포기했다’는 말도 같은 종류의 빈칸을 만들 수 있었다.
송윤희는 서가 앞에서 작은 수첩 한 권을 꺼냈다. 첫 장에는 퇴직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작년에 그만두려다가 후임자가 구해지지 않아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손전등을 켠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전 여기 들어온 신청서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고 믿고 일했어요.”
“그게 당연한 일 아닌가요?” 우빈이 물었다.
“서류만 하루에 수백 장씩 보면 잊기 쉬워요. 줄마다 숫자만 남고, 정말 온 사람이 누구였는지 모를 때도 많죠. 그래서 동의하지 않은 걸 받았다고 적어 두면 안 되는 거예요.”
우빈은 그제야 송윤희가 왜 폐기 예약을 듣고도 도망가지 않았는지 조금 이해했다. 그녀에게 이곳은 기이한 힘이 숨은 장소가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이 책임지던 업무 현장이었다. 그렇다고 위험을 감수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는 직원에게 보관실 안의 작업을 가능한 한 교대로 하도록 부탁했다.
송윤희가 수첩을 접으며 말했다.
“내가 늦게까지 남았다고 모두 끝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도 혼자는 못 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더 와야죠. 대신 이름을 써 줄 사람이 아니라, 함께 확인할 사람이요.”
지하 보관실의 젖은 선반이 조금씩 마르기 시작했다. 담당 직원이 제한된 수량의 서류를 임시 보존 상자로 옮겼고, 박현정은 운반 번호와 촬영 시점을 대조했다. 우빈은 멀리서 보관 과정을 지켜봤다. 검은 형상은 점점 얇아졌지만 수령함 앞에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기록을 보여 주려는 건가, 못 보게 하려는 건가.” 그가 말했다.
소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둘 다일 수 있어요. 상대가 문서를 내밀 때는 우리가 스스로 서명하기를 기다렸잖아요.”
송윤희가 낡은 접수철에서 작은 종이 봉투를 찾아냈다. 봉투에는 ‘연락처 불명’이라는 표시가 있었고 안에는 유치원 색종이만 한 녹색 카드가 들어 있었다.
[수령 물품: 성명 보호 요청서]
[수령자: 미기재]
[목격자: 1명]
[실제 인수 확인: 없음]
날짜는 2002년 6월 12일. 우빈은 목덜미가 서늘했다. 음성 녹음과 우편 장부에서 반복되던 바로 그날이었다.
카드 뒷면에는 또박또박 글씨가 적혀 있었다.
‘아이의 이름을 먼저 적으면 아이가 책임을 받습니다. 이름을 묻기 전에 아이를 찾으세요.’
서강재는 눈을 감았다.
“이게 원래 확인 절차였을 수도 있겠군요. 수령증은 나중에 쓰고 실제 당사자를 먼저 찾는 것.”
소라가 대답했다. “아니면 그 절차를 어긴 사람에게 남긴 경고일 수도 있어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해석을 기록했다. 어느 쪽이 맞는지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만 진실인 척할 이유는 없었다.
그때 송윤희의 휴대전화에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전임 관리인 정해원’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송윤희는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정해원 씨 번호는 오래전에 없어졌는데요.”
박현정이 신고 접수 내용을 확인하는 동안 송윤희가 스피커폰을 켰다. 지직거리는 소리 뒤에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령증을 찾으셨나요?’
“누구세요?” 송윤희가 물었다.
‘아이를 먼저 찾으라고 적어 놓았어요. 왜 또 증인을 찾고 있죠?’
소라가 휴대전화의 녹음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말했다.
“말씀하신 아이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몰랐으니까 적어 둔 겁니다.’
그 대답은 녹음 속 익명의 여성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의 높낮이도, 끊어지는 부분도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우빈은 성급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카드의 뒷면을 다시 보세요.’
통화가 끊겼다.
송윤희가 카드 뒷면을 뒤집었다. 낡은 녹색 표면에는 방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가느다란 선이 있었다. 손전등 불빛을 비스듬히 대자 선이 이어져 숫자가 됐다.
‘02:47’.
그 아래에는 두 글자가 더 있었다.
‘반송’.
우빈은 폐기 예약 시각을 떠올렸다.
“02시 47분에 이걸 반송하라는 뜻인가요?”
“아니면 02시 47분에 누군가 반송했다는 기록일 수도 있어요.” 소라가 말했다.
현재 시계는 02시 4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다섯 분이었다.
바닥에 엎드린 검은 형상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수령증 모양의 흰 네모가 나타났다.
[반송 기한 도래]
[반송인 지정: 기록소 내 생존자 중 1명]
송윤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제가 대신 받으라고 하겠군요.”
우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안 해도 돼요. 아무도 안 받았다는 사실부터 남기면 됩니다.”
그때 건물 앞마당에서 자동차 문이 닫혔다.
새벽 세 시 십칠 분까지는 아직 삼십오 분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백재헌을 증언석에 세우겠다는 사람은 벌써 도착해 있었다.
제6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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