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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61화
PAYLUA ORIGINAL · 제61화

61화. 증인이 도착하기 전

빚을 먹는 금고 · 2,816자

오프라인 책장
구륜 생활보호 기록소의 주소는 세 가지였다. 시청 민원 안내에는 서쪽 산업단지 끝의 2층 건물로, 미상채권관리의 내부 자료에는 폐쇄된 구륜우편집중국 별관으로, 본원금고가 보내 준 지도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터로 표시됐다. 정우빈은 세 화면을 나란히 펼쳐 놓았다. 세 주소의 거리는 차로 십 분 남짓이었다. 누가 서류를 잘못 입력했다면 정정하면 그만인 문제였다. 하지만 그중 하나는 명백히 누군가를 엉뚱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일단 시청에 등록된 주소부터 확인해요.” 김소라가 말했다. “폐기하려는 사람들이 시청 주소를 알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담당 기관에도 알렸어요. 우리가 먼저 가서 막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사람이 안에 있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박현정은 기록관리원 당직자와 통화 중이었다. 원본 02의 보존 요청은 접수됐지만, 누가 어떤 서류를 폐기하려 하는지 명시하지 않으면 현장 보존 조치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전화 너머의 담당자에게 미상채권관리 계정이 보낸 ‘원본 02 폐기 예정’ 메시지를 읽어 주었다. “발신자 신원은 조사 중입니다. 그러나 오늘 밤에 자료가 없어질 위험은 구체적입니다. 확인 가능한 폐기 일정부터 중지해 주세요.” 통화를 마치자 박현정은 모두를 돌아봤다. “기록소에 야간 근무자가 있답니다. 송윤희 씨. 예전에 생활보호 신청을 접수하던 분인데 지금은 민간 보관시설 관리도 맡고 있어요.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박현정이 연락처를 찾는 동안 서강재는 세 주소의 옛 지도 사진을 겹쳐 보았다. 건물이 없어지거나 이름이 바뀔 때마다 보관 주체가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분실된 민원 기록의 건수는 정확히 같았다. 1998년에는 열일곱 건, 2002년에는 같은 열일곱 건, 2008년에는 이 숫자가 0으로 바뀌었다. 사건이 해결돼 0이 되었는지, 집계 방식이 변경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이거 숫자만 보면 모두 돌아왔다는 뜻이네요.” 우빈이 말했다. “반대일 수도 있죠.” 서강재가 화면을 확대했다. “더는 세지 않기로 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소라는 무심코 창밖을 봤다. 늦은 밤에도 도시의 불은 켜져 있었다. 누군가가 주소를 찾아가지 못하면 편지가 돌아오고, 사람이 행방불명되면 누군가가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 장부는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숫자에서 먼저 지워 버리고 있었다. “저 숫자를 되살리는 게 우선이 아니에요.” 소라가 말했다. “숫자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죠.” 통화 연결음이 여섯 번 울렸다. ‘네. 기록소입니다.’ 낮고 잠긴 여성의 목소리였다. 박현정이 신분과 용건을 밝히자 상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송윤희가 물었다. ‘BJH-00이 온다는 문서를 받으셨어요?’ 방 안의 네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어떻게 아셨죠?” 박현정이 물었다. ‘그 번호로 온다는 사람은 다들 새벽 세 시 십칠 분을 고릅니다. 벌써 세 번이나 봤어요. 첫 번째는 사람이 왔고, 두 번째는 편지였고, 세 번째는 그냥 소리였어요.’ “이번에는 누가 옵니까?” ‘백재헌이라고 적혀 있어요. 하지만 이름만으로 사람을 믿으면 안 돼요.’ 송윤희의 말은 우빈이 조금 전 어린 나래에게 해 준 대답과 같았다. 우빈이 전화를 넘겨받았다. “서류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지금 그곳에 위험한 사람이 있습니까?” ‘이상한 일이야 있죠. 저녁부터 건물 안이 덜컹거리고, 폐기용 파쇄기 예약이 잡혀 있어요. 그런데 우리 시설엔 파쇄기가 없거든요.’ 수화기 너머로 무거운 물건이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송윤희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누가 대문을 열었나 봐요.’ 통화가 끊겼다. 우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라가 재킷을 집어 들며 말했다. “현장 신고는 현정 씨가 연결해 주세요. 우리도 출발하되, 누가 들여보내 주지 않으면 억지로 들어가지 맙시다.” 서강재가 운전대를 잡았다. 기록소로 가는 길에는 새벽 시장을 준비하는 트럭들이 느리게 지나갔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싣고 움직이는 차들이었다. 우빈은 그런 트럭들 사이에 원본을 없애러 가는 차가 섞여 있으리라고 생각하자 속이 메스꺼웠다. 첫 번째 주소는 빈 건물이었다. 셔터 아래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구륜 생활보호 기록소 이전: 구 주소 사용 금지.’ 옆에는 새 주소가 인쇄돼 있었지만 잉크가 번져 마지막 숫자가 보이지 않았다. 소라가 휴대전화 불빛을 비추자 종이 끝에 손글씨가 드러났다.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보여 줄 것.’ “누가 쓴 걸까요?” 우빈이 물었다. “모르죠. 일단 사진으로 남겨요.” 그때 길 건너편에 세워진 회색 화물차의 적재함이 흔들렸다. 차체에는 ‘폐문서 보안 운송’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운전석은 비어 있었고 적재함 안쪽에서 종이를 찢는 소리가 났다. 우빈의 작업 가방 안에서 망치가 조금 떨렸다. “저 차예요.” 그가 말했다. “증거 없이 뒤지면 안 돼요.” 소라가 그의 팔을 잡았다. “번호부터 확인해요.” 서강재가 차량 번호를 적는 순간 화물차가 스스로 경적을 울렸다. 적재함 틈새로 길고 검은 종이 한 장이 흘러나왔다. 바람을 타고 떨어진 종이에는 한 줄만 적혀 있었다. [02 / 폐기 예약: 02:47] 현재 시간은 02시 11분. 세 시 십칠 분의 증언보다 삼십 분 먼저, 누군가 원본을 태우려 하고 있었다. 화물차 안에서 이번에는 사람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우빈이 발걸음을 멈췄다. 서류가 아니라 사람이 갇혀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차체에 붙은 긴급 연락번호로 전화를 걸고, 박현정에게는 현장 신고를 우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침이 다시 들렸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가 말했다. “안에 있는 건 서류가 아니에요. 저도 이름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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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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