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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6화
PAYLUA ORIGINAL · 제6화

6화. 대신 갚는 사람들

빚을 먹는 금고 · 5,652자

오프라인 책장
승합차에서 내린 첫 번째 남자는 검은 장갑을 벗고 손바닥을 보여 주었다. 손바닥에는 지문 대신 가느다란 격자가 새겨져 있었다. 체크박스처럼 생긴 격자 사이로 숫자가 흘렀다. 우빈은 작업대 뒤에 몸을 숨긴 채 그것을 보았다. "우리가 돈을 대신 갚으면 안 되는 겁니까?" 그 질문은 우빈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철공소 벽 너머에서 누군가 울먹이며 말했다. 낯선 남자들 뒤에는 평범한 옷을 입은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양손에 두툼한 영수증 뭉치를 쥐고 있었다. "남편이 대출을 받은 거예요. 저는 도장 찍은 적 없어요. 그냥 집에 돌아가게만 해 주세요." 장갑을 벗은 남자가 미소 지었다. "고객님, 이의 신청은 가능합니다. 다만 신청 전에 기존 책임을 승계해야 합니다." "책임을 승계하면요?" "가족분의 이름이 정상화됩니다." 여자는 망설이다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 순간 소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안 돼. 저건 함정이에요." 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문을 박차고 나갈 수는 없었다. 남자가 다른 손으로 얇은 판을 꺼냈기 때문이다. 판에는 복잡한 문자와 빈 서명란이 있었다. 여자가 그 앞에서 펜을 집으려 할 때, 우빈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못 한 개를 집어 던졌다. 팅. 못이 판의 모서리에 박혔다. 적당한 힘으로 던졌는데도 쇳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남자가 손목을 움켜쥐었다. 여자는 놀라 도망쳤다. "누구야?" 우빈은 숨을 죽였다. 소라가 작업대 위 유리병을 굴렸다. 유리병은 반대편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자들이 소리를 따라 움직이는 사이 둘은 철공소 뒤쪽 창고로 들어갔다. "사람을 데려왔어요. 남의 가족을 미끼로 쓰는 거예요." 소라가 말했다. "저 여자, 우릴 노리려고 데려온 걸까요?" "모르죠. 하지만 저 사람이 놓고 간 종이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소라는 문틈에서 영수증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종이 윗부분에 업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대명 생활안심 보증 서비스.' 아래쪽에는 분명하게 다음 문장이 적혀 있었다. [신규 보증인 등록 완료 시 기존 가족 기록 복원] "한 사람을 구하려면 다른 한 사람을 빚에 넣어야 한다는 얘기군요." 우빈의 머릿속에 어머니가 떠올랐다. 자신도 조금 전까지 그런 제안을 받았다면 서명했을지 모른다. 삶이 벼랑 끝에 몰린 사람에게 강요된 선택이 어디까지 진짜 선택일까. 도영식이 그들 뒤로 기어왔다. 그는 숨을 고르며 작은 검은 물체를 내밀었다. "이거 챙겨. 저 사람들이 오면 이걸 찾을 거야." 손바닥만 한 나무 조각이었다. 앞면에는 [00]이 새겨져 있었고, 뒤편에는 익숙한 별 모양 흠집이 있었다. 아버지 공구함의 낙인과 같았다. "왜 나한테 줘요?" "당장 내 목숨이 걸렸으니까. 네가 가지고 있으면 저놈들이 나를 쫓는 건 멈출 거야." "또 떠넘기겠다는 소리네요." "맞아. 이제 내가 나쁜 사람인 줄 알았지? 원래 그랬어." 도영식은 비틀어 웃었다. "하지만 네가 살아서 아비한테 물어보면 적어도 진짜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는 알게 될 거야." 우빈은 나무 조각을 챙겼다. 소라는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 "도영식 씨, 경찰에서 당신 찾고 있어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경찰이 날 찾는지 금고가 날 찾는지 구별할 수나 있어?" 그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다시 검은 종이가 나올 것 같은 표정이었다. 창고 뒤편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사다리가 있었다. 나무로 덮인 뚜껑을 열자 먼지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올라왔다. 우빈이 먼저 내려갔다. 한 칸씩 발을 딛다 보니 사다리 끝은 좁은 지하실이었다. 오래된 계산기와 서류 보관함이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우빈은 지하실로 내려오기 전 문 아래 있는 나무 홈을 한동안 살펴봤다. 얇은 경사면을 따라 나무가 조금씩 닳아 있었다. 큰 기계를 끌고 내려온 흔적이었다. 문턱에는 금속 긁힌 자국도 있었다. "무거운 걸 여러 번 옮겼어요. 적어도 한 번은 아니에요." 소라가 손전등을 비추었다. "이 아래에 금고가 있었나 봐요." "그보다 더 큰 장치였을 거예요. 철제 바퀴가 여기에 걸린 흔적이 있어요." 우빈은 손끝으로 틈을 재었다. 아버지 공방에서 무거운 판재를 운반할 때 바닥 보호대를 만들어 준 적이 있었다. 흔적을 보고 물건의 크기와 무게를 짐작하는 것은 오래된 버릇이었다. 서랍장 앞에는 정산 영수증 뭉치가 있었다. 우빈은 첫 장을 집었다. 사용 금액은 2만 원. 그 아래 청구 금액은 3만 원. 항목 이름은 달랐지만, 모두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회수했다는 기록이었다. [자문료 / 0원] [책임 이전 수수료 / 1명] "수수료가 한 명이라니." 소라는 영수증을 넘겼다. 그 밑에는 영업 성과표가 있었다. 담당자마다 한 달 동안 처리한 사건 수가 적혀 있었다. 어떤 직원은 사십 건, 어떤 직원은 육십 건이었다. 마치 영업 실적을 다투듯 순위까지 매겨져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필요하니까 영업을 하는 거예요." "사람을 많이 확보하면 뭘 얻는데요?"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공급이라는 표현이 여기 있네요." 공급. 우빈은 그 단어를 여러 번 되뇌었다. 누군가의 아이, 어머니, 동생이 재료가 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책상 아래에서 종이컵 하나를 발견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 서류에 손을 대지 않으려고 컵 테두리를 잡아 들자, 물 대신 누런 잉크가 바닥으로 흘렀다. 잉크는 타일 줄눈을 따라 기어가더니 벽면의 금속판 아래로 스며들었다. "살아 있는 잉크 같아요." 소라는 발을 뒤로 뺐다. 우빈은 주변의 종이를 다시 살펴보았다. 잉크는 아무 종이나 향하지 않았다. 사람 이름이 적힌 종이 앞에서만 뭉치기 시작했다. 그때 문서 한 장이 책상 위에서 스스로 뒤집혔다. [대상자: 18번] [등록명: 정우빈] "누가 내 이름을 여기에도 썼어요?" 그는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문서의 잉크는 흩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망치에서 삐져나온 나무 가루를 따라 움직였다. 우빈이 망치를 들어 올리자 잉크도 따라 올라왔다. "나무에 반응해요." 소라가 소리쳤다. "그럼 나무로 막아 보죠." 우빈은 작업대에 놓인 얇은 합판을 집었다. 종이 위에 합판을 얹자 잉크는 멈췄다. 합판에 새겨진 나뭇결을 따라 갈팡질팡하다가 방향을 잃었다. "이건 서류가 아니라 그림자잖아요." 우빈은 낮게 말했다. 금고가 자꾸 나무에 반응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무는 종이와 같은 재료에서 출발했지만, 종이가 되기 전의 흔적을 품고 있었다. 아버지가 금고 외함을 나무로 만든 이유가 혹시 그것 때문일까. 소라는 잉크가 멈춘 틈을 이용해 영수증과 성과표를 비닐에 담았다. 누군가 다시 이곳을 조작해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증거를 손에 넣었다. 그러다 서랍 아래쪽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웃고 있는 단체사진이었다. 뒤편 벽에는 낯선 글귀가 걸려 있었다. '대신 갚으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이 사람들, 자발적으로 온 게 아닌 것 같아요." 소라가 말했다. 사람들 눈은 카메라를 향했지만 손은 모두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의자 옆마다 검은 끈이 걸려 있었다. 우빈이 사진을 뒤집자 날짜와 시각이 적혀 있었다. 바로 어제 오후였다.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일이었다. 그때 사진 속 사람 한 명의 얼굴이 흐려졌다. 두 사람이 보고 있는 앞에서 벌어진 변화였다. 우빈이 급히 그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사진 뒤편에 붙은 명찰 하나가 스르르 사라졌다. 사람의 신분이 정산되는 순간이었다. 우빈은 그제야 지하실 반대쪽에서 들리는 작고 반복적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누군가 끝없이 같은 말을 연습하고 있었다. 나는 동의합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청구하지 않겠습니다. 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에 의자들이 있었다. 지하실 한편에는 의자가 줄지어 있었다. 의자마다 누군가의 이름을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일부에는 아이들의 글씨처럼 삐뚤삐뚤한 글자가 보였다. [김주영 / 대리 납부] [박하나 / 보호자 승계] [오명선 / 명의 공백] "여기서 사람들을 데려와 계약시킨 거예요." 소라가 숨을 삼켰다. 우빈은 가장 가까운 의자에 손을 올렸다. 의자 등받이에 앉은 사람의 체온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종이 뒤에는 날짜와 함께 서명이 있었다. 서명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필체였다. "누가 전부 대신 썼어요." 그는 사진을 찍었다. 불빛이 터지는 순간 의자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세 사람의 그림자가 일어서더니 입을 벌렸다. "제가 갚겠어요." "우리 애만은……" "도장만 찍으면……" 우빈은 얼어붙었다. 그림자는 그를 보지 않았다. 영원히 같은 순간을 반복하며 서로 다른 목소리로 애원하고 있었다. 그 앞쪽 벽에 붙은 출입 기록표는 숫자가 빼곡했다. 한 달 동안 이곳을 다녀간 사람만 사백 명이 넘었다. "공장 하나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소라가 목을 가다듬었다. "금융사기라면 돈이 이동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돈보다 다른 걸 빼앗겼어요. 관계, 기록, 시간." "그걸 어디로 가져가죠?" 우빈이 질문하자 지하실 안쪽 철문에서 낮은 소리가 들렸다. "정산소로." 목소리의 주인은 서강재였다. 검은 양복이 찢겨 있었고 오른손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가 벽에 기대 선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죠?" "회수자가 길을 모르면 밥줄이 끊기지." "당신 그림자만 남았던데요." "그건 제 명의가 잠깐 회수됐던 겁니다. 복원하는 데 대가가 좀 들었고요." 그는 손목을 보여줬다. 피부에는 낡은 시계 자국처럼 하얀 고리가 있었다. 시계는 없었다. "아까 당신 어머니에게 넘어간 담보. 정식으로 결제된 건 아닙니다. 아직 가압류 상태예요. 원본 소유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보류할 수 있습니다." "그 원본 소유자가 누군데요?" 서강재는 우빈이 쥔 나무 조각을 바라봤다. "그걸 손에 넣었습니까? 정태수 씨가 드디어 사람을 믿기로 했군요." "아버지가 준 게 아니에요. 도영식이……" "그럼 더 빨리 가야 합니다. 저 조각은 00번 금고를 여는 열쇠가 아니라, 금고가 누군지 알아보는 신분증입니다."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승합차에서 내린 남자들이 사다리를 내려오고 있었다. 서강재는 허리춤에서 검은 봉투를 꺼내 철문에 붙였다. 봉투가 문에 달라붙더니 문손잡이 모양으로 접혔다. "지금부터는 제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마세요." "그게 무슨……" "저놈들은 사람의 대답을 계약으로 바꿉니다. 제가 묻는 질문도 마찬가지예요." 서강재가 먼저 문으로 들어갔다. 우빈과 소라가 뒤따랐다. 마지막으로 도영식이 들어오려는 순간, 뒤에서 남자가 외쳤다. "도영식 씨! 아직 우리 편입니까?" 도영식은 몸을 굳혔다. 우빈은 돌아서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남자의 질문은 이미 끝났고, 도영식의 입은 본능처럼 움직였다. "그렇……" 반쯤 나온 대답 위로 검은 도장이 찍혔다. [근로 계약 갱신 완료] 도영식의 목에서 검은 넥타이가 자라났다. 그것은 천이 아니라 종이였다. 그가 붙잡고 있던 손끝의 살갗까지 서서히 회색으로 변해 갔다. 서강재는 이를 악물고 철문을 닫았다. "저 사람은 이제 우리한테 길을 알려줄 수 없겠군요." 철문 반대편에서 도영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우빈 씨. 본인 확인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이미 도영식의 말투가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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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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