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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59화
PAYLUA ORIGINAL · 제59화

59화. 아버지의 수령함

빚을 먹는 금고 · 3,205자

오프라인 책장
정태수의 작업장은 몇 년 전 문을 닫았다. 우빈은 어머니와 함께 살던 빌라로 돌아왔다. 이명숙은 여전히 야간 근무를 나가는 중이었지만, 최근에는 의사의 권고대로 쉬는 날을 늘리고 있었다. 우빈이 현관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는 밥솥에서 밥을 덜어 도시락통에 담고 있었다. “또 얼굴이 안 좋다.” “일이 좀 있어서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꼭 나중에 이야기하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우빈은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 금고 때문에 처음 위험한 밤을 보내던 때와 달리 현관문은 멀쩡했다. 새로 달아 놓은 잠금장치도 정상이었다. 그 평범한 물건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아버지 작업실 물건들, 아직 남아 있죠?” “왜?” “네모난 나무 상자가 하나 있었어요. 손바닥 두 개만 한 크기에 작은 뚜껑이 있고요.” 이명숙은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어릴 때 동전을 넣고 장난치던 거 말이니? 창고 맨 위에 있어. 네 아버지가 버리면 안 된다고 하셨지.” “그게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하세요?” “정확한 건 모르겠어. 네 아버지가 그 사건 뒤에 자꾸 들여다보던 물건이었지.” 우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미 밝힐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금고와 원본 사건의 진행 상황을 말했다. 이명숙은 아들이 또 위험한 일에 뛰어든다는 사실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막으려고만 하지 않았다. “그 양반 잘못한 거라면 피하면 안 되지.” 어머니가 말했다. “그렇지만 네가 대신 그 잘못을 갚아야 하는 것도 아니야.” 우빈은 그 말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집 안의 작은 창고에서 나무 상자를 찾아낸 것은 그로부터 십 분 뒤였다. 모서리에는 흠집 세 개가 있었고 뚜껑 뒤편에 작은 동전 구멍이 있었다. 상자는 오래된 목재 냄새를 풍겼지만 특별한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바로 뚜껑을 열지 않았다. 소라와 박현정에게 연락해 출처를 보존할 방법을 물었다. 박현정은 이미 사적인 물건인 만큼 가족이 동의하면 사진과 발견 장소를 기록한 뒤 안전하게 운반하라고 설명했다. 훼손하거나 분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상자를 작업대 위에 놓고 네 사람이 영상을 연결했다. 우빈이 사진을 보여 주자 서강재는 규정집의 사진과 나란히 비교했다. 흠집 위치가 같았다. 하지만 수십 년 지난 물건이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 복제품일 가능성은 여전히 있었다. “뚜껑 안쪽에 글씨가 있나요?” 소라가 물었다. 우빈은 상자를 돌렸다. 바닥에 아주 얇은 선이 있었다. 아버지의 필체가 맞는 듯했으나 먼지가 끼어 읽기 어려웠다. 그는 젖은 천으로 닦는 대신 조명을 옆에서 비췄다. ‘받지 않은 것은 빚이 아니다.’ 나래가 말한 문장이었다. 이명숙은 그 글씨를 보자 작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나도 저 문장은 기억난다.” “아버지가 언제 썼는지요?” “어떤 아이가 오지 못했을 때.” 어머니가 낮게 말했다. “네 아버지가 새벽에 돌아와서 문을 못 열었다고 울었어. 나는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냐고 물었는데, 그 양반은 사과할 사람의 이름조차 모른다고 했지.” 우빈은 말없이 들었다. “그러다가 저 상자를 만들었어. 다음에는 누구라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의 이름을 적게 하겠다고. 그런데 몇 달 지나 어느 사람이 찾아와 그 상자를 가져가겠다고 했지. 검은 장갑을 낀 사람.” “가져갔습니까?” “그때는 못 가져갔어. 내가 저 상자는 아이 장난감이라고 했거든. 그 사람이 웃더니 나중엔 아이 이름이 필요할 거라고 했어.” 우빈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 사람 얼굴 기억하세요?”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다만 목소리는 또렷했어. 무슨 일이 생겨도 먼저 서류에 이름을 쓰면 된다고 했지. 네 아버지는 그 사람이 돌아간 뒤 종이 몇 장을 태웠어.” 그 장면은 어머니가 2화에서 떠올렸던 밤과 같았다. 아버지가 금고를 받은 뒤 판자를 태웠다는 기억. 이제 우빈은 그때 아버지가 무엇을 숨기려 했는지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자를 열었을 때 안에는 동전이나 종이가 없었다. 대신 바닥에 얇은 홈이 파여 있었다. 도장을 끼울 수 있는 길쭉한 자리였다. 작은 원형 구멍 아래에는 오래된 먹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도장 자체는 없네요.” 서강재가 말했다. “그렇죠. 이게 원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고요.” 소라가 답했다. 그때 우빈의 손안에서 망치가 미세하게 떨렸다. 금속 머리가 아니라 나무 손잡이 쪽에서였다. 그는 급히 내려놓았다. 망치는 아버지가 가장 오래 쓴 도구였고 손잡이 아래에 비스듬한 흠집이 있었다. 그는 손잡이를 살펴보다 작은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평소엔 손바닥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위치였다. 상자 바닥의 원형 구멍과 크기가 같았다. “이걸 끼워 보라는 뜻인가?” 우빈은 즉시 손을 거뒀다. 금고가 지금까지 모든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 방식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면 사용하고 싶게 만들었다. 버튼이 있으면 누르게 했고, 빈칸이 있으면 이름을 쓰게 했다. “안 해요.” 그가 말했다. 이명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맞다. 물건이 딱 맞는다고 해서 함부로 움직일 건 아니지.” 그들은 상자와 망치의 사진을 보존하고, 실제 구조에 대해 전문가의 확인을 받기로 했다. 집 안의 저녁은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밥솥에서 다시 김이 오르는 동안, 우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본원금고의 번호였다. 미결이 말했다. “수취 사실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치는 상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뭐지?” “상자에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누구야?” 미결은 조금 망설이듯 종이를 넘겼다. “강나래라는 이름으로 보관된 두 개의 기록 중, 어느 쪽도 아닙니다.” 우빈의 손이 멈췄다. “나래 말고 다른 목격자가 있었어?” “세 번째 열람 기록이 있습니다. 단, 신원 확인을 위한 별도 자료가 없습니다.” [07 / 최종 수령 증인] [이름: 기재되지 않음] [기록 상태: 생존 여부 미확인] 잠시 후 두 번째 알림이 도착했다. [목격자가 남긴 음성 기록] [2002.06.12 / 03:17] 재생 버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소라가 오기 전에는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우빈은 나무 상자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만들었지만 아버지의 것이 아닌 물건. 누군가의 부재를 기록하려고 시작됐지만 누군가의 미래를 빼앗는 데 사용된 물건. 상자 밑면에 조명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글자가 하나 더 있었다. ‘미수령’. 그 아래에는 아주 작게 ‘전달 실패가 아니라 전달 거부’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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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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