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 의료 연계실은 병원 건물 안에 있지 않았다.
작은 의료법인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데이터 교환 사무실이었고, 입원비 심사와 이송 기록, 보험 서류를 연결해 주는 업체와 한 건물에 있었다. 정문 유리에는 ‘환자 개인정보 보호’라는 안내가 크게 붙어 있었다. 우빈은 그 문구를 보며 불편한 예감을 느꼈다. 기록을 보호해야 할 곳에서 사람의 이름이 지워지고 있었다.
김소라는 조성필의 동의를 받기 전에는 그 사람의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그와 한연주는 현재까지의 사고 기록 정정 과정을 설명받고, 필요한 항목만 대조하는 데 동의했다. 그 동의서에는 타인의 책임 인수와 관련된 문구가 없는지 별도로 확인했다. 서강재는 자기 이름을 대며 내부 열람 권한을 빌리려 하지 않았다.
사무실 담당자 노지연은 출력된 진료 연계표를 살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사고로 이송된 환자를 물품처럼 정산한 건 우리 규정에 없습니다. 이건 보험 서류도 아니고 의료기록도 아니에요.”
“그럼 어디서 나왔습니까?” 소라가 물었다.
“여기서 출력됐다고 되어 있는데, 출력 장치 등록번호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녀는 화면에 나타난 두 개의 기록을 보여 줬다. 정상 연계표에는 ‘사람이 치료받았다’는 정보가 있었다. 이상한 문서에는 환자 이름 대신 물류 상품 번호가 있고, 수령 장소에는 동서 물류 공동정산실 코드가 들어 있었다.
[환자 회복 예측: 산정 불가]
[예측 불가 손실: 미배송 자산]
[인수 후보: 최초 목격자]
“치료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이유로 사고를 물건의 손실로 바꾸는 거네요.” 우빈이 말했다.
“그런 규칙을 누가 승인했다고 적혀 있죠?” 소라가 물었다.
노지연이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거기에는 직책 없이 서명만 남아 있었다.
[BJH-04 / 위험 부담 자동 조정]
“여기에도 백재헌이네요.” 우빈이 중얼거렸다.
서강재가 즉시 고개를 저었다. “BJH라는 코드가 백재헌 한 사람의 직접 서명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전에 일곱 사람이 권한을 나눠 쓴 기록이 있었어요. 그중 누가 승인했는지까지 확인해야 하죠.”
노지연은 정식 절차로 문제 문서의 생성 경로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소라는 그녀에게 금고 이야기를 전부 설명하지 않았다. 믿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보안 점검과 환자 치료는 먼저 정상적인 절차로 움직여야 했고, 괴물을 믿느냐와 상관없이 문서의 오류는 분명했다.
오후가 되자 조성필이 영상통화에 응했다. 목소리가 아직 힘이 없었지만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을 또렷이 말했다. 그는 팔레트가 흔들릴 때 오른발이 끼었고, 한연주가 비상 정지 버튼을 누른 다음 자신을 밖으로 끌어냈다고 했다. 진료 당시 기록도 그 순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주 씨가 없었다고 적혀 있으면 누가 나를 꺼내 줬겠어요?”
“그 말씀이 중요합니다.” 소라가 답했다. “다만 몸이 회복되신 뒤 필요하시면 정식으로 진술하셔도 됩니다. 지금은 치료가 먼저예요.”
통화가 끝났을 때 노지연의 프린터에서 얇은 종이가 뽑혀 나왔다. 직원은 인쇄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다. 종이는 구겨진 병원 팔찌 모양으로 스스로 말렸다.
[최초 목격자: 한연주]
[책임 전환 실패]
[대체 수취인 탐색 중]
우빈은 프린터 전원을 확인했다. 기계는 이미 꺼져 있었다. 그럼에도 바닥에서 팔찌 모양의 종이가 길게 늘어났다. 기계가 아니라 바닥 그늘에서 종이를 다시 접는 소리가 났다.
형상이 서서히 일어섰다. 입원복 비슷한 흰 종이를 두르고 있었지만 환자의 얼굴은 없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작은 네모가 수십 개 이어져 있었다. 이름을 쓰는 칸 같았다.
“환자 한 명의 미래를 누가 보증합니까?”
우빈은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그 질문에는 누구도 정답을 줄 수 없었다. 의사조차 환자가 언제 완전히 회복할지 약속할 수 없다. 그런데 금고는 그 불확실성을 또 다른 채무로 만들고 있었다.
“모른다고 적어.”
우빈의 대답에 종이 형상이 고개를 돌렸다.
“산정 불가 항목은 누락입니다.”
“미결도 처음에 그렇게 말했어.” 우빈이 답했다. “그런데 그건 누락이 아니야. 아직 모르는 거지. 나중에 확인할 수도 있고, 끝까지 예측 못 할 수도 있어.”
소라가 노지연에게 물었다. “정상적인 진료 기록에서도 예후를 확정하지 못하는 항목은 있죠?”
“물론이죠. 확인되지 않았으면 그렇게 적습니다. 사람을 물건으로 분류하지도 않고요.”
노지연은 동의받은 사실 관계만 다시 조회했다. 환자 본인의 증언, 사고 접수일, 치료가 계속 진행 중이라는 사실. 서류가 스스로 사람을 사물로 분류했다는 이상 기록도 그대로 보존했다.
종이 형상에서 네모 칸이 하나씩 떨어졌다. 바닥으로 흩어진 네모에는 금액 대신 익숙한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확인되지 않음]
형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새 이름을 요구하는 손이 멈췄다. 프린터 옆에 놓인 정상 연계표에는 조성필의 이름과 치료 절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사람의 병이 끝났다고 말한 게 아니에요.” 소라가 조용히 말했다. “진료가 계속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거죠.”
그때 노지연이 새로운 로그를 발견했다.
[04 / 변경 요청 최초 접수: 2008.06.12]
[최초 발신 서버: 기록구조 실험동 07]
[원본 보관 확인: 실패]
서강재의 표정이 굳었다.
“2008년이라면 오미령이 상용화 규칙을 추가한 해입니다. 그런데 실험동 07은 그보다 열 해 전 폐쇄됐다고 들었어요.”
“폐쇄된 곳에서 전송했다는 거죠?” 우빈이 물었다.
“그건 기록의 주장일 뿐입니다.” 소라가 말했다. “하지만 어디서 그런 주장을 만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겠어요.”
창밖으로 먹구름이 몰려왔다. 사무실의 유리창에 일곱 개의 검은 점이 차례로 나타났다. 여섯 개는 서로 이어졌지만 하나는 홀로 떨어져 있었다.
마지막 점 아래에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07 / 수취 확인 재요청]
[증인 등록 가능: 강나래]
우빈은 어린 나래의 얼굴을 떠올렸다. 일곱 번째 장치가 찾는 사람이 자신만은 아니었다.
제5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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