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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56화
PAYLUA ORIGINAL · 제56화

56화. 입주민은 서류가 아니다

빚을 먹는 금고 · 2,671자

오프라인 책장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로비의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들을 달랜 것은 우빈의 망치가 아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뛰어나온 직원 한 명이 아이들을 차례로 불러 안전한 공간으로 옮겼다. 누군가는 보호자에게 연락했고, 누군가는 엘리베이터 사용을 잠정 중지하도록 안내했다. 실제 건물 설비에 문제가 있는지 시설업체에 점검도 요청했다. 금고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해서 현실의 안전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오경옥은 로비 한편에 앉아 우편함을 바라봤다. 이름표가 모두 사라진 우편함은 거칠게 긁힌 자국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옆 벽에는 오늘 아침 각 가구에 전달된 관리비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오경옥은 그 종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저것도 받았어. 어제 분리수거 날짜도 안내받았고.” “네. 그렇죠.” 소라가 말했다. “그러면 내가 여기 산다는 걸 꼭 다른 사람이 증명해야 하나?” 우빈은 입을 열려다 멈췄다. 아무도 오경옥을 대신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누구보다도 그녀 자신이 매일 이곳에 살고 있었다. 서류는 그것을 확인하는 수단이지, 사람을 존재하게 만드는 주문이 아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근무 중이던 주임 최상훈은 입주 원장 사본을 들고 나왔다. 그는 당사자에게 확인 가능한 범위의 자료만 보여 주었다. 계약과 전입, 최근 사용내역은 현실에 남아 있었으며, 외부 보증 심사 조회만 ‘부재 가구’로 바뀐 상태였다. “이상해도 새 계약서를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최상훈이 오경옥에게 설명했다. “기존 계약 효력은 별도로 확인할 수 있고, 외부 업체에 정정 요청을 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엘리베이터 거울에 얇은 금이 갔다. 종이로 만든 손가락 하나가 그 사이에서 삐져나왔다. [공동 거주 진술로 대체할 수 있음] [대표 확인자 이름을 제출하십시오] 우빈은 손가락을 향해 말했다. “대표 확인자는 없어. 여기 사는 사람마다 기록이 있고,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확인하면 돼.” 그러자 손가락은 주변에 선 사람들을 향해 휘어졌다. 우빈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한 말을 되짚었다. 입주민 전부에게 강제로 증언하라고 해도 또 다른 부담이 생긴다. 당장 참여할 수 없는 사람, 연락을 원치 않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한테나 요구하지 마.” 그가 말을 고쳤다. “동의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은 가져가지 마. 기록 확인은 우리가 요청하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선택할 일이야.” 소라는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새로 생성된 화면과 정상 계약 자료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보존해 달라고 부탁했다. 임하영은 시민지원센터에서 관리하는 지원 신청과 전송 내역의 정정 요청을 접수했다. 사본을 만들 때에도 거주자의 이름을 가렸고,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방식으로 오류 유형만 대조했다. 갑자기 로비의 우편함들이 동시에 덜컥거렸다. 날아가던 명찰 가운데 몇 개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오경옥의 이름표는 여전히 엘리베이터 앞에 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06 / 개별 확인 완료] [05 / 신청 기록 재확인 대기] [거주권 실제 상태: 조사 필요] 서강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 장치는 입주 기록 불일치를 인정했군요. 05의 자료를 계속 받고 있으니 완전히 멈추지는 못했어요.” “이게 한 번에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소라가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집을 되돌려 놓는 데 또 다른 가족의 주소를 바칠 필요는 없다는 건 알았죠.” 그때 손기표가 전화를 걸어 왔다. 동서 물류에서 사고 원본 영상의 일부를 복구했다는 소식이었다. 영상에는 한연주가 새벽 세 시 십칠 분에 동료를 끌어내는 장면이 남아 있었다. 영상 자체가 모든 책임을 가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녀가 그곳에 없었다는 주장은 틀렸다. “회사에서도 그건 인정했대요.” 손기표가 말했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더 있어요. 영상이 복구되자마자 치료 관련 서류가 바뀌었어요. 조성필 씨가 업무 중 다친 게 아니라 '개인 자산 파손'이라고요.” “사람을 자산이라고?” 우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니까요. 사고 서류에서 사람 이름이 아예 없어졌어요.” 소라는 전화를 넘겨받았다. “원본은 그대로 보존하도록 말씀해 주세요. 치료나 산업재해 절차는 그 기록과 별개로 계속 진행해야 하고요.” 전화를 끊자 서강재가 본원금고의 상태 조회를 다시 확인했다. [03 / 현장 출입 사실 일부 복구] [04 / 늘봄 의료 연계실 / 위험 부담 재분류] [대상 유형: 인체 → 자산] “이게 서로를 보정한다는 뜻이군요.” 우빈이 말했다. “한 군데에서 사람이 나타나면 다른 곳에서 사람을 지워.” “그것을 막는 방법이 아직 충분하지 않죠.” 서강재가 대답했다. 오경옥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더 이상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우빈에게 자신이 세들어 사는 집의 문고리가 헐겁다며 고치는 법을 물었다. 우빈은 관리사무소에 수리를 신청하면 된다고 설명하고, 벽에 붙은 안내번호를 가리켰다. “이 집은 할머니 집입니다. 누가 주소를 지웠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 말을 들은 오경옥은 잠깐 웃었다. 그러나 로비 밖으로 나온 우빈의 전화에는 낯선 통지가 와 있었다. [07 / 수령 사실 조회] [정우빈이 거절한 책임: 1] [다음 수령 시도까지: 23:59:59] 우빈은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자신은 누구의 책임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금고는 이제 거절마저 수령 기록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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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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