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옥은 주소를 두 번 잃었다.
첫 번째는 실제로 이사했기 때문이었다. 낡은 단독주택을 떠나 딸과 가까운 작은 임대아파트로 들어왔다. 두 번째는 시민지원센터 창구에서 이상한 접수표를 받은 직후였다. 새 집의 호수가 전산 화면에서 사라졌고, 구 주소는 ‘존재하지 않는 가구’로 표시됐다.
임하영은 노인이 설명한 사실을 기록하면서도 사적인 사정을 외부 사람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소라가 돕겠다고 했을 때도 먼저 오경옥에게 참여 의사를 물었다.
“같이 가겠다는 젊은 분들이 계세요. 원치 않으시면 상담은 저희가 이어서 진행합니다.”
노인은 한참 망설였다. 그러다 우빈의 손에 든 오래된 망치를 보았다.
“우리 남편도 저런 망치를 썼지.”
“목수셨어요?”
“문틀을 고치던 사람이었어. 요즘 집들은 문이 참 잘 만들어져서 고칠 일이 없나 봐.”
우빈은 가볍게 웃었다. 노인은 웃으면서도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이사를 마친 뒤 새벽마다 초인종이 울리는데 현관 밖에는 아무도 없다고 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호출 기록이 없다고 했다. 게다가 우편함에는 자기 이름이 아니라 낯선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 사람한테 집을 빌린 적도 없는데, 계속 내가 빚을 졌대.”
소라는 가족이나 타인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묻지 않았다. 노인이 보관한 통지서의 발행번호만 확인했다. 거기에는 대출 원리금이나 집값이 적혀 있지 않았다.
[담보 가치: 거주하던 날 8,416일]
[채무 종류: 보호받은 기억]
[승계 경로: 05 → 06]
“여기서도 시간으로 계산하네요.” 서강재가 말했다.
“그 사람의 시간을 집값처럼 쓴 건가요?” 우빈이 물었다.
“아직 정확히 모르겠어요. 다만 실제로 집을 담보로 맡긴 계약서라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소라가 답했다.
그들은 오경옥의 동의를 받고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방문했다. 관리인은 입주 확인 서류와 계약 내용은 본인에게만 보여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라는 그 절차를 환영했다. 이런 곳에 사는 노인들의 주소가 아무에게나 공개되는 일이야말로 다른 피해의 시작일 수 있었다.
오경옥이 가져온 계약서에는 주소가 멀쩡히 적혀 있었다. 도장도 맞았고 관리사무소의 입주 장부에도 최근 이사 기록이 있었다. 다만 외부 보증 심사 사이트에서 조회할 때만 주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정상적인 기록이 여기 남아 있네요.” 우빈이 말했다.
“네. 대신 심사 업체는 저기서 ‘부재 가구’라고 처리하고 있어요.” 관리인이 말했다. “입주민이 실제로 살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죠.”
한연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자신도 이사할 때 같은 해온 주택보증 심사실을 이용한 적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강재는 그제야 물류센터 사고와 시민지원센터, 주택보증이 연결될 수 있었던 경로를 이해했다.
“서로 다른 장치가 사람을 직접 부르는 게 아니에요. 기존 업무에서 ‘확인 안 됨’으로 표시된 사람을 다른 기관의 ‘위험’으로 넘기고 있어요. 그때마다 새로운 책임을 만들고요.”
그는 휴대전화에 간단한 그림을 그렸다. 중앙에서 모든 사람을 지휘하는 하나의 금고가 아니라, 서로에게 불완전한 기록을 넘겨주는 여섯 개의 장치였다. 각각은 다른 장치의 결과를 사실로 믿었다. 하나가 잘못 기록하면 다른 다섯은 그 잘못을 근거로 새로운 종이를 만들었다.
“그럼 한 군데만 바로잡으면요?” 우빈이 물었다.
“같은 사람이 다른 장치에서 또 부재 처리될 수 있어요. 기록 정정이 전달됐는지도 확인해야 하죠.”
아파트 로비에는 아이들이 학원 가방을 메고 돌아왔다. 오경옥은 그들을 보며 한 아이에게 조심히 손을 흔들었다. 아이도 밝게 인사했다. 분명히 이곳에 사는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이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내부 거울에 낯선 문장이 떠 있었다.
[입주 확인 대상 없음]
[거주 흔적을 회수합니다]
로비의 우편함 열여덟 개에서 이름표가 동시에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종잇조각들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날아갔다. 오경옥의 이름표도 틈에서 흔들렸다.
우빈은 그쪽으로 뛰려다가 걸음을 멈췄다. 이름표를 다시 붙인다고 기록이 돌아올까? 아니었다. 금고는 이런 순간마다 누군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책임지겠다고 말하기를 기다렸다.
소라가 관리인에게 소리쳤다.
“입주민 안전부터 확인해 주세요! 원본 장부는 그대로 보관하시고요. 명찰이 어떻게 떨어졌는지도 기록해 주세요.”
관리인이 비상 연락망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우빈은 문 쪽에 몸을 세웠다. 이름표가 날아가는 길을 막아서려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거울 안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거주 대표 1명 지정]
[대표가 모든 가구의 거주 사실을 보증하면 일시 복원]
“또 대표.” 우빈이 중얼거렸다.
소라가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이 아파트 입주민 전체를 대표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다들 여기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한 사람 이름을 쓰는 대신, 각자의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야죠.”
그때 엘리베이터 유리에 손가락이 하나 더 나타났다. 손가락은 흐릿한 숫자 07을 그렸다. 바닥으로 떨어진 명찰의 뒷면에도 같은 숫자가 있었다.
우빈은 유리창을 노려봤다.
“너희가 찾는 일곱 번째 장치는 이 안에 있는 거야?”
거울이 답했다.
[07은 장소가 아닙니다.]
[07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수취 확인입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1층이라고 표시돼 있던 층수창에 처음 보는 글자가 떠올랐다.
[수취인: 정우빈]
로비가 어두워졌다. 그러나 관리사무소 안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무전을 주고받고 있었다. 우빈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가 실제로 여기 있다는 증거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제5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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