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륜시민지원센터는 창고와 정반대였다.
입구에는 유모차와 지팡이가 놓여 있었고, 전광판은 상담 가능한 창구를 조용한 글씨로 안내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도록 낮은 경사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우빈은 이곳마저 금고와 연결됐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빴다. 세상의 모든 안전한 곳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그 장치가 남긴 가장 깊은 상처처럼 느껴졌다.
김소라는 먼저 일반 상담 접수창구에서 자신들이 하려는 일을 설명했다. 확인하려는 것은 한연주의 의료 정보나 복지 수급 내용이 아니었다. 새벽 세 시 십칠 분에 동서 물류 정산실로 전송된 서류가 시민지원센터 명의로 출력된 이유였다.
직원 임하영은 서른대 초반으로 보였다. 목에는 각종 출입 카드가 달려 있었고, 책상 모서리에는 ‘모든 민원을 오늘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손글씨가 붙어 있었다.
“그 시간엔 상담센터가 문을 닫습니다. 야간 접수 서버는 돌아가도 직원이 승인하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정산실로 나간 문서가 자동 발행된 것일 수 있겠네요.” 서강재가 말했다.
“그럴 수 있죠. 그런데 해당 송신 기록의 열람 권한은 별도 담당자에게 있어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임하영은 조회 화면을 켜고 처리번호를 검색했다. 화면을 한참 바라본 그녀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상하네요. 발행한 적이 없는 상담 건이 있는데 처리 결과만 있어요.”
[야간 지원 연계 / 신청인 없음]
[위험 부담 지정 / 임시 협력자]
[승인 코드: BJH-05]
소라는 메모 수첩을 꺼냈다. “신청인이 없으면 누구를 도왔다는 건가요?”
“모릅니다. 그래서 더 이상하죠.” 임하영이 대답했다. “정상 절차에서는 신청 주체와 담당 기록이 빠지면 완료 처리할 수 없어요.”
센터 뒤편에는 지하 문서실이 있었다. 오래된 상담 카드와 이전 시스템의 백업이 보관되는 곳이었다. 임하영은 자료관리 담당자에게 사유를 설명하고 열람 가능한 업무 기록만 확인해 주겠다고 했다. 서강재는 조용히 기다렸다. 이곳 사람들을 무작정 의심하면 진짜 도움을 구하러 온 사람들부터 피해를 볼 것이다.
문서실에서 올라온 직원은 머리를 저었다.
“보존 목록에 번호가 없습니다. 그런데 보관함 하나가 계속 반납 기한 초과로 뜹니다.”
“대출한 사람이 누구죠?” 임하영이 물었다.
“이름이 기재돼 있지 않아요. 보관함만 체크아웃됐어요.”
우빈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또다시 물건은 움직였는데 사람이 없었다. 빈칸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 다른 이름을 끌어올 차례였다.
그는 출입 권한을 가진 직원들만 내려가도록 했다. 자신과 소라는 밖에서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1층에서 비명이 들렸다.
노인 한 분이 창구 앞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손에 쥔 접수표를 접어 가슴에 대고 있었다. 입술은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직원이 다가가자 접수표에서 흰 실 같은 것이 길게 늘어났다.
[위기 지원 신청]
[상담 결과: 보호 완료]
[대상자: 존재하지 않음]
“분명히 여기 계신데 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죠?” 우빈이 외쳤다.
소라가 그를 막았다. “우빈 씨, 먼저 몸 상태부터 확인해요.”
임하영이 응급 대응 교육을 받은 직원들을 불렀다. 노인은 호흡이 안정적이었지만 크게 놀라 있었다. 잠시 뒤 이름이 오경옥이며 지난주 이사를 해 새 주소를 등록하러 왔다고 말했다. 건강 상태를 확인한 직원은 적절한 상담을 연결했다. 소라는 노인의 개인정보를 묻지 않았다.
“저분의 신청과 동서 물류 서류가 같은 규칙으로 움직인다면, 주소를 확인하는 데도 남의 이름을 요구할 수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접수표에서 자라난 흰 실은 상담 창구 뒤편으로 기어갔다. 직원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우빈과 서강재만이 보았다. 실 끝에 달린 작은 영수증은 중앙기록관리원에서 본 것과 닮았다.
[보호 완료 확인 / 신청인의 주소를 담보로 제출]
“주소가 담보?” 우빈이 중얼거렸다.
그때 아래층에서 임하영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려 애썼지만 숨이 빨랐다.
“문서실에서 옛 보관함을 찾았어요. 겉에는 '백재헌'이라고 써 있는데, 안이 비어 있어요. 그리고 여기 문이 안 열립니다.”
“비상 계단은요?” 소라가 물었다.
“열려 있어요. 직원들이 거기로 나가고 있습니다. 저도 곧 나갈게요.”
지하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빈은 반사적으로 망치를 들었지만 다시 내려놓았다. 사람들은 비상계단으로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괴물이 다른 문을 만들었다면 그 문을 쫓아갈 필요는 없었다.
임하영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런데 상자 안에 종이 한 장만 남아 있어요. 문구가 좀 이상합니다.”
“무슨 문구예요?”
“‘보호받은 사람의 주소가 없으면, 보호한 사람의 집을 옮길 것.’ 이라고요.”
우빈은 오경옥이 앉아 있던 의자를 돌아봤다. 노인은 직원의 부축을 받아 상담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복도 벽의 안내 지도에서 구륜시민지원센터 이름이 잠깐 흐려졌다.
그리고 우빈의 휴대전화에 새로운 지도 좌표가 찍혔다.
[06 / 해온 주택보증 심사실]
[정산 개시 조건: 주소 없는 사람 1명]
[대상 후보: 오경옥]
그는 직원들이 안전하게 나오는 것을 확인한 뒤 소라에게 말했다.
“이번엔 돈도 시간도 아니고 집이군요.”
소라는 노인이 떠난 자리를 오래 바라봤다.
“집을 빼앗는 건 계약서 한 장보다 오래 남아요. 그러니 더 정확하게 확인해야 해요.”
제5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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