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의 문이 열리는 소리는 모두 달랐다.
멀리서 철문을 끄는 듯한 소리가 하나, 유리문 위의 종이 울리는 소리가 둘. 바퀴가 미끄러지는 마찰음과 복사기 급지 소리, 낡은 방문의 삐걱거림. 마지막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누가 작은 상자 속에서 못 하나를 굴리는 것 같았다.
정우빈은 발밑을 살폈다. 본원금고 심사실의 타일은 멀쩡했다. 벽에 실제로 문이 여섯 개 생긴 것도 아니었다. 대신 오래된 장부가 탁자 위에서 스스로 펼쳐지며 장소와 상태를 한 줄씩 띄웠다.
[외부 원본군 상태 조회]
[02 / 구륜 생활보호 기록소 / 응답]
[03 / 동서 물류 공동정산실 / 응답]
[04 / 늘봄 의료 연계실 / 응답]
[05 / 시민지원 상담연동실 / 응답]
[06 / 해온 주택보증 심사실 / 응답]
[07 / 장소 확인 불가 / 응답]
“응답한다는 건 가동 중이라는 뜻인가?” 우빈이 물었다.
미결은 잠시 종이를 뒤적이는 소리를 냈다.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다는 뜻입니다. 실제 서류가 발행됐는지, 해당 장소에 장치가 있는지까지 보장하지 않습니다.”
우빈은 여섯 번째 줄을 두 번 읽었다. 장소 확인 불가. 그러나 분명 응답했다. 없는 곳에서 대답이 왔다면 누군가 대신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럼 어느 곳부터 가야 하는지 아는 건 아니겠군요.” 소라가 말했다.
“맞습니다. 다만 현재 발생한 새 요청의 로그는 구분할 수 있습니다.”
미결의 장부에서 얇은 종이 두 장이 밀려 나왔다. 하나는 물류 공동정산실, 하나는 주택보증 심사실이었다. 물류 쪽에는 같은 문장이 서른일곱 번 반복되어 있었다.
[인계 완료 / 수취인 부재]
[미배송 손실: 근무자에게 임시 귀속]
“물건을 받는 사람이 없으면 왜 노동자가 책임져?” 우빈이 목소리를 높였다.
“배송 기록이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결이 대답했다. “비어 있는 칸을 채우라는 규칙이 적용됐습니다.”
“그래서 우리하고 똑같군요.” 서강재가 말했다. “문서의 공백을 사람으로 메우는 방식.”
소라는 출력물의 발행 시각을 확인했다. 새벽 세 시 십칠 분. 1998년 사고 기록에서 반복되던 시간과 같았다. 그러나 그 한 가지가 같은 사건이라는 증거는 아니었다. 소라는 종이 위에 시간을 표시하고 두 번째 장과 비교했다. 주택보증 쪽 출력물에도 정확히 같은 시각이 찍혀 있었다.
“한 군데에서 문제가 생긴 다음 다른 곳이 이를 따라 한 건지, 처음부터 동시에 명령을 받은 건지 모르겠어요. 이건 복제 흔적이에요. 사건 자체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때 우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정우빈 씨죠? 박선희 씨한테 연락처 받았어요.” 여자가 빠르게 말했다. “저는 한연주예요. 동서 물류에서 지게차도 몰고 야간 분류도 하는데요. 조금 전에 제가 받지도 않은 물건을 보관 중이라고 뜨더니, 제 근무시간에서 네 시간이 사라졌어요.”
“임금이 빠졌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임금도 문제인데, 출퇴근 기록 자체에서요. 어제 제가 일을 안 한 사람처럼 됐어요. 그런데 제가 그날 작업한 시간에 사고가 났거든요. 사고 기록까지 제 잘못으로 바뀌었대요.”
그녀는 숨을 고르려다 실패했다. 바퀴가 끌리는 소리와 누군가 비상통로를 비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기록을 믿고 회사에서 사람을 내보내려 해요. 제가 작업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다친 책임을 전부 제게 넘기려고요. 그런데 가장 무서운 건 그게 아니에요.”
“어떤 거죠?”
“사고 난 사람 이름이 자꾸 바뀌어요. 병원으로 옮겼던 조성필 씨 이름이 지워졌다가, 제 이름으로 돌아와요. 그 사람이 다친 일까지 제 것으로 만들려고 하나 봐요.”
우빈은 소라와 눈을 마주쳤다. 그들이 구륜에서 막아 낸 것이 단 하나의 형태였음을 다시 깨달았다. 돈을 청구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상처를 남의 장부에 적을 수 있었다.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기록을 지우지 말고, 위험하면 먼저 현장에서 나오세요.”
“나올 수 있으면 나왔죠.”
전화 너머에서 기계가 멈췄다. 이어 여러 사람이 동시에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뭐가 보이나요?” 소라가 물었다.
한연주가 거의 속삭였다.
“사람이요. 작업복을 입었는데 얼굴이 택배 송장으로 붙어 있어요. 손마다 배송 스티커를 쥐고 있고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게 지금 제 이름을 붙이러 와요.”
통화가 끊겼다.
우빈은 본원금고의 문을 향해 걸었다. 소라가 따라오면서 뒤를 돌아봤다. 장부 위에서 미결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당신도 오나요?”
“외부 원본군에는 직접 개입할 권한이 없습니다. 다만 확인된 사실이 들어오면 그 사실을 다른 기록과 대조할 수 있습니다.”
“권한이 없는 게 편하겠네.” 우빈이 쏘아붙였다.
“전에는 그 말이 변명이었습니다.” 미결이 대답했다. “지금은 제한을 기록하겠습니다.”
심사실 밖에서는 성인 나래가 어린 나래의 손을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빈은 아이에게 위험한 현장으로 따라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곧장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우빈의 손에 작은 종이를 쥐여 줬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사람이 안 보이면, 그 사람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에요’라고 적혀 있었다.
우빈은 그 종이를 접지 않았다. 지갑의 투명한 칸에 넣어 글씨가 보이도록 했다.
밖은 평범한 아침이었다. 버스는 정류장에 섰고 사람들은 커피를 들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서는 네 시간의 근무가 지워졌고, 한 사람의 부상이 다른 사람의 빚으로 바뀌고 있었다.
동서 물류 공동정산실에서 새 알림이 도착했다.
[기록 정정 요청]
[정정 대상: 한연주]
[필요 서류: 사고 당시 근무 사실을 증명하는 수취인 1명]
[수취인 미제출 시 가족에게 근무 손실 이전]
우빈은 화면을 껐다.
“이번엔 수취인을 대신 찾아 주는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그날 누가 거기에 있었는지부터 찾자.”
제5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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