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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45화
PAYLUA ORIGINAL · 제45화

45화. 빚의 괴물이 향한 곳

빚을 먹는 금고 · 3,033자

오프라인 책장
병원 응급실 앞에는 오후 세 시부터 비가 쏟아졌다. 장혜숙과 통화를 마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박선희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그녀의 아들이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의무기록 화면에 이상한 글씨가 나타났다고 했다. ‘선생님, 아이 이름 옆에 돈이 아니라 사람이 떠요. 보호자 한 명을 제출하라고요. 아버지 이름도 아니고 제 이름도 아니래요.’ 소라는 우빈과 서강재에게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검은 종이 괴물이 아니었다. 응급실 밖에서 아들의 손을 잡고 서 있는 박선희였다. 아이는 자신의 이름 때문에 누군가 다칠까 봐 병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네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야.” 우빈이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모르는 어른을 경계하며 한 발 물러섰다. 소라가 우빈의 팔을 살짝 잡았다. 설명보다 먼저 허락을 받아야 했다. “제가 선희 씨와 잠깐 이야기해도 될까요? 아이 진료에 필요한 연락은 먼저 하세요.” 선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급실 접수 직원은 전산 오류로 추정되는 항목이 있지만 진료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담당 의사가 확인을 시작했고,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우빈의 눈에 바닥을 기어가는 검은 줄이 보였다. 처음 집에 들어왔던 괴물은 사람 크기였지만 여기의 괴물은 종이 여러 장이 물에 젖어 뭉친 형상이었다. 대기표 발행기 아래에서 조금씩 자라더니 누군가의 휴대전화 화면을 향해 움직였다. [연대 보호자 미확정] [보호자 대행 접수 시 청구 취소] “병원 전산에 무언가 침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반 의료기록하고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서강재가 말했다. “괴물이 화면에 나타나는 경로가 진짜 병원 시스템인지, 금고가 화면 위에 글씨를 겹쳐 보여 주는 것인지 모르니까요.” 소라는 병원 직원에게 설명할 때 ‘초자연적 채무 괴물’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대신 출처가 불분명한 청구 표시가 생겼고 피해자가 진료를 포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직원은 화면 사진과 오류 시간을 받았다. 우빈은 대기표 발행기 옆으로 갔다. 종이 괴물이 손을 뻗자 형상 안쪽에서 이름들이 떠올랐다. 박선희의 아들, 배달 기사, 새벽 보호소 출신 두 사람.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공통된 잘못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뿐이었다. “네가 먹는 게 돈이 아니구나.” 우빈이 속삭였다. 괴물이 종이 팔을 들어 올렸다. 얇은 장마다 문장이 적혀 있었다. ‘치료받음.’ ‘구조받음.’ ‘도움받음.’ ‘아직 감사 인사를 하지 않음.’ 그 단어들이 서서히 ‘미상환’으로 바뀌었다. “사람의 고마움까지 빚으로 만드는 거야.” 우빈은 망치를 잡았다가 손을 풀었다. 종이 괴물을 찢으면 사람들의 기록까지 함께 찢길 수 있었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한 장의 글씨를 읽었다. [박선희 자녀 / 구조 당시 도움받음 / 대행 보호자 필요] “그 아이는 병원에 가야 해. 네가 정할 수 있는 건 없어.” 괴물이 우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료실 문밖으로 나온 간호사가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종이 괴물의 형상은 보이지 않는 듯했다. 다만 대기표 발행기가 계속 종이를 내뱉는 바람에 전원을 점검하러 왔다. “여기서 이상한 인쇄가 계속돼요. 사용을 멈추겠습니다.” 직원은 장치 옆에 ‘점검 중’ 안내를 붙였다. 그때 괴물의 팔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일상적인 고장 대응이 초자연적인 현상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우빈은 놀랐다. 기계의 힘은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통로와 맞닿아 있었다. 서강재가 별관의 보류 확인서 사본을 가져와 괴물 앞에 놓았다. “이 문서에 채무가 없다는 확정 판결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동 청구 집행은 보류됐습니다. 이 사람들의 이름을 새로 넣을 권한도 확인되지 않았고요.” 괴물 몸속의 글씨가 잠깐 흐려졌다. 빈자리를 찾아 손을 뻗던 그림자가 소라에게 방향을 틀었다. [새 보호자 후보: 김소라] 소라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머니를 찾으려는 마음을 이용하는 것임을 곧바로 알아챘다. “저는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겠다고 동의하지 않았어요.” [모친의 미이행 보호 약속 상속 가능] “사람의 보호 약속을 자식에게 상속시키지 마세요.” 소라가 차분하게 말했다. “엄마가 구조에 나섰다는 사실은 내가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 행동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의 채무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종이 괴물이 갈라졌다. 안에서 얇은 흰 종이 여러 장이 쏟아졌다. 글씨는 모두 같았다. [원본 보호 확인의 일부] [채무로의 변환 근거 미발견] 우빈은 흰 종이를 주웠다. 손끝에 온기가 있었다. 종이 한 장에는 박선희 아들의 이름 대신 병원 진료실 번호와 ‘진료 완료’라는 말이 떠올랐다. 다른 한 장에는 배달 기사의 근무 기록 확인이 적혔다. 채무를 대신 갚지 않고, 사실을 확인했더니 문장이 바뀌었다. 응급실 문이 열렸다. 박선희가 아이와 함께 나왔다. 아이는 아직 피곤해 보였지만 검사와 처치를 받았고 의료진에게 경과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저 때문에 누가 대신 갚아야 해요?”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선희가 아들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네가 치료받은 건 잘한 일이야. 돈 문제는 어른들이 따로 해결해야 하고, 이상한 청구는 바로잡을 거야.” 우빈은 그 대답을 들으며 처음 금고를 사용하던 날을 떠올렸다. 자신의 가족만 무사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날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이름이 흔들렸는가. 병원 로비를 나서는 순간 미결에게서 통지가 왔다. [부당 전환 의심 14,200건] [현장 확인으로 전환 해제된 파생 청구: 4건] [남은 파생 청구: 14,196건 / 집행 보류] 소라가 숫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네 명을 확인했다고 나머지가 저절로 해결되는 건 아니네요.” “그렇죠.” 우빈이 답했다. “그래도 한 사람을 대신 잡아가지 않고 네 사람의 기록이 돌아왔어요.” 그때 서강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부 직원 계정에서 온 메시지였다. ‘2002년 보관층 출입 명부 복제본 유통 확인. 거래 장소: 구륜역 폐화물시장. 구매자 코드 B.J.H.’ 누군가 이정민이 들어간 방의 출입 기록을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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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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