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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42화
PAYLUA ORIGINAL · 제42화

42화. 사라진 네 해

빚을 먹는 금고 · 2,738자

오프라인 책장
1998년에서 2002년 사이에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무수했다. 졸업하고, 이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한때 중요했던 일은 일상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김소라의 집에서는 그 네 해 동안 바뀌지 않은 것이 있었다. 식탁의 빈 의자였다. “그때부터 연락이 끊겼던 것 같습니다.” 소라가 말했다. “제가 어렸으니까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해요. 그런데 2002년에 어머니가 남긴 편지가 있다면, 왜 집에는 돌아오지 못했을까요?” 박현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을 회피해서가 아니라, 자료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행은 구륜동 옛 보호시설을 찾았다. 낡은 간판을 떼어 낸 자리에 페인트 색이 다른 직사각형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작은 지역복지센터로 운영되는 건물이었다. 현관의 자동문은 반쯤 열렸다가 요란하게 멈췄고, 직원이 손으로 밀어 열어 주었다. 장혜숙은 먼저 와 있었다. 그녀는 낡은 종이 상자를 테이블에 놓았다. 상자 겉면에는 ‘임시보호소 부록’이라고 쓰여 있었다. 보관 번호와 반출 기록을 확인한 뒤 박현정이 동행한 상태에서 자료를 열었다. “이정민 씨는 사고 다음 날에도 살아 있었어요.” 장혜숙이 말했다. “다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기록을 누가 보고 있는지 겁내셨거든요.” “저희 어머니가 보호소에 왔다고요?” 소라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네. 파란 우비를 입고 왔어요. 손목에 화상 자국이 있었고, 비에 젖은 서류를 한 아름 들고 있었죠. 아이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어요. 민호를 보호소에 인계한 뒤 다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럼 1998년 출입 기록의 퇴실은 왜 없습니까?” 서강재가 물었다. “금고가 아니라 배수실 쪽으로 나왔다고 했어요. 배수 펌프를 작동시키는 작은 계단이 있었답니다.” 우빈은 도면의 세 번째 화살표를 떠올렸다. 공식 통로 밖으로 이어지던 좁은 회랑. 문을 통과하지 못하자 사람이 통로를 찾아냈던 것이다. 장혜숙은 종이 상자의 바닥에서 작은 회색 수첩을 꺼냈다. 수첩을 펼치면 일정 간격으로 번호가 적혀 있었다. D-01, D-02, D-03. 몇몇 번호 옆에는 ‘인계 확인’이, 다른 번호 옆에는 ‘보호자 미상’이 쓰여 있었다. “이정민 씨가 저와 함께 남긴 거예요. 이름을 지우면 다른 아이를 같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없어지는 아이들의 얼굴, 기침 소리, 좋아하는 반찬, 손등의 상처까지 적었어요.” 나래가 페이지를 내려다보았다. D-07 옆에는 ‘오른손 없음, 누나와 함께 있었음, 귤을 먹지 못함’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민호는 귤을 좋아하는데요.” “먹지 못했다는 건 그날의 상태였을지도 몰라.” 성인 나래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어린 나래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은 아직 서로를 하나로 만들지 않았다. 수첩 마지막에는 2002년 6월 12일 날짜가 있었다. ‘원본 보호 약속의 남은 부분 회수 예정. 아이들의 수기 기록 원본은 이곳에 보관. 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소라에게 전달.’ 소라가 수첩을 덮으려 하자 안쪽에서 얇은 사진 한 장이 떨어졌다. 건물 계단 앞에 선 여자와 장혜숙이 찍힌 사진이었다. 여자는 삼십 대 후반의 얼굴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소라는 그 얼굴을 알아봤다. “엄마.” 어릴 적 기억 속 어머니는 언제나 뒷모습이었다. 현관문을 닫는 모습, 버스에 오르는 모습, 전화를 받으러 방에서 나가는 모습. 그런데 사진 속 어머니는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라는 손가락을 사진 위에 대지 않고 아주 오래 들여다보았다. “이 사진, 사본을 받을 수 있을까요?” “원본과 촬영 경위를 기록한 뒤에요.” 박현정이 말했다. 장혜숙은 사진의 날짜가 2002년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정민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분은 누군가의 빚이 되지 않게 하겠다고 했어요. 금고가 보호 약속을 채무로 바꾸기 전의 장부가 남아 있는데, 그걸 회수하겠다고요. 떠나기 전에는 아이들이 자라면 절대 자기에게 은혜를 갚으라고 하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소라는 웃지 못했다. 그 말투가 너무나 어머니 같았다. 우빈이 물었다. “그 원본 장부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날 가져간 적갈색 철제 상자에 있었어요. 상자에는 자물쇠가 세 개 달려 있었죠. 그중 하나는 종이 열쇠를 넣어야 열리는 장치였어요.” 서강재의 얼굴이 굳었다. “종이 열쇠라면 미상채권관리의 보관층 출입 절차와 비슷합니다. 다만 상자 자체는 회사 목록에 없습니다.” 장혜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회사가 찾으려던 게 바로 그 상자일 겁니다.” 복지센터 입구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누군가 복사기를 켰나 했지만 직원은 전원을 뽑아 놓았다고 했다. 낡은 안내판 아래에서 작은 종이가 끼익 소리를 내며 밀려 나왔다. [보호 미완료 사건 / 확인 요청] [신청인: 김소라] [과거 신청을 현재로 이관할까요?] ‘확인’ 버튼 모양의 검은 네모가 나타났다. 소라는 그것을 그대로 촬영했다. 화면을 터치하지 않은 채 말했다. “엄마가 네 해 동안 한 일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겠어요. 어머니는 아이들을 되찾으려던 게 아니라, 아이들이 빚이 되지 않게 하려던 거예요.” 그때 수첩의 2002년 페이지가 스스로 뒤집혔다. 흰 여백에 눌려 있던 잉크가 검게 떠올랐다. ‘2002년 6월 12일, 정민 동행자 1인.’ 아래에는 짧은 서명이 있었다. ‘백재헌.’ 소라는 사진과 수첩을 번갈아 보았다. 어머니가 사라진 날, 최초의 잠금 승인자가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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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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