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라는 어머니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도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 성인이 된 뒤 배운 가장 어려운 인내였다. 어린 시절에는 문이 열리는 소리만 나도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어머니가 늦게 돌아오던 날에는 복도 전등을 켜 놓고 잠들었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사실과 돌아왔다는 사실은 다르다.
“민호 씨가 직접 본 거라고 했어요.” 우빈이 말했다. “1998년 새벽 세 시 십칠 분. 이정민 씨가 문을 열어 주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고요.”
“그다음에 무사히 나왔는지는 모르는 거군요.”
“네. 하지만 마지막 출입 기록을 볼 수 있어요.”
두 사람은 중앙기록관리원 별관의 야간 자료 열람실로 갔다. 창밖에는 비가 그쳤는데 건물 유리에는 아직 빗방울이 달라붙어 있었다. 박현정은 미리 연락을 받고 열람 신청서와 보존 장부를 준비해 두었다. 소라에게는 자기 어머니의 기록을 볼 자격이 있었지만, 그 기록과 얽힌 다른 사람의 신상은 가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부터는 소라 씨가 선택하셔야 합니다.” 박현정이 말했다. “공개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열람인지, 가족을 찾기 위한 열람인지요. 두 목적이 겹치지만 언제나 같지는 않아요.”
소라는 신청서의 목적란에 둘 다 적었다. 그리고 뒤에 한 줄을 더 붙였다.
‘확인되지 않은 생존 사실의 대외 공개는 보류.’
그 문장은 어머니가 죽었다는 선언도, 살아 있다는 선언도 아니었다.
열람실 벽에 붙은 오래된 평면도에는 삼목 철공소의 지하 통로가 표시돼 있었다. 통로 끝은 수리 공방과 배수실 사이에 막다른 방으로 이어졌다. 도면의 가장자리에 누군가 빨간 연필로 화살표를 세 개 그려 놓았다. 첫째는 정태수가 건 수동 빗장, 둘째는 D-2 원격 잠금, 셋째는 도면에 없는 좁은 우회로였다.
“세 번째 통로가 있었다고요?” 우빈이 물었다.
“공식 시설 도면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고 수습 당시의 출입 장부에는 ‘문 안쪽 회랑’이라고 적혀 있어요.”
박현정이 원본 장부를 펼쳤다.
[03:13 / D-2 원격 잠금 작동]
[03:14 / 보호 지시 원문 비가시화]
[03:15 / 목격 기록 분리 보존]
[03:17 / 비상 출구 수동 개방]
[03:18 / 아동 D-07 외부 인계]
[03:22 / 이정민 재진입]
소라는 마지막 줄에 손가락을 뻗었다가 멈췄다. 어머니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선명했고, 그 뒤에는 ‘퇴실’이라는 두 글자가 없었다.
“이 기록만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박현정이 먼저 말했다. “이 장부는 비상 출구 기록이에요. 다른 출구가 있다면 여기에는 남지 않았을 겁니다.”
“다른 출구가 있었을까요?”
“그걸 찾아야죠.”
소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우빈은 말을 고르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강재가 열람실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조용히 들어왔다.
“강민호 씨와 통화했습니다. 직접 만나는 건 아직 꺼리지만, 사고 당시를 녹음으로 증언하는 데에는 동의했어요. 자기 생활 이름은 남기지 않는 조건입니다.”
그들은 스피커폰을 켜지 않았다. 본인이 허락한 범위의 녹음 파일만 재생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손을 잡고 나왔어요. 그분 손은 차가웠지만 아주 세게 쥐고 있었어요. 바닥에 물이 흘렀고, 뒤에 누가 있느냐고 자꾸 물으셨어요. 저는 누나가 있다고 했어요. 그러자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건 그분의 파란 소매였어요.’
목소리가 잠깐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어요. 세 번, 쉬고 두 번. 제가 누나한테 하던 것처럼. 그런데 이번에는 안에서 세 번, 쉬고 두 번, 한 번을 더 두드렸어요. 그건 우리끼리 정한 신호가 아니었어요.’
나래가 조금 전 보내온 영상에도 마지막 한 번의 두드림이 있었다. 우빈은 휴대전화에서 두 소리를 나란히 재생했다. 손바닥이 마른 철판을 치는 짧은 울림. 세 번, 쉬고 두 번, 그리고 한 번.
“마지막 한 번은 다른 사람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우빈이 말했다.
“또는 다시 들어갔다는 표시일 수도 있죠.” 소라가 답했다. “우리가 멋대로 뜻을 정하면 안 돼요.”
그 순간 별관 단말기에서 작은 인쇄음이 났다. 누가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감열지 한 장이 밀려 나왔다. 박현정은 곧바로 뽑지 않았다. 종이가 완전히 나온 뒤 사진을 찍고 출력 경로를 확인했다.
[마지막 출입기록 열람 감지]
[미귀환 구조자 1명]
[상태: 인계 미완료]
[수취인 지정 시 생존 확인 가능]
아래에는 작은 네모 칸이 있었다.
[수취인 성명: ______]
우빈은 반사적으로 펜을 들었다가 손을 멈췄다. 이름만 쓰면 어머니를 확인할 수 있다는 유혹은 기이할 만큼 단순했다.
“쓰지 마세요.” 소라가 말했다.
“알아요. 저 종이가 누구 이름을 받아 가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출력물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가슴 전체를 밀어 올렸다. 하지만 누군가를 찾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내어 놓는 방식을 어머니가 바랐을 리 없었다.
“우리 엄마가 다시 들어간 이유는 누군가를 구하러 가기 위해서였어요.” 소라가 천천히 말했다. “그 사람이 돌아올 권리를 빼앗지 말아 주세요.”
박현정은 수기 장부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비어 있는 줄 한 칸에 오래된 펜촉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눈을 가까이 대자 누군가 종이를 뜯어 가기 전에 눌러 쓴 흔적이 보였다.
‘퇴실 기록은 다른 장부에 남김. 2002년 6월 12일.’
1998년의 실종이 끝이 아니었다.
소라가 숨을 들이마셨다.
“엄마는 적어도 그날 이후에 살아 있었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네 해 뒤의 기록을 따로 떼어 가고 있었다.
제4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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