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재는 사원증을 반으로 접지 않았다.
"이걸 부수면 제가 회사를 나간 것으로 처리될까요?" 그가 물었다.
"아닐 겁니다." 소라가 말했다. "사원증이 아니라 계약에 이름이 남아 있으니까요. 먼저 어떤 위험이 실제로 생기는지 확인해야 해요."
그들은 다시 중앙기록관리원 별관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기록보존사 박현정에게 먼저 연락했다. 박현정은 새 공문이 내려왔지만 구술기록실의 열람 업무 자체는 중단되지 않았다고 했다. 서강재가 내부 직원으로 접속하는 대신 소라가 자료 소장 여부를 확인하고, 박현정이 공개 가능한 부분만 검토했다.
구술기록실 4번 서랍에는 얇은 장부가 있었다. 종이는 다른 서류보다 작았고 줄 간격이 일정했다. 1998년 출입 권한표 발급대장이었다.
[03:09 / 접근표 발급 요청: 민간위탁 조정실]
[03:10 / 임시 접근표 발급: 관리자 대리]
[03:13 / 원격 잠금부품 D-2 가동]
[03:14 / 채권자 공란 삭제: 이정민 계정]
[03:15 / 목격 기록 별도 보존: 이정민]
"세 시 십사 분 전에 이미 다른 관리자가 접근표를 받았어요." 소라가 말했다. "엄마가 그때 단말기를 만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엄마 이름으로 누군가 접속했다는 기록이네요."
장부의 뒷장에는 당시 교대 담당자가 휘갈겨 쓴 비고가 있었다. '접근표 발급자는 서명을 거절함. 위임 승인자 B.J.H.'
"이렇게까지 적었는데 왜 아무도 조사하지 않았을까요?" 우빈이 중얼거렸다.
박현정이 답했다. "조사가 없었던 것인지, 조사 기록이 여기 없는 것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그 뒤에도 수사와 민원은 있었어요. 다만 일부 문서가 서로 다른 기관으로 옮겨졌고, 보존 기간이 다르게 지정됐어요. 누군가 뒤섞어 놓았다고 의심할 이유는 있습니다."
우빈은 아버지가 갇힌 유리벽을 떠올렸다. 그 문을 잠근 죄 하나만 보여 주면 나머지 기록은 보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심사 장치. 인간이 만든 조사 체계마저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었다.
그때 박현정이 낡은 철제 상자 하나를 꺼냈다. 별관에 보관된 시설 증거 D-2의 분리 부품이었다. 짧은 쇠사슬과 비상 해제용 손잡이가 들어 있었다. 손잡이에는 붉은 페인트가 조금 남아 있었다.
"정태수 씨가 만든 문에도 안에서 열 수 있는 비상구가 있었어요." 박현정이 도면을 펼쳤다. "추가 장치가 그 비상 해제선을 가로막았습니다. 누군가 원격 잠금을 걸면 안쪽 손잡이를 잡아당겨도 문이 열리지 않게 되죠."
서강재는 장치를 직접 작동하지 않았다. 전문가 검토 없이 오래된 부품을 시험하다 망가뜨릴 수 있었다. 대신 도면과 실물을 나란히 놓아 위치와 규격을 비교했다.
"정태수 씨가 처음 빗장을 잠근 건 맞아요. 하지만 안쪽에서 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둔 것도 맞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다음 누가 추가 장치로 길을 막았는지를 따져야겠죠."
"아버지가 잘못한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우빈이 조용히 덧붙였다.
"네. 남이 더 큰 잘못을 했다고 처음 잘못이 지워지지는 않아요."
박현정은 실물 감정에 필요한 추가 절차를 설명하고 문서 사본의 인계 목록을 만들어 주었다. 소라는 그 목록 끝에 '실제 사건 원본 여부는 후속 검증 필요'라는 문구를 직접 적어 넣었다. 섣부른 확신이 내일 누군가를 또 해칠 수 있었다.
그들은 별관 회의실에서 짧은 영상 통화를 연결했다. 화면에는 본원금고 유리벽 안의 정태수가 나타났다. 소라가 먼저 설명했다.
"이 화면은 시스템이 연결해 준 영상입니다. 누가 어떻게 보존하는지는 확인이 안 돼요. 그래서 질문과 답을 별도로 녹음하겠습니다."
정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빈은 쇠사슬 도면을 들었다.
"아버지, 이 장치 본 적 있어요?"
정태수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문 위쪽에서 달그락거리던 것 같구나. 내가 문을 다시 열려고 했을 때 빗장은 움직였어. 그런데 문짝은 열리지 않았어. 밖에서 누가 손잡이를 막고 있다고 생각했지. 그때 기계를 보러 갔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비상 해제선을 만들었습니까?"
"내가 만들었어. 어린애가 안쪽에 갇히면 손이 닿을 수 있도록 낮게 달았지."
"그런데 왜 민호는 못 열었죠?"
아버지는 오래 침묵했다.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당시에는 비상 장치가 고장 난 줄 알았어. 그렇게 생각하면 내 잘못이 조금 줄어들 것 같아서 확인하는 일을 미뤘지. 그게 내 두 번째 잘못이야."
우빈은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에게 무죄라고 말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차라리 아버지가 변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화를 내기가 쉬웠을 것이다.
회의실 밖에서 전화가 울렸다. 박현정의 동료가 들어와 새벽 임시보호소 자료가 폐쇄 자료실에서 일부 발견됐다고 알렸다. D-07의 임시 이송 확인서였다. 종이에는 생존 확인 도장과 장혜숙의 손글씨가 나란히 있었다.
그런데 맨 아래 항목이 이상했다.
[03:17 / 구조 통로 개방]
[구조 실시자: 확인 불가]
"민호가 보관실에서 나간 뒤 보호소에 도착했다면, 그 사이 누가 문을 열었다는 뜻이겠죠?" 소라가 물었다.
정태수가 종이를 바라봤다. "세 시 십칠 분? 나는 그때 문 앞에 없었어. 이정민은 아이를 찾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누가 열었는지 모른다고 기록됐네요."
그 순간 우빈의 휴대전화에 어린 나래의 목소리가 담긴 짧은 영상이 들어왔다. 그녀는 성인 나래와 관찰창을 사이에 두고 두드리는 소리를 맞추고 있었다.
세 번, 쉬고 두 번.
그 다음, 아주 짧은 두드림 한 번.
영상의 끝에서 아이가 속삭였다.
"아저씨. 우리가 잊은 게 있어요. 민호가 문을 두드리는 건 '살려 줘'라는 뜻이 아니었어요. 누가 오는지 알려 주는 신호였어요."
우빈은 영상을 다시 봤다.
문을 잠근 사람, 더 잠근 사람, 마지막으로 열어 준 사람.
지금까지 단 한 사람의 이름으로 적혀 있던 사건에 적어도 세 사람의 선택이 남아 있었다.
제3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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