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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37화
PAYLUA ORIGINAL · 제37화

37화. 서명하지 않은 심사관

빚을 먹는 금고 · 2,921자

오프라인 책장
오미령은 도서관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장갑을 낀 여자가 굳이 나타난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길을 막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우빈의 이름이 적힌 심사 안내문이었다. [원본 이의 신청 임시 심사] [자료 제출 담당: OM-01] [권한: 증거 접수 및 기각 의견] "당신이 심사하는 겁니까?" 우빈이 물었다. "자료를 접수할 뿐입니다. 결정은 별관 심사위원회에서 하죠." "그 위원회가 독립적이라고 믿으라는 거예요? 기록을 가져가려던 사람들한테 백재헌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요." 오미령은 잠시 침묵했다. 소라가 휴대전화를 들며 말했다. "대화는 녹음하겠습니다. 동의하지 않으시면 여기서 끝내죠." "녹음하세요." 놀랍게도 여자는 바로 대답했다. 도서관 밖에는 작은 벤치가 있었다. 아이 나래는 장혜숙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물을 마셨고, 서강재는 지나가는 차량을 살폈다. 그동안 소라와 우빈은 오미령의 말을 들었다. "1998년에는 저는 회사에 없었습니다. 그때 금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기록으로만 봤어요. 2008년에 상용화 규칙을 추가한 건 제 책임입니다." "그 규칙이 사람들의 빚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어요." 소라가 말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시스템이 동의를 검증한다고 믿었죠. 지금은 그게 제가 들고 있던 가장 편리한 핑계였다는 걸 압니다." "믿었다는 말로 피해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우빈은 그녀가 갑자기 선한 사람이 되었다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죄를 숨기지 않는 말까지 거짓으로 단정하면 밝혀낼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 "왜 지금 와서 말하죠?" 오미령은 장갑 한쪽을 벗었다. 손바닥에는 손금 대신 가늘게 지워진 글자들이 있었다. [권한 승계 거부 이력: 7회] [이름 반환 요청: 처리 불가] "저도 나갈 수 없게 됐거든요. 누군가 새 관리자가 되면 제가 썼던 규칙을 전부 그 사람에게 넘길 수 있대요. 그래서 우빈 씨를 선택하라고 계속 요구받았습니다. 당신이 거절하니 심사 쪽으로 방식이 바뀐 거고요." "당신은 책임을 버리고 싶어서 우리를 돕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까지 거절할 이유는 없겠죠." 소라는 메모를 멈추지 않았다. "백재헌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사람의 마지막 실제 대면 기록은 오래됐어요. 퇴직인지 사망인지조차 회사에 남아 있지 않죠. 다만 '백재헌 권한'으로 발행되는 문서는 지금도 유효한 것처럼 처리됩니다. 권한이 사람을 떠나 살아 있는 셈이에요." 그 말은 미결과 닮았다. 사람을 확인하지 않고 이름과 권한만 살아남는 조직. 서강재는 회사에 몸만 나왔고 오미령은 이름만 남아 있었다. "그 권한을 누가 쓰는지 알 방법이 있나요?" 서강재가 물었다. 오미령이 낡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채권 계약서가 아니라 1998년 사건 조사회의 참석 확인표의 사본이었다. 맨 아래에는 작은 도장 두 개가 겹쳐 찍혀 있었다. '보호대상 상태 변경 승인'과 '대리 작성 불허.' "두 번째 도장은 이후 등록된 겁니다. 첫 번째 승인 도장만 남겨두고 두 번째를 지우면 누가 그 서류를 작성했는지 모르게 되죠. 그 조작을 수행한 게 03시 14분의 삭제입니다." 소라가 고개를 들었다. "왜 이정민 이름이 찍혔습니까?" "당시 관리자는 이정민의 계정으로 결재할 수 있는 임시 접근표를 만들어 두었어요. 발급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원래 접근표는 일회용이어야 했는데, 반납 확인란은 비어 있죠." 오미령은 자신의 말이 모두 입증됐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종이 사본의 구석에 표시된 보관 번호를 가리켰다. "원본은 별관 구술기록실 4번 서랍. 이 사본으로는 누구를 기소하거나 면책하지 못해요. 그곳에 가서 발급자를 확인하세요." 우빈이 물었다. "그걸 왜 가져오지 않았죠?" "제가 열람하면 자동으로 폐기 절차가 걸립니다. 오미령 계정은 증거를 지우는 역할로 묶여 있거든요. 당신들은 피해자 열람 권한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소라는 일어서려다 멈췄다. "한 가지 더요. 당신이 오늘 우리를 도왔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기록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까?" 오미령은 손바닥을 다시 장갑 속에 감췄다. "있습니다. 그래서 제 말을 증언으로만 남겨 주세요. 누가 대신 책임지겠다고 하지 마세요." 그날 처음으로 오미령의 말이 사람의 경고처럼 들렸다. 그들이 차로 돌아가려는 순간, 모든 휴대전화에 같은 알림이 떴다. 박선희와 제2정산소 피해자들이 보낸 연락도 한꺼번에 쏟아졌다. 멈췄던 청구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원본 재심 보충명령] [기한 내 생존 반증 자료 미제출 시 임시 집행 일부 해제] [우선 해제 대상: 보호 시설 출신 및 가족 관계 미확인자] "하필 그 사람들부터요?" 소라가 말했다. 오미령이 눈을 감았다. "증언할 가족이 적고 기록이 불완전한 사람들입니다. 원본의 모순을 입증하기 가장 어려운 이들이죠." 우빈은 도서관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나래는 장혜숙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컵을 돌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작은 손을 주먹 쥐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먼저 당하지 않게 해야 해요." 서강재가 물었다. "어떤 방법으로?" 우빈은 아버지가 증언하던 문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자신 한 사람이 모든 이름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금고는 언제나 대표 보증인을 만들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대신 갚는 게 아니라, 각자 본 걸 같이 확인하도록 해야죠. 증거가 열 군데 있으면 열 군데를 다 지울 수는 없을 테니까." 그 순간 서강재의 사원증에 남아 있던 검은 글자가 새로 번졌다. [퇴사 미승인 직원 / 내부 자료 외부 공유 시 제3자 담보 전환] [예정 대상: 서강재의 가족] 서강재는 명찰을 부러뜨리려다가 멈췄다. 자신의 자유가 또 다른 사람에게 청구되는 일을 이제는 그대로 넘기지 않겠다고 결심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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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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