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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36화
PAYLUA ORIGINAL · 제36화

36화. 살아남은 아이의 두 이름

빚을 먹는 금고 · 3,051자

오프라인 책장
장혜숙은 약속 장소를 먼저 정했다. 별관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작은 도서관이었다. 오래전에 맡았던 아이의 이야기를 전화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김소라는 만나는 목적과 참여 인원을 분명히 알렸고, 장혜숙은 공개된 장소라면 괜찮다고 답했다. "당신들 때문에 아이가 다시 위험해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 말이 소라에게는 가장 믿을 만한 시작처럼 들렸다. 누구도 거래를 제안하지 않았고, 새 서류에 서명하라고 하지 않았다. 상대는 그저 한 사람의 안전을 먼저 걱정했다. 도서관 2층 창가에는 머리가 희끗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낡은 보온병과 작은 수첩을 옆에 놓고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나래를 보자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세상에." 장혜숙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했다. 눈앞의 아이가 1998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래는 낯선 어른을 바라보다가 수첩에 그려진 작은 해바라기 그림을 발견했다. "장 선생님은 아이들 숙제 끝내면 저 그림 도장 찍어 줬어요." 여자가 눈을 감았다. "나래야. 넌 왜 아직도 그 나이니?" "아직 저도 잘 몰라요." 소라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선생님, 지금 보시는 아이가 당시의 나래와 같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시절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1998년 사고 뒤 이송 기록을 찾고 있어요." 장혜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눈으로 본 것만 말씀드릴게요." 그녀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새로 적은 메모와 오래된 명찰 한 장이었다. '구륜구 새벽 임시보호소 / 장혜숙.' 명찰 모서리에 작은 흠집이 있었다. 가슴에 달던 핀을 여러 번 갈아 끼운 흔적이었다. "그날 새벽 네 시쯤 보호소에 아이 하나가 왔어요. 오른손이 없었고, 왼손으로 종이컵을 꽉 쥐고 있었죠. 자기 이름을 묻자 '민호'라고 했습니다. 성은 말하지 않았어요." 나래의 작은 손이 테이블 아래서 주먹을 쥐었다. "그다음은요?" "아이는 자꾸 누나가 창고 안에 남아 있다고 했어요. 누나를 데려오라고 했죠. 그런데 인계서에는 가족이 없는 아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내가 이상해서 다시 물었더니, 같은 사람이 낸 두 번째 서류에는 '강민호'라는 이름 자체가 사라져 있더군요." "누가 데려왔습니까?" 우빈이 물었다. "여자였어요. 비옷을 입었고, 소매에 먹물이 묻어 있었죠. 얼굴은 잘 못 봤지만 목소리는 기억해요. 아이가 안전해지면 보호 기록을 밖에 남겨 달라고 했어요." 소라가 어머니의 예전 녹음 일부를 들려주려다 멈췄다. 상대를 유도할 수 있었다. 먼저 장혜숙에게 기억나는 말을 적게 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지우지 말아 주세요.' 소라의 손가락이 떨렸다. 그 말은 어머니가 편지에 썼던 문장과 닮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같은 사람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장혜숙도 스스로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됐나요?" "처음엔 D-07이라고 불렀어요. 전산에 이름을 넣을 때마다 빈칸으로 바뀌었거든요. 그래서 종이 수첩에는 '민호'라고 써 두었죠. 보호시설이 바뀔 때 아이에게 새 이름이 필요하다고 해서 별도의 생활 이름을 썼어요. 그 이름은 제가 여기서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현재 삶이 있으니까요." 나래는 고개를 떨궜다. 동생이 살아남았다면 당장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뒤 다른 이름으로 살아왔다는 말은, 그동안 자신 없이 보낸 시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잘 자랐나요?" 아이가 물었다. 장혜숙의 얼굴에 슬픈 미소가 떠올랐다. "쉬운 삶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왼손으로 글씨도 쓰고, 자전거도 배웠어요. 처음 직업을 얻었을 때 제게 편지를 보내 줬죠. 자기는 누구의 실수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자기 인생을 살고 싶다고요." 나래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저를 기억했어요?" "기억했어요. 다만 누나를 찾으려 할 때마다 서류에 없는 사람이라는 답을 들었죠. 어느 날부터는 찾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서강재가 물었다. "생존 기록이 남아 있다면 지금 청구된 채무를 취소할 근거가 됩니다. 당시의 종이 수첩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장혜숙은 수첩을 내밀지 않았다. "확인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는 다른 아이들 기록도 많아요. 필요한 쪽만 보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현재 이름을 찾아 연락하기 전에는 먼저 의사를 물어야 해요." 소라가 바로 동의했다. "저희도 그럴 생각입니다." 장혜숙은 메모장 한 장을 찢어 'D-07'과 사진 보관 번호를 적었다. 종이 수첩의 원본이 폐쇄 자료실에 있다는 사실, 열람을 위해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도 알려 주었다. 초능력도 예언도 없었다. 그저 한 아이를 잊지 않으려고 적어 놓은 기록이었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장혜숙은 우빈의 망치를 보고 시선을 멈췄다. "저 망치, 혹시 정태수 씨 것이에요?" "아버지를 아십니까?" "사고 뒤 며칠 지나 찾아온 분이에요. 문을 잠갔다고 울더군요. 아이가 살았는지 물어서 살아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분은 안도하면서도 더 괴로워했어요. 문 안에서 구하지 못한 게 아니냐고." "그럼 아버지는 민호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 "그때는요. 그런데 한 달 뒤 다시 오셨을 때는 제 말을 기억하지 못했어요. 빈 서류를 보여 주며 아이가 없다고 하더군요." 기억이 지워진 걸까. 죄책감 때문에 외면한 걸까. 그 차이를 아직 알 수 없었다. 문밖에서 책 반납 알림이 울렸다. 장혜숙은 책을 가방에 넣다가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민호는 성인이 되고 나서 자기 수첩 첫 장에 늘 같은 말을 적었어요. '나는 갚아야 할 돈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다.' 누가 그 아이에게 그런 말을 가르쳤는지는 저도 몰라요." 나래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어릴 적 민호는 그런 문장을 알 만큼 나이가 많지 않았다. 우빈의 휴대전화에는 중앙기록관리원에서 보낸 안내가 도착해 있었다. [기존 보호 대상 D-07] [동일인 생존 확인 요청 감지] [보호 기록 이관 절차 개시] 그 아래 작은 문장이 하나 더 붙었다. [현재 생활명 조회 시, 연계 가족에게 책임 이전] 우빈은 화면을 소라에게 보여 줬다. "누군가 우리가 그 사람 이름을 찾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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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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