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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35화
PAYLUA ORIGINAL · 제35화

35화. 딸에게 남긴 빈 봉투

빚을 먹는 금고 · 2,823자

오프라인 책장
봉투는 비어 있지 않았다. 김소라는 종이를 꺼내기도 전에 그 사실을 알았다. 오래된 우편물은 내용물이 없으면 손가락 사이에서 속절없이 휘었다. 그러나 이 봉투는 한쪽 모서리가 두툼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공과금 영수증을 접어 보관하던 방식과 같았다. "열어 보실래요?" 박현정이 물었다. 소라는 곧장 손을 대지 않았다. 봉투가 보관돼 있던 위치, 겉면의 도장, 봉함선의 상태부터 사진으로 남겼다. 어머니의 마지막 기록을 발견한 순간조차 증거가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습관이 그녀를 붙들었다. "제가 열람할 수 있는 범위가 맞나요?" "보존 문서에 개인 수취인으로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다만 원본을 외부로 가져가려면 절차가 따로 필요해요. 여기서 읽고 필요한 부분은 정식으로 복사 신청하세요." 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 장갑을 낀 손이 봉투를 열었다. 누런 종이 두 장과 작은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소라야. 네가 이걸 읽을 때 몇 살일지 모르겠구나. 엄마가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 많을 거야. 집에 왜 늦게 왔는지, 왜 어느 날부터 네 이름을 부르는 편지도 쓰지 못했는지. 내가 한 일 때문에 널 기다리게 만들었다는 것만은 알고 있어.' 소라는 첫 문장에서 멈췄다. 어린 시절 집 현관 앞에 앉아 어머니가 돌아올 시간을 세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연락이 끊기기 전까지도 '곧 갈게'라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약속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 말이 마지막 가르침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우빈이 말을 걸려 하자 소라가 고개를 저었다. "계속 읽을게요. 지금 아니면 못 읽을 것 같아요." 편지에는 당시 삼목 철공소에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적혀 있었다. 이정민은 금융 계약의 기록 오류를 조사하던 담당자였고, 정태수는 실물을 제작했으며, 도기철은 기술을 외부에 팔 방법을 찾는 사람이었다. 원래 목표는 채권자가 없는 거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잘못 청구된 사람의 책임을 확인해 바로잡는 것이었다. '세 번째 실험에서 아이들이 휘말렸어. 누군가 보호 약속을 넣으라고 요구했고, 태수 씨는 그 서류가 계약이 아니라고 말했지. 그런데 담당자는 이미 승인이 끝났다고 했어. 그 담당자의 이름은 백재헌. 우리가 승인한 적 없는 문서에 우리 이름이 나란히 찍혀 있었어.' 소라는 숨을 멈췄다. 문서에 정태수와 이정민의 서명란이 공란이었던 이유였다. '새벽 세 시 십사 분, 내 계정으로 삭제가 실행됐어. 나는 그때 민호의 위치를 확인하느라 아래층에 있었어. 누군가 내 이름을 사용했지. 한 분 뒤 돌아와 보니 화면에서 최초 보호 약속이 없어져 있었고, 아이들이 채무 대상이 되어 있었어. 나래의 기억을 증거로 따로 꺼내 둔 건 내가 맞아. 그걸 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본 일을 영영 부정당했을 거야.' "엄마가 바로 이걸 설명하려고 했던 거네요." 소라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편지 뒷부분에서 기대했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누가 내 계정으로 들어왔는지 그 순간에는 보지 못했어. 백재헌이 지시한 것은 들었지만 직접 실행한 사람은 확인하지 못했어. 내가 본 것과 짐작한 것을 네가 혼동하지 않았으면 해.' 이정민은 편지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의 한계를 분명히 적었다. 소라는 그 때문에 오히려 어머니의 목소리가 더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적어 둔 편지가 아니었다. 마지막에는 이상한 문장이 있었다. '민호가 그 뒤로 무사히 자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어. 다만 원본 사고 대장의 부록에 D-07이라는 식별번호가 있었어. 그 번호는 사망 기록이 아니라 보호 대상 임시 이송 기록에 쓰는 번호야. 누군가 그 기록을 없애려 하면, 이름보다 먼저 번호를 찾아라.' 사진에는 낡은 복도와 문 앞에 앉은 아이 하나가 보였다. 아이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있었고 왼쪽 손으로 종이컵을 쥐고 있었다. 오른쪽 소매는 접혀 있었다. 나래가 숨을 삼켰다. "민호요. 저 애는 민호예요. 저 옷도 알아요. 엄마가 소매를 접어 줬어요." 사진에는 날짜가 있었다. 1998년 11월 3일, 오전 4시 06분. 문을 잠근 시각보다 거의 한 시간 뒤였다. "그럼 살아 있었네요." 우빈이 말했다. "사진을 찍은 곳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소라가 대답했다. "하지만 적어도 저 시간에 오른손이 없는 아이가 살아서 복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남았어요." 박현정이 사진 뒷면을 확대해 보여 주었다. 작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새벽 임시보호소 D-07 / 사진 제공: 장혜숙.' 성인 나래가 말했던 장 선생님. 우연이 아니었다. 서강재는 소라의 눈가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이럴 때 위로가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소라는 스스로 편지를 접었다. 눈물이 손등에 떨어졌지만 그녀는 닦지 않았다. "이건 제 어머니가 저를 위해 남긴 말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필요한 증거예요. 사본은 제가 지킬게요. 원본은 여기 남겨요." 그때 봉투 아래에 있던 작은 영수증이 미끄러져 나왔다. 물품 보관증이었다. [인수 물품: 수기 사건대장 부록 1책] [최종 보관: 구륜동 보호시설 폐쇄 자료실] [인계자: 장혜숙] 우빈은 오래된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과 같은 날이 아니라 사고가 난 뒤 넉 해가 지난 때였다. 이정민은 딸에게 편지를 남기기 위해서만 이 자료를 보관한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누군가의 생존을 추적하고 있었다. 소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알 수 없었다. 전화를 받자 여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김소라 씨 맞나요? 장혜숙입니다. 제 이름을 찾고 계시더군요." "선생님, 강민호를 아세요?" 상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이름으로요?" 그 여자가 물었다. "그 아이는 두 번째 이름으로 자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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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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