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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34화
PAYLUA ORIGINAL · 제34화

34화. 공백을 사들인 사람

빚을 먹는 금고 · 2,673자

오프라인 책장
백재헌이라는 이름이 공기 중에 떠오르자 서강재의 손끝이 굳었다. "그 이름을 압니까?" 우빈이 물었다. "이름은요. 얼굴을 본 적은 없어요. 회사의 오래된 권한표 맨 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감사실에서도 원본 보관권자는 열람 금지라고 했죠." 검은 장갑의 남자는 직원증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본인이 백재헌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의 권한으로 일한다는 표시였다. 조금 전 우빈이 왜 사진이 없는지 물었을 때 남자는 웃기만 했다. "오늘 중으로 증거를 회수하겠습니다. 감사 기록에 이미 정정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박현정이 말했다. "요청 공문은 접수했습니다. 확인할 때까지 물건은 움직이지 않아요." "담당자님께도 책임이 돌아갈 텐데요." "그 말이 협박이라는 사실은 기록해 두겠습니다." 박현정은 현관 경비를 부르고 관련 출입구의 영상을 보존하도록 요청했다. 그녀의 침착한 대응은 우빈에게 이상할 만큼 낯설었다. 이상한 힘에 맞서려면 꼭 초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때로는 사무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는 사람이 더 큰 벽이 되었다. 남자들은 보관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다만 문밖에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끝난 뒤 남자 하나가 말했다. "열람 허가는 취소됐습니다. 방문객은 나가시죠." 박현정은 그 말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리 시스템을 다시 확인했다. 방문객의 정당한 열람 범위는 그대로였다. 누군가 외부에서 보낸 가짜 알림이었을 뿐이다. "누구의 명령이든 이름을 밝히세요." 그녀가 말하자 남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소라는 우빈에게 조용히 손짓했다. 문을 옮길 수는 없지만 문에서 분리된 부품의 모양은 이미 촬영해 두었다. 무엇보다 D-2가 보관실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기록을 확보했다. 싸워서 지키는 것보다 증거를 여러 사람이 확인한 사실로 남기는 편이 안전했다. 우빈은 철문 옆에 놓인 공구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 위에는 1998년 인계표 사본이 붙어 있었다. '추가 잠금부품 D-2. 제어부: 별도 반입. 반입 승인자 B.J.H.' "백재헌이군요." 우빈이 말했다. "확정하긴 일러요." 소라가 이니셜을 확대했다. "저 이름과 같지만, 사람을 특정하려면 당시 승인장부가 필요해요." 그 말에 검은 장갑의 남자가 느리게 박수를 쳤다. "좋은 태도입니다. 그렇게 확인만 하다가 마흔여섯 시간이 지나겠군요." "그 시간을 누가 정했죠?" 우빈이 되물었다. "원본 심사위원회요." "그 위원회가 방금 자기들 이름으로 만든 가짜 공문을 검증하겠다는 겁니까?" 남자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서강재가 뒤로 물러나 건물에서 빠져나갈 길을 확인했다. 소라는 박현정에게 1998년 구륜구 긴급보호협의회 기록이 따로 있는지 물었다. 박현정은 오래된 협의회 회의록이 일부 남아 있다고 답했다. 당시 금고 시험을 허용한 회의가 있었고, 그 회의의 목적은 사고가 난 뒤 어린이 임시보호 업무를 수행할 민간 시설을 지정하는 것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 지정했다는 거예요?" 소라가 물었다. "그 날짜가 이상해서 저도 다시 보려던 참입니다." 회의록 표지에는 1998년 11월 2일이 적혀 있었다. 회의 내용은 사고 대응 절차, 보호 대상 미확인 시 임시 수용 기준, 기록 보관 의무를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쪽에 새 문장이 삽입되어 있었다. '보호 대상자의 인수인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지원 비용을 향후 수익자가 있는 채권으로 대체한다.' "이건 사람이 구조되지 않았을 때의 대비책이 아니네요." 소라가 말했다. "책임이 비어 있을 때 그 공백을 돈으로 팔 준비를 한 거예요." 우빈은 문서에 찍힌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11월 2일, 사고 전날. 그들은 사고를 예측한 것이 아니라 사고를 기회로 만들 방법부터 마련했는지도 몰랐다. 박현정이 회의록 뒷장에 붙은 참석자 명단을 펼쳤다. 처음 세 줄에는 정태수, 이정민, 도기철의 이름이 있었다. 정태수와 이정민의 서명란은 공란이었고 도기철의 이름에는 출석 확인 도장만 찍혀 있었다. 네 번째 줄에는 필기체로 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백재헌 / 민간위탁 조정 책임자.' 소라가 숨을 삼켰다. "정말 있었네요." "문제는 여기입니다." 박현정이 마지막 칸을 가리켰다. '최초 결재 권한 위임 대상: 기록 없는 장래 수익자.' 우빈이 손에 쥔 망치를 내려놓았다. "아버지가 내 이름을 넣은 게 아닐 수도 있어요. 먼저 빈 미래의 사람을 넣고, 나중에 나를 붙인 거라면." 서강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빚을 졌기 때문에 금고가 생긴 게 아니라, 금고에 맞는 빚을 만들기 위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을 찾은 겁니다." 검은 장갑의 남자가 전화기를 귀에 댔다. 그가 입술을 움직였지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뒤 건물 전광판에 글자가 나타났다. [사건 관계 기록 공개 제한 재지정] [사유: 이해관계인의 증거 오염 우려] 전광판 글씨는 금세 사라졌다. 박현정은 모니터를 껐다. 종이 회의록을 그대로 손에 쥐고 있었다. "전광판이 무슨 말을 하든 종이 날짜는 바뀌지 않아요. 적어도 이 장부를 사람이 다시 쓰지 않는 한은요." 그녀가 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런데 방금 백재헌 씨 이름이 들어 있는 페이지 뒤에서, 다른 봉투 하나가 발견됐습니다. 수취인으로 적힌 이름은 김소라 씨예요." 소라가 눈을 들었다. 봉투에는 어머니 이정민의 필체가 남아 있었다. '내가 돌아가지 못할 때, 내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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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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