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기록관리원 별관은 유리로 된 관공서가 아니었다.
회색 벽돌 건물 앞에는 큰 은행나무가 서 있었고, 출입구 지붕에서는 빗물이 가늘게 떨어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종이에서 나는 풀 냄새와 난방기 먼지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이곳은 적어도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누군가의 삶을 계산하는 금고와 달랐다.
접수창구의 직원은 소라가 내민 사건 번호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98-구륜-1103은 일반 열람 대상이 아닌데요."
"열람 제한 근거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소라가 물었다. "피해 당사자와 관련 증언자가 함께 왔어요."
직원은 화면을 두드렸다. 몇 번의 검색 뒤 담당자를 불렀다. 작은 이름표에 '박현정, 기록보존사'라고 적힌 중년 여성이 나왔다.
"기록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박현정이 말했다. "그 사건의 전자 목차가 최근에 수정된 것 같아요. 종이 장부하고 대조해 보겠습니다."
서강재는 곧바로 자료를 요구하지 않았다. 누군가 문서를 열람할 권리가 있는지, 사적인 피해자 정보가 노출되지는 않는지 먼저 확인해야 했다. 소라는 자신이 가진 어머니의 음성 기록과 피해자 신청 내역의 사본을 보여 줬고, 우빈은 아버지의 가족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정상 서류를 제출했다. 나래는 이름표를 요구받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녀의 신원을 아직 확인할 수 없었으므로 박현정도 함부로 기록을 만들지 않았다.
"실물 보관 번호만 확인하겠습니다." 박현정이 말했다. "문서를 가져가거나 이름을 공개하는 건 별개의 절차예요."
그녀가 가져온 것은 두꺼운 청색 장부였다. 컴퓨터가 아닌 볼펜으로 쓴 목록. 몇몇 페이지는 테이프로 보수되어 있었다. 날짜를 따라 넘기던 박현정의 손가락이 멈췄다.
"여기 있네요. 삼목 철공소 시설물 사고, 출입문 부품 보관, 임시보호소 이송 기록. 그런데 전산에 입력된 이름하고 다릅니다."
"어떻게요?"
"전산에는 1998년부터 미상채권관리가 의뢰인이라고 적혀 있어요. 하지만 이 장부의 의뢰인은 '구륜구 긴급보호협의회'예요. 당시 구청과 민간 시설이 공동으로 운영하던 긴급지원 창구였죠."
소라는 이 이름을 공책에 적었다. 이름이 다르다는 것은 누군가 후대에 보관 주체를 갈아 끼웠을 가능성을 뜻했다. 처음부터 금융회사에 맡겨진 기록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상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박현정이 말했다. "부품은 이송됐는데 문서가 남아 있지 않아요. 인계 확인란이 빈 칸입니다. 대신 뒤쪽에 사유가 적혀 있어요."
'실물 증거 열람 시 사망자 및 미확인 아동에 관한 별도 확인 필요.'
아이 나래가 박현정을 바라봤다. "미확인 아동이면 민호일 수도 있어요?"
박현정은 성급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정직한 한마디가 나래에게는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누구도 이번에는 빈 칸을 마음대로 채우지 않았다.
박현정은 별관 지하의 금속 보관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관리 규정에 따라 방문 기록을 남기고 보호 장갑을 제공했다. 우빈은 출입 서명 위에 작은 문장이 없는지 몇 번이나 살폈다. 단순 방문 확인일 뿐 권리 이전 조항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이름을 적었다.
보관실에는 녹슨 문짝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비가 그친 지 오래인데도 철제 문의 아래쪽에는 물결 모양 자국이 남아 있었다. 가로로 움직이는 빗장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작은 나사구멍 네 개가 사각형으로 뚫려 있었다.
"저 구멍이 두 번째 잠금장치 자리인가요?"
우빈이 묻자 서강재가 손전등을 비췄다. 구멍 주위에 새까만 기름때가 있었다. 원래 장착된 부품을 나중에 떼어 간 흔적이었다.
"여기엔 부품 사진이 있었을 겁니다."
박현정은 종이 장부를 다시 펼쳤다. 작은 봉투 하나가 책등에 끼워져 있었다. 안에는 흑백 필름의 접촉 인화 사진과 손으로 그린 도면이 들어 있었다. 사진에 두 개의 걸쇠가 분명히 보였다.
첫 번째는 목수가 만들어 붙인 단순한 빗장. 두 번째는 기계실로 연결된 쇠사슬 장치였다. 도면 아래에는 '비상시 원격 고정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원격 고정 장치가 없다고 했는데." 우빈이 중얼거렸다.
"거짓말일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어요." 소라가 말했다. "아버지가 공방 문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나중에 누가 장치를 덧댔는지는 별개예요."
문 옆 목재 틈에는 우빈이 알아볼 만한 자국이 있었다. 별 모양 못 세 개. 정태수가 급히 고장 난 곳을 수리하면 종종 남겨 두던 표시였다.
"이건 아버지가 손댄 자리가 맞습니다. 그런데 쇠사슬 연결판은 용접 모양이 달라요. 공장에서 찍어 낸 부품 같아요."
박현정은 기록번호를 읽었다.
'추가 잠금부품 D-2. 반입 시각 1998년 11월 3일 03시 13분.'
서강재의 눈이 가늘어졌다. "바로 그 시간입니다. 사진을 보낸 사람이 그걸 알고 있었어요."
그때 복도에서 서류철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젊은 직원이 다급히 말했다.
"선생님, 98-구륜-1103 폐기 승인 공문이 방금 내려왔어요. 기록 이관 오류라서 부품 전부 원관리기관으로 넘기랍니다."
"원관리기관이 어디죠?"
직원이 서류를 내밀었다. 수취 기관 칸에는 낯선 서명이 있었다.
'미상채권관리 기록정정대행.'
박현정은 공문을 한참 살폈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 공문을 보낸 사람이 누구든, 오늘 들어온 문서 한 장으로 스물여덟 해 보관한 실물을 내줄 수는 없습니다. 진위를 확인하겠습니다."
출입문 너머에서 검은 장갑을 낀 남자 둘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빈은 망치를 들지 않았다. 문을 막은 박현정이 먼저 말했다.
"물건을 보시려면 정식 인계 절차부터 밟으세요. 이 보관실에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남자 하나가 웃었다.
"그러니 우리가 이름을 가지러 왔잖습니까."
그가 꺼낸 사원증에는 사진이 없었다. 대신 아래에 한 줄이 인쇄되어 있었다.
[원본 보관권자: 백재헌]
제3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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