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의 여자가 자신을 강나래라고 소개했을 때,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하나는 열두 살의 얼굴, 하나는 그 뒤로 세월을 살아온 얼굴이었다. 여자의 왼쪽 눈썹 위에는 흉터가 있었다. 아이는 그 흉터를 만져 보고 싶었지만 유리창을 통과할 수는 없었다.
"제 이름을 어떻게 믿으라고요?" 우빈이 물었다.
여자는 자기 주머니에서 낡은 학생증을 꺼냈다. 사진 속에는 열두 살의 나래가 있었다. 다만 학생증 번호와 학교 이름은 빛이 닿을 때마다 바뀌었다.
"여기서 보여 주는 증거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여자가 말했다. "밖에 가면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륜동 보호소에 있던 장 선생님. 아직 살아 계시다면 저를 기억할 거예요."
성인 나래의 외투는 닳아 있었다. 소매 안쪽에 작은 수선 자국이 있었고, 가방 손잡이에는 테이프가 여러 겹 감겨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래된 삶의 흔적이 분명했지만, 우빈은 이제 외형만으로 어떤 사람의 과거를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미결은 수천 사람의 목소리와 필체를 흉내 내면서도 그들이 무엇을 견뎠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어디부터 확인하면 되죠?" 우빈이 물었다.
"구륜동 보호소 이름을 바꾼 복지센터가 있어요. 거기엔 제 상담 기록 일부가 남아 있을 겁니다. 원본이 없다면 당시 직원의 증언이라도 찾아야 해요."
일행은 장소와 사람의 이름을 각각 적었다. 누군가 살아 있다고 말한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믿는 대신, 그 말이 검증될 수 있게 하려는 일이었다.
소라가 서둘러 수첩에 적었다. 검증 가능한 외부 증인을 스스로 제시한다는 것은 적어도 좋은 출발이었다.
"왜 지금까지 여기 계셨어요?"
"여기에 들어온 건 오늘이에요."
여자가 대답했다. "저는 계속 밖에서 살았어요. 기억 일부를 잃고, 어느 날부터 과거의 제가 여기 갇혀 있다는 소리를 들었죠. 찾아오려 했는데 주소를 찾을 수 없었어요. 오늘 아침 처음으로 문이 열렸습니다."
우빈은 미결을 돌아봤다. "그럼 네가 이 사람을 데려왔나?"
"이중 기록을 정리하려면 원본과 사본을 대조해야 합니다."
"그 대조가 사람을 지우는 거라면 안 해."
미결의 어깨에서 검은 종이가 떨어졌다. 바닥에 닿기도 전에 새 문장으로 변했다.
[보관 비용 초과]
[동일인 중복 기록: 2건]
[정리 방식 선택: 통합 / 폐기]
소라가 화면을 가리켰다.
"선택지가 둘뿐이라고 해서 그중 하나를 고를 의무는 없어요."
"기한이 있습니다." 미결이 말했다.
[전체 대상자 정산까지 59:41:02]
서강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너는 중복 기록을 싫어하는구나. 하나의 이름에 하나의 책임만 붙이려는 거지."
"동일 명의의 보관은 비용을 증가시킵니다."
"하지만 그 사본은 네가 동의 없이 만든 거야. 비용이 발생한 이유도 네 행동에 있어."
미결의 몸 안에서 검은 글자가 빠르게 흘렀다. 그는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질문을 무시하지도 못했다.
성인 나래가 유리를 두드렸다.
"제 열두 살을 빼앗지 마세요. 저 애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저는 알아야 해요."
아이 나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줌마는 민호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여자의 얼굴이 굳었다. 우빈은 그 반응이 답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이름을 부르면 표정이 먼저 움직이는 법이었다.
"민호는……" 성인 나래가 말했다. "오래전부터 찾고 있어. 처음엔 죽었다고 들었고, 나중엔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어. 사고 기록이 서로 맞지 않았어."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어. 내가 기억을 되찾으면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믿었거든."
아이 나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가진 마지막 기억에는 민호가 아직 여덟 살이었다. 성인 나래가 견딘 긴 시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빈은 둘 사이에 섰다.
"당신이 진짜라고 증명하려면 밖에서 만나야 합니다. 서로를 합치든 없애든 여기서 결정하지 않겠습니다."
미결은 낮고 일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외부 반출에는 보증인이 필요합니다."
"그 말도 안 믿어요. 법이나 실제 규정 어디에 근거하는지 보여 줘요."
종이 형상 안에서 수백 건의 기록이 움직였다. 그러나 어느 것도 독립적인 보증인 필요 규정을 나타내지 못했다. 모든 문구는 시스템 스스로 발행한 문서였다.
서강재가 말했다. "원본을 검증하는 규칙도 그랬습니다. 자기 스스로 만든 계약으로 사람을 묶으면서, 그 계약을 따를 의무가 당연하다고 주장하죠."
"규칙이 없으면 정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산하지 마."
우빈이 대답한 순간 미결의 몸을 이루던 종이들이 거칠게 회전했다.
"미결 채무는 처리돼야 합니다."
"누가 정했어?"
"최초 발행자가."
"그 사람을 불러."
미결은 침묵했다. 천천히 형상의 배가 갈라지더니, 접힌 장부 하나가 나왔다. 장부 겉에는 '원본 00-000001'이 적혀 있었다.
우빈은 장부를 곧장 잡지 않았다. "열람만 하겠어요. 새 책임은 인수하지 않습니다."
미결은 잠시 멈췄다가 장부를 유리벽 쪽으로 돌려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1998년 11월 3일의 실험 지시가 적혀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보호 책임의 소재가 불명확한 경우, 우선 책임을 기록해 당사자 보호를 지속한다.'
서명란에는 정태수, 이정민, 도기철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줄은 그들과 다른 글씨였다.
'원발행 불명 시 빈칸을 보충하여 상용 거래로 변환할 것.'
소라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실험 지시가 아니라 추가된 명령이에요. 필체도 종이도 달라요."
"누가 추가했습니까?"
미결의 형상이 장부 마지막 장으로 넘어갔다.
[부가 명령 발신자: 최종 승인 관리자]
[관리자 인증 방식: 미래 수익자의 사후 동의]
우빈은 입술을 깨물었다. 누군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동의를 미리 빌려 빈 채권자 칸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니 미결에게는 모든 이름이 빌려 쓸 수 있는 물건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럼 최초 수익자가 나라고 적혀 있는 이유는," 그가 천천히 말했다. "돈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네가 뒤늦게 동의했다고 꾸미기 좋은 사람이 필요해서였네."
미결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유리창 너머의 정태수가 아들을 바라봤다.
"이제 망치로 치면 안 되는 이유를 알겠니? 장부를 없애면 누가 그 칸을 채웠는지 다시 찾을 수 없게 된다."
소라가 페이지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도장이 종이에 찍힌 위치와 글자 간격이 미묘하게 달랐다. 마지막 장만 원본보다 나중에 접착된 것이었다. 그녀는 페이지 가장자리에서 작은 번호를 찾아냈다.
'정정 이력 0001-추가. 실행 계정: OM-01.'
서강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미령의 계정입니다."
그때 스피커에서 박수 소리가 울렸다.
"축하드립니다." 오미령의 목소리였다. "여기까지 오신 분은 처음이네요. 그런데 그 명령, 제가 내린 건 맞지만 제가 최초 승인 관리자는 아닙니다."
모니터에 새로운 글자가 떴다.
[관리자 지위 승계 예정]
[후보자: 정우빈]
"수익자가 싫으시다면," 여자가 말했다. "이번엔 관리자가 되어 보시겠습니까?"
제2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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