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빈은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도착한 문자를 세 번 읽었다.
'최초 수익자 정우빈 님. 입장 권한이 확인됐습니다.'
문자에 찍힌 시각은 지금보다 스물여덟 해 전이었다. 1998년 11월 3일. 우빈이 태어나기도 전의 날짜였다. 화면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하나 더 떠 있었다.
[최초 수익 동의 여부: 자동 승인]
"누가 내 동의를 대신했지?"
그가 중얼거리자 서강재가 팔을 붙잡았다.
"우선 그 문자를 증거로 남기고 화면을 닫으세요. 답장하면 실제 동의로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소라는 문자 수신 화면을 외부 카메라로 촬영했다. 우빈의 휴대전화 원본에도 저장됐지만 시스템이 기록을 바꾸는 일을 이미 여러 번 겪었다. 서로 다른 매체에 같은 장면을 남기는 습관이 이제는 당연해졌다.
구륜우편집중국의 비상등이 긴 통로를 붉게 비췄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컨베이어 진동 때문에 철제 난간이 떨렸다. 나래는 우편함 앞을 떠나기 전에 동생의 신발이 들어 있던 틈을 한 번 더 돌아봤다. 아이의 목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동생을 못 찾으면요?" 나래가 물었다.
우빈은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럴 수도 있어. 그래도 이름만 보고 아무나 네 동생이라고 믿게 두진 않을 거야."
나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강재가 컨베이어 뒤쪽 철문을 열자 예상과 달리 작은 사무실이 나타났다. 회색 책상과 의자 두 개, 벽에 붙은 신생아 출생 신고 양식. 그리고 오래된 타자기 한 대. 전화기 안쪽에서 들려오던 종이 긁는 소리가 이 방에서도 들렸다.
[수익자 등록 방식: 미래 지명]
[등록 근거: 설계자의 1차 보증]
우빈이 종이를 읽었다. '정태수의 장남. 향후 출생 또는 성명 변경과 관계없이 동일인으로 간주.'
"아버지가 날 팔아넘겼다고?"
소라가 종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서명란이 없어요. 아버지의 보증이라고 적혀 있지만 직접 서명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문서 맨 아래에는 복잡한 도장 모양이 찍혀 있었다. 아버지가 쓰던 철공소의 원형 도장이 아니었다. 도기철 회사의 기계식 승인인과 더 비슷했다. 우빈은 그 차이를 알아봤다. 정태수는 아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도장을 제멋대로 파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아버지는 문서 끝까지 읽지도 않은 사람이 보증인이 될 수 없다고 했어요. 이렇게 빈칸을 남길 리가 없어요."
"어떤 사람이든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서강재가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문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는 사실과 아버지가 실제로 동의했다는 사실을 구별해야 합니다."
우빈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듣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가 무죄라는 확답이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확인이었다.
우빈은 타자기 옆에 놓인 나사를 집어 들었다. 오래된 기계에서 빠진 부품이었다. 손바닥에 얹자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고장 난 선풍기 하나를 버리지 못하고 여름밤 내내 나사를 정리했다. "고장 난 건 고치면 되지만 빠진 부품을 남 탓으로 하면 못 고친다"고 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어머니는 선풍기보다 새것을 사는 편이 싸겠다고 핀잔을 줬다.
그런 사람이 남의 이름을 미리 빌려 쓰는 설계에 동의했을까. 기억만으로 아버지를 변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나사는 적어도 아버지를 확인할 이유를 하나 더 만들었다. 우빈은 부품을 원래 자리에 놓았다.
타자기 옆에는 오래된 가족관계 등본 사본이 놓여 있었다. 서식은 1998년 것이었지만 우빈이 태어난 뒤에야 기입할 수 있는 이름과 날짜까지 인쇄돼 있었다. 시스템은 미래에 생길 사람을 현재의 계약자로 예약하고 있었다.
"서류가 미래를 예언한 게 아니에요." 소라가 말했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의 정보로 과거 서류를 덧쓴 겁니다. 이것만 보면 예전에 이미 정해져 있던 것처럼 보이게요."
벽 한쪽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좋은 추론입니다."
오미령이었다. 검은 장갑을 낀 여자가 천장 스피커를 통해 말했다.
"실제 출생 정보가 업데이트됐다는 사실은 저희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기록으로 혜택을 받은 것은 사실 아닙니까? 정우빈 씨는 그 금고 덕분에 어머니 병원비를 막으셨잖아요."
"그건 내가 금고를 사용했던 날 이야기예요. 1998년에 받은 이익이 아니죠."
"경제적으로 보면 이어지는 관계입니다."
"그건 당신들 계산이지 내 동의가 아니에요."
오미령은 웃었다. 천장 스피커에 종이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났다.
"좋습니다. 그런 이의 신청을 하실 분을 기다렸습니다."
사무실 책상 두 개가 동시에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 아래에서 폭이 좁은 계단이 나타났다. 벽에는 낡은 명패가 붙어 있었다.
'00번 원본 열람실.'
그러나 계단을 내려가기 전 소라가 멈춰 섰다. 출입구에는 두 가지 통로가 있었다. 하나는 '수익자 인정 입장', 다른 하나는 '수익자 지위에 대한 이의 신청'. 전자는 밝게 조명되어 있었고 후자는 녹슨 철판으로 가려져 있었다.
"저쪽으로 가야 해요." 우빈이 말했다.
서강재는 녹슨 철판을 밀었다. 안쪽에는 사람이 겨우 지나갈 폭의 점검 통로가 있었다. 오래전 시설 관리자가 만든 길이었다. 컴퓨터가 승인하지 않아도 실제로 존재하는 통로였다.
그들은 점검 통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진흙냄새가 났다. 이어 오래된 우편물의 풀 냄새, 기름 묻은 쇳가루 냄새가 차례로 스쳤다. 맨 끝에는 유리벽 하나가 있었다.
유리 너머에는 정태수가 있었다.
우빈의 아버지는 낡은 작업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두 손은 멀쩡했고 얼굴에는 이십여 년 전의 주름만 있었다. 그가 아들을 알아봤다.
"우빈아. 여기까지 왔구나."
우빈은 유리벽으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서강재가 먼저 손을 짚어 표면을 확인했다. 손가락이 비쳤을 뿐 유리에 온기도 차가움도 없었다.
"아버지. 진짜예요?"
정태수가 슬프게 웃었다.
"네가 어떻게 확인하겠니. 나도 여기서 내가 몇 번 복사됐는지 모른다."
그는 작업대 아래에서 종이 한 장을 들어 올렸다. 오래된 원본에는 수익자가 없었다. 대신 맨 처음 적힌 문장이 보였다.
'강나래 외 1인. 현장으로부터 무사히 인도할 것.'
바로 그 아래에 누군가 붉은 도장으로 찍은 글씨가 있었다.
[채무로 전환]
우빈이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구하라는 말이 어떻게 채무가 됐어요?"
아버지가 입을 열려는 순간 유리 뒤의 불이 꺼졌다. 스피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에게도 청구할 수 없는 약속을, 누군가 돈이 되는 상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지."
검은 종이들이 유리벽 안쪽에서 한 사람의 형상으로 뭉쳤다. 목도 없고 얼굴도 없었다. 그러나 우빈은 그것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결 / 원본 열람 입회]
"정우빈 씨," 형상이 말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당신에게, 저는 왜 첫 번째 수익을 줬을까요?"
제2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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