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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24화
PAYLUA ORIGINAL · 제24화

24화. 열세 번째 우편함

빚을 먹는 금고 · 3,501자

오프라인 책장
구륜우편집중국은 철거 안내문 뒤에 숨어 있었다. 높은 담장에는 잡초가 자랐고, 오래된 주차장은 누군가 버린 플라스틱 의자와 깨진 화분으로 가득했다. 정문에는 붉은 글씨로 '출입 금지'가 적혀 있었다. 소라는 차를 멈추고 시간을 확인했다. 배송 완료 예정 시각까지 서른두 분 남았다. 옆 차선의 검은 배송 차량은 교차로를 돌아 사라졌다. 차 안에서 들리던 울음소리는 갑자기 끊겼다. 대신 나래의 손에 든 번호표에서 잉크가 번졌다. [배송 대기: 강나래] [수취 확인 예정: 15:00] "저 차가 먼저 도착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죠?" 우빈이 물었다. 서강재가 담장 안을 바라봤다. "원본과 복사본을 합치겠다고 할 겁니다. 그런데 어느 쪽을 지울지는 금고가 선택하겠죠." "합칠 수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일을 저쪽은 이미 계약 조항처럼 써 놨습니다." 그들은 철망 틈으로 건물을 살폈다. 유리창 대부분이 깨진 상태였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화물용 경사로에는 최근 타이어 자국이 있었다. 새 자국 옆에는 비가 마르지 않은 듯 반짝이는 오래된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작은 신발 한 짝의 자국이었다. 우빈이 경사로로 향하려 하자 소라가 불렀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건조물 침입으로 체포되면 끝이에요. 물류센터의 현재 소유자부터 확인해요." 그녀는 부동산 등기 자료와 시청의 공개 철거 계획을 대조했다. 건물은 수년 전 민간 재단에 넘어갔고 철거 사업 시행사는 미상채권관리의 계열사와 주소를 공유했다. 소라가 관계사 전산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대신 건물 관리 업체의 긴급 연락처로 통화가 됐다. "내부에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일 가능성이 있어요. 현장 확인이 필요합니다." 관리 업체 직원은 장난전화냐고 묻다가 소라가 보내 준 사진을 보고 태도를 바꿨다. 오늘 새벽 실제로 출입 신청이 있었으나 신청자 이름이 공란이었다고 했다. 직원은 경찰에 확인 요청을 넣겠다고 답했다. 다만 현장 경비원이 도착하기 전에는 안쪽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그때 건물 지하에서 세 번의 종소리가 울렸다. 경사로 끝 닫힌 셔터 위로 문구가 나타났다. [수취인이 입장하지 않으면 자동 인계] 나래가 번호표를 움켜쥐었다. "저는 가야 할 것 같아요." "네가 가야 한다는 말도 저쪽이 만든 조건일 수 있어." 우빈이 말했다. "우리가 확인할 거야. 혼자 보내지 않을 거고." 정문 반대쪽에서 누군가 쇠사슬을 끌며 나왔다. 일흔은 돼 보이는 경비원이었다. 명찰에는 '임시 관리인 문재복'이라고 적혀 있었다. 소라가 전화를 걸었던 업체에서 보낸 사람이 아니라, 오래전 우편집중국이 운영되던 때부터 이곳을 지킨 사람이었다. "여기 왜 왔습니까?" 소라가 신분을 밝히고 건물 관련 기록을 보여 주었다. 문재복은 사연을 듣더니 얼굴이 굳었다. "오후 세 시마다 벨이 울립니다. 그럴 때면 안에 배달할 게 생기죠. 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다만 그날마다 수취인 이름 하나가 없어집니다." 문재복은 한동안 열쇠꾸러미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어릴 적 아들과 함께 이곳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집중국이 문을 닫은 뒤에도 경비 일을 그만두지 않은 것은, 어느 날 밤 자신이 배달을 도왔던 봉투 하나 때문이라고 했다. 주소가 없는 봉투를 상사에게 건넸고 다음 날 그 상사의 이름이 당직 명부에서 사라졌다. "그날 내가 본 건 분명한데,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출입 시간만이라도 기록했지요. 내가 틀렸다면 나중에 고칠 수 있게 말입니다." 소라는 수첩을 폈다. "그 수첩, 아직 갖고 계신 거죠? 원본은 건드리지 않고 대조해 볼게요." 문재복은 처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그의 기억을 미친 소리로 여기지 않고 확인할 기록으로 받아들인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는 허리에 찬 열쇠꾸러미를 보여 줬다. 오래전에 쓰던 화물용 출입문 열쇠였다. "내가 문 열어 주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중에 제대로 기록해 주겠습니까?" "본인이 확인하신 것과 저희가 확인한 걸 구분해서 남기겠습니다." 소라가 약속했다. 문재복은 잠시 침묵하다 열쇠를 돌렸다. 이번 문은 망치도 동의 버튼도 필요 없었다. 단지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제 권한으로 열어 주었다. 내부는 오랫동안 쓰지 않은 우편집중국 특유의 구조였다. 사람 키보다 높은 분류 컨베이어가 층마다 구불구불 이어졌다. 모터는 멈춰 있었지만 봉투들이 그 위에서 혼자 움직였다. 편지들은 전부 같은 방향, 지하 2층으로 향했다. "배달물이 이렇게 많은데 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우빈이 중얼거렸다. "받은 사람의 기록을 지운 겁니다." 서강재가 대답했다. 일행은 낡은 철제 계단을 내려갔다. 벽에는 손으로 그린 대피도가 붙어 있었다. 소라는 먼저 비상구가 실제로 열리는지 확인했다. 한쪽 문은 밖으로 이어졌지만 다른 문은 열리지 않았다. 우빈은 아버지의 망치로 경첩 옆 헐거운 덮개를 열어 잠금 상태를 살폈다. 단순히 녹슬어 붙은 문이었다. 힘을 줘 밀자 열렸다. "이 길로 나오면 됩니다." "먼저 나갈 길부터 확인하는군요." 문재복이 말했다. "이번에는 누굴 구하겠다고 다른 사람을 가두지 않을 겁니다." 지하 분류실 중앙에는 반송 우편이 쌓여 있었다. 소라는 가장 가까운 봉투의 겉면을 읽었다. '나 대신 동생만은 살려 주세요.' 그 옆 봉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버지에게 이 빚을 알리지 말아 주세요.' 처음에는 단순한 사연처럼 보였다. 그러나 봉투 옆 작은 바코드가 반짝이는 순간 검은 글씨가 나타났다. [해당 소망을 제3자 책임으로 환산] 우빈은 이를 악물었다. 사람의 간절한 말이 전부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있는 계약 재료가 되어 있었다. "여기 있는 걸 전부 없애면 되나요?" "아니요." 서강재가 고개를 저었다. "저 중에는 사람들에게 빚이 떠넘겨졌다는 유일한 증거도 있을 겁니다. 태우면 채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출처를 찾을 길이 없어지죠." 우빈은 봉투 더미를 내려다봤다. 처음 금고를 만났을 때는 이 종이들이 사람을 괴롭히는 물건이기만 했다. 이제는 이 종이를 없애지 않고 바로잡는 일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지도 몰랐다. 지하 벽 끝에는 유리창이 있었다. 유리 너머로 작은 책상 열세 개가 보였다. 각 책상 앞에는 우편함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열두 개는 닫혀 있었지만 마지막 하나만 열려 있었다. 번호 13. 나래는 유리 앞에 붙어 섰다. 열린 우편함 아래에는 낡은 운동화 한 짝이 놓여 있었다. 운동화 안쪽에는 검은 펜으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강나래.' "이거 제 신발이에요." 아이가 속삭였다. 서강재가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2시 59분. 분류실의 모든 봉투가 그 자리에 멈췄다. 마지막 열세 번째 우편함에서 작은 손 하나가 나왔다. 손에는 같은 짝의 운동화가 들려 있었다. "누나, 이번에는 같이 나가자." 그 목소리가 나래를 불렀다. 하지만 아이는 오히려 뒤로 물러났다. "우리 동생은…… 오른손이 없었어요." 우편함에서 나온 손에는 손가락이 다섯 개 모두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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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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