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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98화
PAYLUA ORIGINAL · 제198화

198화. 푸른 금고의 진짜 용도

빚을 먹는 금고 · 2,209자

오프라인 책장
봉산 제0제작소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맞았다. 정태수와 오세림, 박현정, 정우빈, 김소라가 각자의 허가 범위 안에서 모였다. 폐쇄된 건물을 억지로 열어젖히는 대신, 관리기관이 정한 안전 구역에서 실물 도면과 보존 자료를 대조하는 작업이었다. 오세림은 자신의 현 주소를 남기지 않고 참석할 수 있는 절차를 요청했고, 그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푸른 금고를 찾으셨나요?” 우빈이 물었다. 오세림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실물을 확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설계 원칙을 설명할 수는 있어요.” 그녀는 오래된 도면 두 장을 펼쳤다. 첫 번째는 검은 금고였다. 겉모습은 우빈의 집 지하실에 있는 물건과 닮아 있었다. 두 번째는 푸른 금고였다. 똑같은 문이지만 안쪽 구조는 달랐다. “둘 다 처음에는 ‘받았다는 기록’을 정리하는 장치였어요. 다만 검은 상자는 미확정 항목을 일시로 분류하는 쪽이고, 푸른 상자는 당사자가 확인할 때까지 그 상태를 지키는 쪽이었습니다.” “그럼 왜 검은 금고는 빚을 없애 줬죠?” “그렇지 않았어요. 원래는 빚이 없어졌다고 말하면 안 되는 장치였죠. 미확정 상태인 동안 외부 청구를 중지하고, 누가 얼마를 지급했는지 따로 확인해야 했어요.” 정태수는 도면을 보는 내내 입을 닫고 있었다. 그는 1996년 금고 외함을 납품하던 때를 떠올렸다. 작은 창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고 작업자가 주장했지만, 예산과 납기를 이유로 그 창을 없애는 수정 요청이 있었다. “내가 만든 건 문짝뿐이라고 생각했어.” 태수가 말했다. “그 작은 창을 없애는 게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지.” 오세림은 태수를 바라보았다. “그때 질문을 했어야 한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구조를 바꿀 권한은 납품업체에 없었어요. 누가 변경을 지시하고 승인했는지는 별도로 남아 있어요.” “그 기록을 제출하겠습니다.” 태수는 자신의 납품 도면 사본을 꺼냈다. 오래전에 접어 둔 것이라 모서리가 닳았지만, 창을 막으라는 수정 지시가 붉게 남아 있었다. 장인호의 경고문과 마찬가지로 누구의 말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이었다. 현정은 2010년 전산 전환 명세서를 보여 주었다. 그날 누군가는 검은 금고의 ‘미확정 상태로 청구 중지’라는 기능을 ‘채무 소멸 완료’로 바꿔 보여 주도록 고쳤다. 뒤에서는 미확정 금액을 다른 사람에게 이전할 수 있도록 했다. 푸른 금고의 확인 절차는 삭제하지 못했지만, 사용할 수 없는 오래된 창고 깊숙이 밀어 넣었다. 소라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원래의 미결은요?” 오세림이 푸른 금고 도면을 가리켰다. “사람이 아니에요. 확인되지 않은 항목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설계한 보류 기능이죠. 누군가 그 기능에 명령을 덧씌우면서 ‘대리 수령자’를 찾는 프로그램으로 변했어요. 우리가 만났던 괴물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잘못된 명령의 형상일 가능성이 있어요.” 우빈은 종이로 된 손들이 사람의 이름을 쓰려 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금고가 미확정을 견디지 못해 사람을 찾아갔던 것일까. 처음부터 누구의 이름도 필요하지 않았는데. “되돌릴 수 있나요?” “어떤 기능은 중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장 난 기계만 고친다고 되돌아가는 건 아니에요. 그동안 만들어진 허위 계약과 피해 기록을 별도로 정리해야 합니다.” 정확히 그때 공장 바깥의 유리문에서 검은 손자국이 나타났다. 종이들이 한꺼번에 들러붙어 손가락 모양을 만들었다. 그 손의 가운데에는 J-00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최초 사용자가 결산을 요구했다.’ 우빈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최초 사용 계약 / 검토 단계] [선택 A: 모든 기록 일괄 소멸] [선택 B: 확인된 기록 보존 및 미확정 반환] [선택 기한: 오늘 자정] 오세림은 화면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우빈의 표정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선택을 대신해 달라고 할까요?” 그녀가 물었다. 우빈은 고개를 저었다. “선택하기 전에 확인하겠습니다. ‘반환’이란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요.” 현정은 공식 보존 항목 목록을 꺼내고, 소라는 피해자들이 실제로 수령하지 않은 물품 명세를 따로 표시했다. 정태수는 수정 지시가 들어온 시간의 증거를 모았다. 각자의 기록이 같은 탁자 위에 놓였다. 우빈은 처음으로 금고가 제시한 두 문장 외에 세 번째 문장을 썼다. ‘당사자 동의 없는 이전은 취소하되, 확인된 지급과 미지급 권리는 남긴다.’ 검은 손자국이 멈췄다. 금고가 그렇게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금고를 만든 사람들은 끝내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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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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