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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89화
PAYLUA ORIGINAL · 제189화

189화. 세 시 십사 분 전

빚을 먹는 금고 · 2,611자

오프라인 책장
새벽 두 시, 중앙기록관리원의 복도에는 발소리가 적었다. 정우빈과 김소라는 임시 열람실 밖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박현정은 보존 신청서에 증빙 자료를 연결하고 있었다. 원천 발행 검토 신청은 누군가의 개인 채무를 대신 취소하는 문서가 아니었다. 허위 지급 기록을 근거로 전체 정산을 진행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우빈은 아버지에게서 짧은 문자를 받았다. ‘밥은 먹었냐. 내가 옛날에 잘못한 건 내 몫으로 말할 테니 네 이름은 함부로 쓰지 마라.’ 그는 잠시 화면을 내려다봤다. 태수는 오래전 자신이 만들었던 외함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이제야 제대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죄를 전부 떠넘길 생각도, 아들 대신 전부 떠안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한 만큼만 말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우빈은 ‘네. 아버지도 주무세요’라고 답장했다. 실제로 저녁을 제대로 먹진 못했지만, 이 새벽에 아버지를 다시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곧바로 소라가 작은 삼각김밥 두 개를 내밀었다. “거짓말하면 안 되는 건 서류만이 아니에요. 먹고 하세요.” 그 말에 우빈은 처음으로 짧게 웃었다. 현정은 신청서에서 문장 하나를 지웠다. ‘12,408건의 채무가 모두 허위다.’ 대신 이렇게 적었다. ‘12,408건의 공통 발행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일괄 정산의 유효성을 검토할 때까지 정산을 보류해 달라.’ “왜 다 가짜라고 쓰면 안 돼요?” 소라가 물었다. “그중에는 실제로 받아야 할 임금도, 실제 지출한 비용도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것까지 가짜라고 선언하면 다른 사람의 돈을 없애는 셈이 되죠.” 소라는 자신의 가족이 오랫동안 받지 못한 보상금을 떠올렸다. 허위 채무를 지우기 위해 실제 보상금까지 지우겠다는 말은 그 누구에게도 구원이 될 수 없었다. 신청서에는 세 개의 근거가 붙었다. 구급상자 점검표의 실제 비용, 재난대응교육관의 미집행 예산, 1996년 보존 인장의 검토 문장. 사진과 증언은 각 출처를 따로 표시했다. 추정과 사실이 섞이지 않도록 일부러 장수를 늘렸다. “한 장이면 끝날 일을 왜 열다섯 장으로 만들었는지 이제 알겠어요.” 우빈이 말했다. “한 장으로 뭉개면 누가 나중에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현정이 답했다. 02시 17분, 접수 시스템이 반응했다. [원천 발행 검토 신청 접수] [검토 대기] [필수 첨부: 최초 발행자의 인정 서명] 소라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자기들이 만든 빚이 진짜인지 확인하려면, 그 빚 만든 사람한테 인정받으라는 거예요?” 현정은 입력창을 닫지 않았다. 그는 접수 성공 화면과 서명 요구 화면을 모두 보존했다. 부당한 요구가 바로 보이게 만들어야 했다. 그때 건물의 전등이 한 번 꺼졌다 켜졌다. 복도 끝에는 검은 양복의 남자가 서 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출입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빈이 말을 걸기도 전에 남자가 봉투를 내밀었다. “그냥 당신 이름 하나면 됩니다.” “무슨 이름이요?” “최초 발행자가 누군지 모르겠다면서요. 당신이 대신 책임지면 모든 청구를 멈춰 드립니다.” 봉투 앞면에는 정우빈이라는 글씨가 이미 적혀 있었다. 우빈은 심장이 한 번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와 어머니, 소라, 수많은 피해자를 생각하면 당장 받아 적고 싶었다. “제가 그걸 서명하면 어떻게 되죠?” “당신 하나가 채무자가 되는 겁니다. 나머지는 해방되죠.” “그렇다는 증거를 보여 주세요.”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의 뒤편 그림자에서 셀 수 없는 영수증이 날렸다. 각 종이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끝에는 검은 실이 묶여 있었다. 실들은 모두 봉투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을 구할 기회가 눈앞에 있습니다.” 우빈은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 금고를 사용하던 날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가족의 빚이 사라진다는 말을 믿어 버린 순간, 어디로 옮겨졌는지 묻지 않았다. “제가 그날 저지른 잘못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확인하지 않고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남자는 봉투를 한 치 더 밀어 올렸다.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는 걸 이용해서 사람 이름을 빼앗는 건 당신들이잖아요.” 소라가 말했다. 현정이 복도 안내 방송을 통해 관리 인원을 요청했다. 검은 양복의 남자는 발소리가 가까워지기 전에 서서히 흐려졌다. 그의 손에 있던 봉투가 바닥에 떨어졌다. 안에는 백지 한 장뿐이었다. [대체 발행자 등록 실패] 02시 31분, M-00에게서 마지막 자료가 도착했다. 공개 허용 문장과 원본 보존번호를 연결하는 짧은 확인서였다. 사람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누구의 대리인도 아니다. 나는 미확정 상태를 보존한 기록의 증인이다.’ 우빈은 확인서를 서류에 첨부했다. 최초 발행자가 서명하지 않아도 해당 기록이 왜 보류되었는지 입증할 근거가 됐다. 하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서명 칸을 지우지 않았다. 02시 43분, 열람실에서 작은 시계 소리가 났다. [이의 접수 마감까지 00:01:00] [발행자 서명 미제출] 현정은 아무도 대신 서명하지 않은 채 자료 제출 버튼을 눌렀다. 시계가 영 초가 되자 화면이 암전됐다. 그 뒤 나타난 글자는 승인도 거부도 아니었다. [접수 완료 / 검토 보류] [원천 발행 증빙 검토 시 일괄 정산 유예 가능] 그들에게 남은 것은 서른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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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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