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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84화
PAYLUA ORIGINAL · 제184화

184화. 정산을 거부한 사람

빚을 먹는 금고 · 2,279자

오프라인 책장
우빈은 M-00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상대가 스스로 허락한 것은 증거를 보내는 일이었다. 이름도, 위치도 공개되지 않았다. 누구나 증언의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그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운 지 오래였다. 그 대신 박현정은 중앙기록관리원에 남아 있는 1996년 이의 기록을 검색했다. 승인 도장이 찍힌 문서보다 반려된 문서가 적었다. 그중 하나가 이상했다. 반려 사유가 기재된 자리에 종이의 섬유가 긁힌 흔적이 있었다. [신청: 예상 대비비용의 실제 수령 확인] [심사 결과: 보류] [담당 검토자: 비공개] 현정은 사본을 빛에 비췄다. 지워진 칸 밑에 연필로 누른 자국이 남아 있었다. 종이를 뒤집어 옆광에서 촬영하자 단어 두 개가 드러났다. ‘직접 확인.’ “간단한 말인데요.” 소라가 말했다. “그걸 없애려고 여기까지 한 거죠.” 우빈이 대답했다. 공장 노무기록을 보관한 옛 직원 유종학은 이 문서를 보는 순간 얼굴이 굳었다. 그는 인장만 기억했다. 타원형의 작은 도장이었는데, 가운데 숫자 대신 빈칸이 있었고 외곽에 ‘미확정’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승인 도장이 아니라, 승인을 멈추는 도장이었어요.” 유종학이 말했다. “누가 썼습니까?” “그건 모르겠어요. 한 명이 갖고 다닌 물건도 아니었고요. 일지에 사유를 남기면 그 도장을 썼어요.” 우빈은 어깨에 들어갔던 힘을 풀었다. 거부한 사람이 한 명일 거라 기대했지만, 그 도장은 여러 사람의 책임 있는 판단을 기록하는 장치였다. 오히려 찾아야 할 것이 분명해졌다. 개인의 이름이 아닌, 왜 멈췄는지를 설명하는 원본 기록. 유종학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도장을 찍으면 일을 못 끝낸다고 혼났어요. 그러다가 어떤 직원은 그만뒀고, 어떤 직원은 이름을 지웠죠. 나도 오래 버티진 못했어요.” “그래도 누군가 계속 찍었군요.” “네. 사고가 났을 때 이름 모르는 사람부터 지우면 안 된다고. 이름을 모르는 건 우리가 아직 모르는 거지, 그 사람이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우빈은 유종학의 말을 모두 기록했다. 다만 그가 과거 동료의 퇴사 이유까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 부분에는 ‘유종학의 기억’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사람을 지키려면 좋은 의도로 하는 말도 사실과 구분해야 했다. 도영식이 소라에게 메신저로 연락했다. 회수 조직에서 다시 제안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금고의 채권을 매입하는 대가로 자신이 예전에 독촉했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넘기라는 것이었다. “돈도 안 주고 연락처만 내놓으라니, 장사도 못하는 놈들이야.” 도영식이 말했다. 소라는 화를 냈다. “그 연락처를 아직 가지고 있어요?” “있던 사람도 있고 지운 사람도 있어. 법적으로 보관해야 하는 기록도 있으니까.” “연락처를 물건처럼 넘기지 마세요. 필요한 기록은 합법적인 절차로 확인하고요.” 도영식은 한동안 침묵하다 답했다. “알겠어. 대신 나도 확인할 게 있어. 내가 빌려준 돈과 저놈들이 만든 돈이 어디서 섞였는지.” 그날 늦은 밤, 우빈과 소라는 자료를 들고 허가받은 옛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 안에는 책장만 남아 있었다. 문을 연 관리 직원은 먼저 전등을 켰다. 창문 너머 거리에는 분식집 불빛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전등 하나가 켜질 때마다 책장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졌다. ‘거부하셨습니까?’ 책장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그림자가 바닥으로 내려와 검은 팔처럼 접혔다. 손바닥에는 보존 도장의 빈칸과 똑같은 모양이 있었다. [거부권 사용료 청구] [권리 행사 시 관리 손실 발생] “거부할 권리도 돈을 내야 한다는 거예요?” 소라가 말했다. 그림자는 입도 없이 웃었다. 우빈은 덫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챘다. 그들은 거부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거부권 사용료를 청구받는다. 그렇다고 동의하면 수령이 된다. 그는 책장을 향해 손을 뻗지 않았다. 현정에게 전화해 관리 직원과 함께 실내 출입 사실을 남겼다. 이어 사본 화면을 켜 실제 기록이 요구한 항목을 읽었다. “우리는 권리를 구매하는 게 아닙니다. 누가 무엇을 수령했는지 사실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확인할 자료가 없으면 없다고 남기겠습니다.” 그림자의 손바닥에 있던 빈칸이 줄어들었다. 그림자는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남겼다. ‘빈칸에는 반드시 누군가 들어가야 한다.’ “그건 누가 만든 규칙입니까?” 우빈이 물었다. 대답 대신 종이 한 장이 천천히 떨어졌다. 맨 위에는 시험 장비 관리번호가 적혀 있었다. [제0실험 / 미확정 보존 인장] [마지막 실물 검사일: 1996-10-02] [현 보관처: 봉산 외부 결제실] 빈칸을 지키던 도장이 어느새 빈칸을 팔아먹는 결제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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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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