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학이 내민 것은 사진 한 장이었다.
오세림이 퇴사하던 무렵 그와 함께 일했던 사무 직원이 보관하던 사진이었다. 봉산 제0제작소의 출하대 앞에 선 세 사람이 찍혀 있었고, 사진 가장자리에는 푸른 줄이 있는 외함 한쪽 모서리가 보였다. 사진 속 오세림은 카메라를 보지 않고 손가락으로 문서 하단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진이 있다고 해서 상자를 가져갔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현정이 말했다.
“알아요. 그런데 저 손짓이요.” 우빈이 사진을 확대했다.
세림의 손가락 아래에는 출하 승인서가 펼쳐져 있었다. 붉은 도장이 찍힌 줄과 푸른 색연필로 그어진 줄이 겹쳐 있었다. 태수가 만들어 준 외함 내부의 눈금과 같은 색이었다.
소라는 글자를 겨우 읽었다.
‘실물 수취…’
그 아래는 잘려 있었다.
“오세림이 왜 그렇게 아래쪽을 가리켰을까요?”
“사진 찍는 사람에게 잘못된 부분을 보여 주려 했을지도요. 아니면 우연히 손이 그쪽에 있었거나.”
우빈은 두 설명을 수첩에 나란히 적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먼저 써 놓지 않았다.
한편, 봉산 부품 공장 대표는 폐쇄된 별관의 시설 점검에 참관할 수 있다는 답변을 보내 왔다. 현 소유자가 승인한 범위는 1층 기록실과 외벽뿐이었고, 지하 보관구역은 안전 진단 이후에만 접근할 수 있었다. 일행은 허가서에 이름을 남기고 찾아갔다.
별관의 기록실은 텅 비어 있었다. 오래된 창문에는 가는 금이 갔고, 바닥의 페인트는 신발에 밀려 얇게 일어났다. 그런데 한쪽 벽만 다른 부분보다 최근에 칠한 흔적이 있었다.
“표찰이 있었던 자리네요.” 강재가 말했다.
벽에는 길고 좁은 직사각형으로 먼지 자국이 남아 있었다. 현정이 업체 담당에게 사진을 보여 주자 그는 폐업 당시 물품 분류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새 표찰을 만들며 옛판은 창고로 옮겼다는 것이다.
그들이 창고에서 확인한 분류판에는 붉은 물품과 푸른 물품의 두 줄이 남아 있었다. 붉은 줄에는 ‘확정’, 푸른 줄에는 ‘보류’. 누구나 볼 수 있는 단어였다. 다만 한쪽 끝의 작은 글씨가 차이를 만들었다.
[확정: 관리자가 대신 처리 가능]
[보류: 당사자 확인 전 관리자도 완료 처리 불가]
“금고가 원래부터 무조건 빚을 없애 주는 물건이 아니었군요.” 소라가 말했다.
우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처음 만난 검은 금고는 채무를 없앤다고 말한 다음,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넘기는 장치였다. 푸른 외함은 반대로, 누가 실제로 받았는지 모르는 동안 기다리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푸른 기능에도 약점이 있었다. 확인할 당사자가 사라지면 아무것도 끝낼 수 없었다. 그 틈에서 관리자들은 보류에 따른 손실을 청구하고, 그 손실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다.
그들이 표찰의 사진을 찍는 동안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낡은 분류표 한 장이 혼자 접혔다. 종이는 네모난 작은 상자 모양이 되더니 소라의 신발 앞에서 입을 벌렸다. 안쪽에는 서로 다른 필체의 글씨들이 빼곡했다.
‘내 물건이 아니에요.’
‘그래도 책임자는 필요합니다.’
‘돌려준 사람이 없습니다.’
종이는 마지막 문장만 계속 반복했다. 소라가 신발로 밟으려 하자 우빈이 말렸다. 밟아서 찢으면 바닥에 남은 글씨를 보존하기 어려웠다. 강재가 공장 직원의 허락을 받아 주변을 분리하고 촬영하자 상자는 스스로 펴졌다. 분류표 뒷면에는 1996년 제작소에서 쓰던 안전 수칙이 적혀 있었다.
‘대상 물품의 수취 확인이 완료되지 않은 경우 장부상 자동 완료 금지.’
현정은 이 물리적인 종이와 금고가 띄운 글자를 구별해 기록했다. 같은 사건에 붙어 있다고 해서 같은 출처는 아니었다. 소라는 바닥을 오래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어머니의 이름이 날마다 종이 위에서 마음대로 움직이던 시간을 떠올린 탓이었다.
그때 창고의 유리창에 누군가 손바닥을 댔다. 창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섯 손가락 모양의 습기가 유리에 남았고, 글자가 번졌다.
[관리자 손실 보전 신청]
[보류된 시간: 채무 전환 가능]
소라가 창문을 바라봤다.
“누군가 기다렸다는 사실을 비용으로 파는 거예요.”
현정은 창문에 나타난 글자를 공장의 시설 기록과 구분해 촬영했다. 물리적인 손자국과 초자연적인 표시가 어떤 관계인지 아직 설명할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 우빈의 휴대전화에 사진의 원본 파일이 도착했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사진에서 잘렸던 하단 문장이 이번에는 온전히 보였다.
‘실물 수취 미확인. 임의 확정 금지. 오세림.’
뒤이어 또 다른 글씨가 나타났다.
‘이 경고문을 남긴 사람을 수취인으로 바꾸지 말 것.’
마지막 문장은 원본 사진의 일부가 아니었다. 지금 막 새로 적힌 것처럼 잉크가 번졌다.
제17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