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소 상층으로 올라오는 동안 네 사람은 서로 다른 소리를 들었다.
우빈에게는 어머니가 자신을 찾는 목소리였고, 소라에게는 오래전 사라진 어머니가 저녁을 먹으라며 부르는 소리였다. 서강재에게는 동생이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목소리였다. 나래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왜 저만 조용해요?" 나래가 물었다.
"아마 네가 듣고 싶은 걸 기계가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우빈은 대답하면서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다. 누군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그 사람에게 대가를 청구할 수 있다면, 나래는 이 기계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유일한 사람일지 몰랐다.
지상에 도착하자 건물 앞 광장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까 열두 사람이 줄을 섰던 자리에 새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커다란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렸다.
'고객 부담 제로. 빚 없는 내일을 드립니다.'
직원들이 사람들에게 무료 상담권을 나눠 주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웃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손등을 훔치며 울고 있었다. 모두 절박한 얼굴이었다. 그 절박함을 알아보는 기계는 언제나 빠르게 움직였다.
"공장에서 임시 보관으로 바꿨는데도 사람이 계속 오네요."
소라가 말했다.
서강재는 건물 상단의 안내판을 가리켰다.
[제2정산소 운영: 비상 전환]
[자발적 신규 신청: 정상 접수]
"기존 빚의 이전을 멈춘 것뿐입니다. 새 약속은 계속 받을 수 있어요."
"그럼 이 사람들도 막아야죠."
우빈이 앞장서려 하자 소라가 팔을 잡았다.
"우빈 씨. 금고가 사람들한테 어떤 말을 하는지 먼저 들어요."
그들은 상담 천막 옆에 섰다. 직원은 노트북 화면을 보여 주며 말했다.
"기존 채무는 오늘 바로 0원으로 정리됩니다. 가족에게 독촉 연락도 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보호하실 분의 성함만 적어 주세요."
중년 남자가 물었다.
"보호할 사람이라고요? 보증인이 아니라?"
"정확한 명칭은 관계 확인인입니다. 금융상 책임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소라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굳었다. 이명숙에게 적용된 담보가 바로 관계를 빌미로 삼았다. 금융상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책임도 없는 건 아니었다.
남자가 펜을 들기 직전, 우빈이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여기 작성하시기 전에 관계 확인인이 어떤 책임을 지는지 종이로 받아 보세요."
직원이 짜증 섞인 웃음을 지었다.
"고객님, 상담 방해는 삼가 주십시오."
"제가 대신 결정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지금 작성하시는 분이 알아야 할 내용이 있어서요."
남자는 펜을 내려놓고 직원을 바라봤다.
"그런데 아까 책임 없다며요. 이분 말대로 설명서 주세요."
직원의 손끝이 잠깐 회색으로 변했다. 모니터 속 글자가 빠르게 바뀌었다.
[자발성 판단 기준: 서명 여부]
[설명 의무: 해당 없음]
"설명 의무가 없대요?" 소라가 물었다.
직원은 노트북을 닫았다. 다른 직원 두 사람이 다가왔다. 검은 양복 아래로 각자의 목에 종이 넥타이가 걸려 있었다. 도영식이 당한 것과 같은 흔적이었다.
우빈은 그들이 오기 전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에서 받은 서류에는 최초 채권자 이름이 없습니다! 돈을 누가 빌려줬는지 확인한 다음 선택하세요!"
군중이 한꺼번에 돌아봤다.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당장 빚을 없애 준다는데 당신이 뭔데 방해해!"
"저도 어제까지 같은 생각이었어요. 가족 빚이 없어졌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가족의 이름이 담보로 잡혔어요."
그의 말에 몇 사람이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다른 이들은 상담 창구 쪽으로 더 바짝 붙었다.우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빚 때문에 가족들이 잠을 못 자는 모습을 오래 보아 왔다. 누군가가 눈앞에서 당장 0원으로 만들어 준다고 하면, 설명하기 어려운 위험보다 지금 확실한 안도를 선택하고 싶어지는 법이었다.
그때 휠체어를 탄 남자가 사람들 사이에서 앞으로 나왔다. 한쪽 바퀴의 고무가 닳아서 밀 때마다 작은 삐걱거림이 났다.
"청년 말이 맞다면, 나한테 방법 하나만 알려 줘요. 이 서류 없이 당장 병원비 독촉을 어떻게 막으란 말입니까?"
우빈은 대답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은행에 전화하라고 말하면 모든 게 해결될 듯한 척할 수는 없었다. 그는 먼저 남자가 들고 있는 서류의 제목을 물었다. 남자는 '병원비 보증 채무 상환 신청서'라고 읽었다.
소라가 옆으로 다가왔다.
"지금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저 종이가 원래 병원비 내역과 같은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기록에 없는 비용이 붙었을 수 있어요. 병원 영수증을 갖고 계세요?"
남자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영수증 묶음을 꺼냈다. 진료비와 급여 항목이 적혀 있었다. 소라는 신청서의 금액과 비교했다. 신청서의 청구 금액은 실제 남은 진료비보다 열 배 가까이 컸다.
"왜 이렇게 차이 나죠?"
그가 묻자 오히려 직원이 서류를 빼앗으려 했다. 우빈은 손을 들고 막았다.
"저분 동의 없이 가져가지 마세요."
남자는 영수증 묶음을 휠체어 팔걸이에 꼭 끼워 넣었다.
"나도 봐야겠소. 내 이름으로 얼마나 적혀 있는지."
그가 상담 천막에서 돌아서자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 직원에게 원본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고, 다른 누군가는 가족에게 전화했다. 모두가 믿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몇 사람이 처음으로 '내가 왜 이 돈을 갚아야 하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절박한 사람에게 위험을 알려 준다고 해서 곧바로 희망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소라가 천막 옆 공지판으로 걸어갔다. 작은 글씨로 적힌 '고객 확인 사항' 맨 아래에 빈칸이 있었다. 그녀는 갖고 있던 투명 파일에 원본 대조 불가 통지를 넣어 붙였다. 공지판은 손대지 않고 옆에 세웠다.
"이미 채무를 넣으신 분들은 원본 확인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보관 중인 기록이 있어요. 모두 공개하라는 뜻은 아니고, 각자 자기 계약 내용을 보실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젊은 여성 한 명이 다가왔다.
"제 동생이 여기 와서 빚이 없어졌대요.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저를 알아보지 못해요. 제가 대신 갚아야 하나요?"
우빈은 한숨을 삼켰다. 똑같은 불행이 이미 넓게 퍼져 있었다.
"그렇게 하시지 마세요. 먼저 관계가 정말 사라진 건지 확인해야 해요. 동생분이 기억하는 물건이나 함께 겪은 일을 찾아 보세요."
여자는 목에 걸린 낡은 펜던트를 꺼냈다. 반쪽짜리 별 모양이었다.
"동생한테 나머지 반쪽이 있어요."
"그걸 갖고 있나요?"
"네. 지금 같이 왔어요."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의자에 앉은 남동생은 누나를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펜던트를 보자 손끝이 떨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똑같이 부러진 별 하나를 꺼냈다.
두 반쪽을 맞대자 작은 빛이 번졌다.
[비문서 관계 증거 확인]
[관계 침식 보류]
여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남동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나?"
그 광경을 보고 몇 사람이 줄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그들은 우빈의 말이 아니라 눈앞에서 확인한 사실 때문에 움직였다.
그러나 천막 뒤편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좋은 홍보였네요."
검은 장갑을 낀 여자가 나타났다. 이전에 장부를 들고 서강재를 추적하던 바로 그 여자였다. 그녀는 군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정우빈 씨 덕분에 고객님들이 중요한 사실을 아셨습니다. 원래 빚을 갚지 않아도 가족의 추억만으로 관계를 보류할 수 있다는 것."
우빈은 고개를 들었다.
"그게 왜 문제입니까?"
"관계를 보류하는 동안 기록 검증 비용이 발생한다는 건 알고 계셨습니까?"
그녀가 장부를 열었다. 새 숫자가 나타났다.
[비문서 관계 증명 사용료: 최초 1회 무료]
[이후 검증료: 이름당 1건]
군중의 펜던트에서 빛이 꺼졌다. 우빈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 걸음 다가갔다.
"그것까지 돈 받겠다는 겁니까?"
여자는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공짜라는 말은 원래 가장 비싼 계약의 시작이니까요."
제1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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