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6화
PAYLUA ORIGINAL · 제16화

16화. 빚을 인쇄하는 기계

빚을 먹는 금고 · 3,757자

오프라인 책장
비상계단 끝에는 손잡이 없는 문이 있었다. 나래가 도영식에게서 떨어진 종이 열쇠를 꺼냈다. 잘 접힌 종이는 얇고 하얬지만, 끝을 만지면 손가락이 베일 만큼 단단했다. 아이가 문 중앙의 틈에 열쇠를 밀어 넣자 열쇠가 펴지면서 긴 영수증으로 변했다. [출입 목적: 원금 확인] [출입 인원: 4명] [대가: 지정되지 않음] "대가가 없네요." 소라가 속삭였다. 서강재는 영수증을 잡으려는 그녀의 손을 막았다. "안 적혀 있다고 없는 건 아닙니다. 빈칸이 남아 있으면 저쪽이 마음대로 채웁니다." 우빈은 영수증을 뽑아 찢으려다가 멈췄다. 도영식이 자신들을 살리려고 남긴 물건이었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종이를 맨손으로 다룰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망치로 문틀 가장자리를 두드렸다. 네 번째 못이 박힌 부분에서 소리가 달라졌다. "여기 틈이 있어요." 우빈은 접힌 종이 열쇠를 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문은 영수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그 뒤에 숨은 기계식 잠금장치가 덜컥 풀렸다. 잠금장치를 만든 사람은 복잡한 문서가 아니라 진짜 열쇠구멍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손을 원했던 것이다. 문 너머는 작은 인쇄 공장 같았다. 붉은 불빛 아래 거대한 롤러가 움직이고, 종이띠가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졌다. 그 종이띠마다 사람의 이름, 금액, 서명이 찍혀 있었다. 롤러 한쪽에서는 새 종이가 들어가고, 반대편에서는 검은 종이 덩어리가 나왔다. 덩어리는 손과 발이 생기며 작은 괴물로 일어섰다. 우빈은 자신이 처음 본 종이 괴물을 떠올렸다. 이곳은 빚을 없애는 곳이 아니었다. 빚을 다른 형태로 만드는 공장이었다.기계 한쪽에서는 이미 괴물이 된 종이들이 창살 너머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어떤 것은 팔이 너무 길어 바닥을 쓸고 다녔고, 어떤 것은 얼굴 대신 숫자가 적힌 전표를 달고 있었다. 우빈이 보았던 집 앞의 괴물은 그중 가장 작은 부류였다. 한 괴물이 창살에 붙자 옆면에 '최초 채무자: 김○○'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러나 그 아래 작은 글씨는 전혀 달랐다. [현재 회수 대상: 정○○] [최초 채권자: 확인 불가] "돈을 빌린 사람과 빚을 갚으라고 쫓기는 사람이 다릅니다." 우빈이 말했다. 서강재는 답하지 못했다. 수많은 회수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 차이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았는지 생각하는 듯했다. 창살 가까이에 있던 작은 괴물은 발톱을 세우지 않았다. 반듯한 글씨가 붙은 종이 손 하나를 내밀었다. 우빈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그 글씨를 읽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기다립니다.' 그는 움찔했다. 자신을 끌어들이려고 어머니를 이용하는 말일 수 있었다. 그런데 글씨가 바뀌었다. '제가 제 딸을 병원에서 기다렸습니다.' 누군가 이 괴물에게 남겨 둔 기억이었다. 괴물은 한 번도 자기 것이 아닌 돈 때문에 딸을 찾아가지 못한 사람이었을지도 몰랐다. 우빈은 그것을 사람이라고 부를 근거도, 괴물이라고만 부를 근거도 찾지 못했다. "저 종이를 지우면 저 사람의 기억도 지워지겠죠." 나래가 말했다. 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증거를 그대로 남겨야 해. 아무리 무섭게 보여도 안에 있는 누군가가 사라지면 안 되잖아." 우빈은 떨리는 손을 가라앉혔다. 공격하는 괴물이라 해도 그 몸의 글자가 누군가의 삶에서 뜯겨 나온 것이라면, 무턱대고 찢어 버리는 일은 원래 사람들이 당한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는 공구함에서 긴 절연 테이프를 꺼내 창살에 붙였다. 괴물들이 닿지 않는 위치에 굵은 글씨를 썼다. '원본 대조 전 폐기 금지.' 소라가 인쇄대 위의 금액을 읽었다. [청구서 발행: 46,900,000원] [원금 확인: 실패] [채무 이전: 승인된 것으로 간주] "이게 말이 돼요? 원금도 확인 안 했는데 어떻게 발행부터 해요?" 서강재는 얼굴을 찌푸렸다. "원래라면 실패한 서류는 여기까지 오지 못합니다. 누군가 먼저 승인된 것처럼 기록하게 순서를 뒤집었습니다." 그들은 롤러 아래 수거함에서 반으로 잘린 서류를 발견했다. 윗부분에는 돈을 빌린 사람의 이름이, 아랫부분에는 실제 돈을 지급한 기관과 날짜가 찍혀 있었다. 그런데 자르는 칼날이 정확히 채권자 칸을 가르고 있었다. 그 아래는 빈칸으로 남았다. "처음 채권자가 없었던 게 아니군요." 소라가 말했다. "여기에서 잘라 낸 거예요." 우빈은 가슴 속에서 불이 솟는 것 같았다. 자신이 갚지 못해 괴로워했던 돈, 아버지를 병원에 눕힌 돈, 어머니가 아들을 잊게 할 뻔한 돈. 그중 얼마나 많은 것이 누군가 가위로 잘라 낸 뒤 새로 만든 청구서였을까. 그때 롤러 아래에서 작은 괴물이 나래를 바라봤다. 인쇄된 숫자가 아직 굳지 않은 어린 괴물이었다. 그것은 다른 괴물들과 달리 곧장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몸의 글자를 떼어 바닥에 늘어놓았다. [엄마 병원비] [아버지 수술비] [동생 등록금] 세 줄 모두 누군가 실제로 했을 법한 말이었다. 하지만 금액은 없었다. "이건 아직 빚이 아닌데요." 우빈이 말했다. "소망도 여기에 들어와요. 누군가 무서워하는 미래의 돈까지 먼저 빚으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서강재가 인쇄 설비의 구동 장치를 찾았다. 전선을 끊으면 멈출 것 같았다. 그러나 우빈은 그가 니퍼를 꺼내자 손을 들었다. "기계를 멈추면 여기 있는 종이는 어떻게 되죠?" "출력이 중단될 겁니다." "이미 만들어진 괴물은요?" 서강재는 대답하지 못했다. 우빈은 시험실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돈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빠져나갈 뿐이라고. "종이를 태우면 빚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또 누군가에게 옮겨갈 수 있어요. 그러면 안 됩니다." 소라가 인쇄대 밑의 작은 계기판을 발견했다. 전기 스위치 옆에 '원본 대조'와 '임시 보관'이라는 낡은 손잡이가 있었다. 다른 손잡이와 달리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이건 뭘까요?" 서강재가 확인했다. "옛날 설계입니다. 출력 전에 원래 채권자와 금액을 다시 대조하는 장치군요." 우빈은 소라의 허락을 구해 그녀의 서류 사진을 기준 자료로 올렸다. 이정민의 육성 기록, 세탁소 임대차 각서, 배달 기사의 취소 영수증까지 서로 다른 종류의 증거를 한 자리에 놓았다. 한 종류의 서류만으로 판정하려는 기계를 다른 종류의 현실로 막기 위한 방법이었다. 계기판에 붉은 불이 켜졌다. [원본 대조 불가능] [허위 발행 의심 3건] [임시 보관 가능] "가능하대요." 소라가 숨을 삼켰다. 우빈은 손잡이를 '임시 보관' 쪽으로 돌렸다. 롤러가 멈췄다. 괴물들은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빈 종이 더미로 주저앉았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무도 공격하지 않았다. 기계가 새 인쇄물을 밀어 냈다. [발행 책임자 식별 필요] [과거 승인 코드: DK-00] [현재 발행 책임자: 미상채권관리 주식회사] "회사 이름이 있군요." 서강재가 말했다. 소라는 바로 사진을 찍었다. 회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도기철과 관계가 있는지 아직 몰랐지만, 적어도 공란에 무슨 이름이 숨었는지 확인할 출발점이었다. 그때 멈춘 롤러 안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는 종이를 버리지 마세요." 우빈이 고개를 돌렸다. 종이 더미 사이로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도영식의 얼굴이었다. "폐기 대상이라며……" "맞아. 그래서 여기로 왔어." 도영식은 입술을 힘겹게 움직였다. "나까지 태워 버리면 내가 넘겼던 빚이 원래 주인한테 돌아가지 않아. 또 다른 사람에게 가. 증거를 남겨. 꼭." 종이 더미가 스르르 접혔다. 도영식의 얼굴은 사라졌지만 목소리의 마지막 말은 우빈의 귀에 남았다. [임시 보관 중인 미결 채무: 14,201건] [보관 한도 도달 예상: 00:47:00]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6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