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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5화
PAYLUA ORIGINAL · 제15화

15화. 과거가 발행한 청구서

빚을 먹는 금고 · 3,812자

오프라인 책장
우빈은 테이프를 세 번 다시 들었다. 1998년 11월 3일.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말한 날짜. 자신이 태어나기 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수록 녹음 속 문장은 더 기괴했다. "그때부터 저를 알고 있었던 건가요?" 서강재는 테이프 케이스를 살폈다. 겉에는 정태수의 글씨로 '개인 자료. 출생 전 유효'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보증인의 자녀가 누구인지 미래까지 특정할 수 있는 장치였다면, 처음부터 가족을 목표로 삼았다는 뜻이 됩니다." "아버지가 그런 일을 했다고요?" "아직 모르죠. 녹음이 그때 이루어졌다는 것도 확인해야 합니다." 소라가 옆에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 기계는 날짜와 이름을 바꿔 왔어요. 우리가 직접 확인한 것만 믿어야 해요. 아버지 이름이 들린다고 해서 모든 게 진짜는 아니니까요." 우빈은 숨을 골랐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다 멈췄다. 소라가 아니었다면 분노에 휩쓸려 아버지의 결백도 죄도 서둘러 판결했을 것이다. 서강재는 실험대 뒤 패널을 열었다. 안쪽에는 낡은 자기테이프 기록기가 하나 더 있었다. 송신기와 연결된 선 끝이 땅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원래 장치가 기록을 과거에 보낸 게 아닙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조건으로 지정할 수 있게 해 둔 겁니다. 이름은 나중에 채워졌을 가능성이 커요." 우빈은 도면에 표시된 빈 원을 떠올렸다. 00번 금고가 자신의 이름을 비춰 보여 준 것과 같은 원리였다. 이름이 미리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채워 넣을 빈칸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소라는 녹음 내용을 시간순으로 다시 적었다. '우리 아들'이라는 말과 '정우빈'이라는 글씨가 실제 같은 음성인지 확인하려고 테이프를 멈춰 들었다. 두 구간 사이에서 기계 잡음의 높이가 바뀌었다. "붙여 넣었네요. 이름 부분만 다른 기록이에요." "그럼 아버지가 저를 지목한 게 아닌 거예요?" "지목한 사람은 따로 있겠죠." 그 순간 철공소 위층에서 발소리가 났다. 질서정연하게 네 번 걷고 멈추는 걸음이었다. 우빈은 반사적으로 불을 껐다. 서강재가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철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우빈 씨. 본인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도영식이었다. 우빈은 저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어머니를 담보로 올린 사람이고, 마지막에 강제 근로 계약에 붙잡혀 회수 쪽으로 끌려간 사람이었다. 위층 계단에 선 도영식은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피부는 종이처럼 희어졌고 오른손에는 둥근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내려오지 마." 우빈이 말했다. "경고 문구로 처리하겠습니다. 고객님의 안전을 위해 신분을 확인하겠습니다." 도영식의 목소리는 감정이 없었다. 그러나 왼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원래 도영식이 사람에게 겁먹을 때 하던 버릇이었다. "이름 알잖아요. 전에 나한테 전화도 했잖아요." "이전 기록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재확인을 요청합니다." 우빈은 아버지의 망치를 지렛대 아래 내려놓았다. 서강재는 달려들 준비를 했다. 하지만 우빈이 손을 들었다. "당신이 여기 온 이유는 내가 맞다고 하게 만들기 위해서예요. 그렇죠?" 도영식은 아무 말이 없었다. 서류상으로 자신이 물을 수 있는 질문 외에는 답변이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래가 조용히 앞으로 나왔다. "아저씨. 저 사람 발밑에 길이 있어요." 모두가 바닥을 내려다봤다. 도영식의 그림자 아래 검은 줄이 한 가닥 있었다. 줄은 장부에서 이어진 것처럼 그의 넥타이 끝에 묶여 있었다. 나래는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글씨를 읽었다. [담당 직무: 신분 확인] [원 인격: 채무자 도영식] [계약 갱신 회차: 2/3] "아직 세 번이 안 끝났어요." 우빈이 말했다. 7화에서 서강재가 설명했던 절차였다. 세 번째 명의 확인 전에는 완전히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도영식 씨. 당신한테 빚을 넘기라고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거절했다는 말은 듣고 싶어요." 그는 고개를 들었다. 넥타이가 스르륵 움직이며 목을 조였다.도영식의 구두에는 아직 우빈의 집 앞 골목에서 묻은 진흙이 남아 있었다.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얼굴은 몇 년을 늙은 것 같았다. 우빈이 기억하는 도영식은 빚 독촉을 하면서도 계산기를 누를 때는 손이 떨리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계산기도 들지 않고 사람의 이름만 물었다. "당신이 우리 집에 왔던 날 기억해요?" 도영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과거 접촉 내역 조회가 필요합니다." "아버지한테 돈 빌려주지 말라고 엄마가 몇 번이나 전화했잖아요. 그때 왜 무시했습니까?" 이번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넥타이 끝이 그의 셔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소라가 우빈의 옷자락을 잡았다. "지금 그 사람한테 따지면 기계가 더 잡아먹어요." "알아요. 그런데……" 우빈의 목이 메었다. "미워할 사람도 없어지면, 제 가족한테 일어난 일은 누가 책임져요?" 소라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 사람이 했던 일은 남아요. 우리가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사람을 살리는 것과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건 다른 거예요." 우빈은 도영식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람 하나가 종이로 변해 간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살아 돌아오더라도 변명해야 할 일은 남아 있을 것이다. 우빈은 그 사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 "도영식 씨. 사과하란 말 안 하겠습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빚을 넘기지 않을 건지만 결정하세요." 도영식의 입술이 아주 조금 떨렸다. 공장의 기계 소리 저편에서,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의 선택 하나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규정 외 응답은……" "말 안 해도 돼요. 고개만 끄덕여요. 빚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당신 선택이라면." 도영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그의 고개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직무 지시 위반] [제3확인 보류] 넥타이가 한 겹 풀렸다. 도영식은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목에 검은 줄이 남았지만 눈빛은 조금 돌아왔다. "나가라."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나가야 해. 시험실 밑에 진짜 발행기가 있어. 너희가 본 테이프, 그건 미끼야." "누가 만든 미끼죠?" "도기철이. 아버지가 나한테도 그랬어. 인간은 돈이 사라진다고 하면 검증하지 않는다고." 소라가 다가섰다. "도기철 씨는 살아 있어요?" 도영식은 대답 대신 몸을 떨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열쇠 하나가 떨어졌다. 금속 열쇠가 아니라 흰 종이를 접어 만든 얇은 열쇠였다. "삼목은 입구야. 발행기는 그 아래. 그리고……" 그는 우빈을 올려다봤다. "네 아버지는 금고를 고치는 동안 실수를 했지만, 처음부터 네 이름을 걸지는 않았어. 네 이름을 올린 놈은……" 도영식의 목이 다시 조여 왔다. 검은 줄이 쇄골까지 내려왔다. [계약 갱신 최종 경고] 나래가 앞으로 뛰어들어 그의 손을 잡았다. 아이의 발목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도영식은 눈을 크게 뜨고 나래를 바라봤다. "너…… 여기 있었어?" 그 말이 나오자 기계가 낮은 경보를 울렸다. [무기명 증인 발견] [회수 우선순위 변경: 나래] 도영식은 주머니에서 비상 셔터 버튼을 꺼내 눌렀다. 철문이 내려오며 그와 나래 사이를 갈랐다. "도망쳐! 저 애는 채무자가 아니야!" 셔터 아래에서 검은 종이 손들이 뻗어 나왔다. 우빈은 아이를 뒤로 당겼다. 마지막으로 본 도영식은 검은 넥타이를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줄을 스스로 끊으려는 얼굴이었다. 그들이 시험실 아래 비상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위쪽에서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서강재의 휴대전화에 통지가 하나 도착했다. [도영식 / 제3확인 완료] [분류 변경: 폐기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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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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