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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65화
PAYLUA ORIGINAL · 제165화

165화. 받지 않은 돈의 영수증

빚을 먹는 금고 · 2,369자

오프라인 책장
다음 날 아침 연화빌라 앞에는 낯선 승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앞 유리창에는 ‘보호금 현장 정산’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흰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가 꺼낸 것은 계약서가 아니라 작은 휴대용 프린터였다. “어젯밤 정전 피해 신청하셨죠? 방문 수령 확인만 부탁드립니다.” 황복자가 계단 앞을 막아섰다. “신청한 사람 없어요. 누구한테 위임받았는지 문서부터 보여 주세요.” 남자는 명함을 내밀었다. ‘동림 계승관리 / 현장 정산팀’. 사업자번호가 적혀 있었지만 현정이 확인한 상호 등록 정보와 맞지 않았다. 소라는 주민들에게 차에 접근하지 말 것을 권했고, 황복자는 건물 관리실에서 대화하자고 제안했다. “원하시면 경찰에 신고하세요.” 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받을 돈을 포기하시면 피해는 본인들 몫입니다.” 우빈은 그 말에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마법의 금고가 아닌 평범한 협박도 섞여 있었다. 그렇다면 상대의 주장에도 검증할 수 있는 빈틈이 있을 것이다. “실제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계좌 이체 내역을 보여 주세요.” “현금 지급 예정입니다.” “그러면 아직 지급하지 않은 거군요.” 프린터가 갑자기 종이를 토해 냈다. 하얀 영수증에는 각 가구의 이름과 500만 원 수령 확인이 찍혀 있었다. 주민들은 놀라 수군거렸다. 남자는 영수증을 손에 쥔 채 말했다. “시스템에서는 이미 완료입니다.” “시스템이 했다는 말과 우리가 받았다는 말은 다릅니다.” 우빈이 대답했다. 황복자가 영수증에 손대지 않은 채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각 주민은 자신이 돈이나 안내를 받은 적 없다는 짧은 진술을 남겼다. 현정은 정전 신고 기록과 계량기 복구 내역을 확보했다. 아무리 금고가 기록을 겹겹이 쌓아도 실제 시간에 벌어진 일을 통째로 바꿀 수는 없었다. 남자는 마지막 시도를 했다. 프린터에서 한 장을 더 뽑아 황복자에게 건넸다. “거부 확인서를 쓰셔도 됩니다. 그러면 정산에 불이익이 있었다는 기록만 남아요.” 종이 위쪽에는 ‘지급 거절 확인’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아래쪽 각주에는 ‘보호금 수령 사실을 인정하고 지급 방식에만 이의를 제기함’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황복자는 종이를 쥐지 않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나한테 돈을 준 적이 없는데 지급 방식에 어떻게 이의를 해요?” “업무 절차입니다.” “그 업무가 잘못됐다고요.” 그가 돌아서자 다른 주민도 한 걸음 물러났다. 우빈은 자신의 첫날을 생각했다. 그때 도영식은 돈을 없애 주겠다는 말만 반복했고, 우빈은 계약서의 다음 장을 읽지 않았다. 이제 눈앞의 사람들은 종이 한 장을 끝까지 읽을 시간을 서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강재는 프린터 기기 일련번호를 촬영해 유통 경로 확인을 요청할 수 있게 했다. 현정은 허위 지급 전표와 실제 은행 거래를 분리해 자료를 정리했다. 소라는 현장에 있던 주민의 동의를 얻은 진술만 모았다. ‘모두가 거부했다’고 멋대로 적지 않았다. 몇 사람은 상황을 더 알아보겠다고 했고, 그들의 주저함도 하나의 선택이었다. 그때 프린터 안쪽에서 잉크 묻은 작은 종이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거부권 행사자의 가족 1인 자동 수익 배분] 우빈은 그것을 보며 알았다. 상대는 동의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보다, 대신 동의했다고 적을 한 사람을 아직 찾지 못한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승합차 남자는 서류를 걷어 넣고 물러났다. 출발 직전 그가 우빈만 들으라는 듯 속삭였다. “당신 아버지는 이미 돈을 받았습니다.” 우빈은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납품 대금이요?” “그게 아닙니다. 가족을 지켜 주는 돈. 그분이 서명한 영수증이 있어요.” “원본을 확인하겠습니다.” 남자의 미소가 잠시 멈췄다. 그가 문을 닫자 차량 뒷유리에 붉은 글자가 나타났다. [보호금 최초 수취자: 정태수] [1996-10-08 / 현금 800,000원] 우빈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수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팔십만 원이라면 기억난다.” “그 돈, 왜 받으셨어요?” “나무 상자 납품 잔금이었다. 영수증도 썼지. 그런데….” 목소리가 잠시 끊겼다. “그 종이는 내가 서명한 게 아니야. 장비를 받은 쪽에서 서명해야 할 수령증이었어.” 같은 팔십만 원. 한쪽에서는 나무를 만든 사람의 임금이고, 다른 쪽에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족의 보호금이라고 적혀 있었다. 현정이 보내 온 옛 세금계산서 사본에는 거래 명목이 선명했다. ‘목재 외함 제작 및 납품 / 잔금 800,000원.’ 금고의 화면에는 다른 문장이 떴다. [계정 H-001 / 보호금 수령에 따른 평생 승계] [대금 전용 기록 확인 예정] 정우빈은 그제야 적의 의도를 이해했다. 아버지가 받은 돈을 없던 것으로 만들려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받은 돈의 이름을 바꾸어 가족 전체를 채무자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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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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