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자는 자료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중앙기록관리원 현관의 감시 영상에는 새벽 영 시 십이 분, 손에 종이 가방을 든 사람이 잠시 서 있는 모습만 남았다. 얼굴은 모자와 우산에 가려져 있었고, 출입문을 통과하지 않았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종이 가방도 이내 다시 들고 사라졌다.
“이게 삭제 명령을 내린 사람일까요?” 소라가 물었다.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현정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 “누군가 이 근처에 있었다는 사실과 원본 장치의 수신자라는 주장은 별개예요.”
우빈은 금고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정말 문선영 씨라면, 더는 이름을 찾아내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그들이 잘못된 파일을 내보내려 한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필요해요.”
목소리는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우빈은 그 침묵이 거절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절이라면 기다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오전 열 시가 되자 현정에게 짧은 편지가 전달됐다. 전자 우편이 아니라, 관리원 대표 주소로 온 등기였다. 발신인은 ‘기록 증인’이라고만 적혀 있었고, 정식 접수 번호가 붙어 있었다. 현정은 수신 기록을 남기고 공개 범위 안내문을 함께 준비했다.
편지 첫 장에는 단 한 문장이 있었다.
‘나를 찾기 전에, 내가 거절했던 요청을 다시 확인해 주십시오.’
다음 장에는 1998년 동림기록 통신 명령의 목록이 적혀 있었다. 원본 주소나 보호대상자 이름은 없었다. 작업 구분, 요청한 부서, 처리 결과만 남겨 놓은 축약 목록이었다.
[03:13:52 / 통합 수령 목록 제출 요청 / 외부 결제실]
[03:14:08 / 보호대상자 정보 격리 / 기록실]
[03:14:09 / 격리 해제 및 자료 삭제 요청 / 외부 결제실]
[03:14:11 / 격리 해제 거부 / 기록실]
지금까지 없었던 마지막 줄이었다.
“삭제 명령이 처리 거부됐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건 누구의 성명보다 이 시각들이네요.” 우빈이 말했다.
강재는 목록이 원본 파일의 일부분에 해당하는지 검토했다. 목록의 요약값과 물리적 봉인함의 인계 기록이 일치했다. 다만 이 요약만으로 외부 결제실의 실제 담당자를 특정할 수는 없었다.
“외부 결제실에서 누가 작업했는지는 다시 찾아야겠군요.”
소라가 편지를 넘기려 하자 작은 메모가 떨어졌다.
‘이 문서는 공개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내 생존 여부와 현 거주지는 공개 자료에 포함하지 마십시오.’
“생존 여부도요?” 우빈이 되물었다.
현정이 답했다.
“그게 신원을 확인할 때 중요한 정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 공개할 수 있는 증거는 이미 충분해요. 먼저 이 사건과 관련한 사실을 입증하면 됩니다.”
오후에는 진짜 증인이 음성 연결에 응답했다. 전화는 기록관리원 직원이 주관하는 비공개 접수 회선으로 걸려 왔다.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가 녹음되는 범위와 기록의 목적을 확인한 뒤에야 말을 시작했다.
‘1998년 11월 3일 새벽에 저는 보호대상자 명단을 다른 문서와 합치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저는 거부했습니다. 그 뒤로 제 사번이 잘못된 명령의 실행자로 표시됐고, 이름을 공개하면 그 명령에 책임을 진 사람으로 처리된다는 안내가 나타났습니다.’
우빈은 숨을 참았다.
“금고가 이름을 지운 겁니까?”
‘제 명단이 비워진 건 사실입니다. 다만 누가 어떤 방법으로 그랬는지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기록은 실제로 사라졌고, 어떤 기록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가렸을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입니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진실을 확인하는 겁니다. 제가 그날을 지키려 한 이유는 사람을 살리려는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부는 그 약속을 채무로 바꾸었어요.’
우빈은 자신의 첫날을 떠올렸다. 가족의 빚을 없애 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금고를 열었고, 다른 사람의 삶을 덮는 괴물을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모든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반드시 정답이 되는 사람 한 명을 찾아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여성의 증언은 다른 길을 가리켰다.
“당신의 현 위치는 묻지 않을게요. 공개 가능한 진술만 확인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성은 자발적으로 한 문장을 덧붙였다.
‘저는 삭제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넘기지도 않았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자료실 공기가 무거워졌다. 금고 화면에는 새로운 심사 창이 떠올랐다.
[증언 확보 / 명시적 동의 범위: 명령 처리 경위]
[자동 소유권 승계 근거: 약화]
[최초 기록 봉인: 유지]
그때 복도 끝의 그림자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검은 양복의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작은 영수증들이 바닥에 일렬로 놓였다. 영수증에 적힌 금액은 모두 0원이었다.
맨 마지막 영수증에는 단 한 가지 항목이 있었다.
‘보호 명령으로 발생한 손실의 최종 부담자.’
그 아래에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우빈은 영수증을 밟지 않았다. 그는 문선영의 진술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넘기지 않는다는 말. 그 말은 처음으로 금고가 요구하는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처럼 들렸다.
“이제 원본을 연다는 게 아니라,” 그가 말했다. “누가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는지부터 확인하면 되겠네요.”
영수증들이 일제히 뒤집혔다. 뒷면에는 낯선 회사의 문양이 찍혀 있었다.
[외부 결제실 / 손실 보전 청구서 발행 대기]
금고를 만든 사람은 아직 계산을 끝내지 않았다.
제15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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