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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57화
PAYLUA ORIGINAL · 제157화

157화. 증언자가 지운 마지막 줄

빚을 먹는 금고 · 2,356자

오프라인 책장
봉투를 열어도 된다는 허락은 그날 밤에 왔다. 금고의 목소리는 봉투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했다. 보존 명령의 목적과 2010년 전산 이관 과정의 오류를 설명하는 내용은 읽어도 되지만, 봉투 안쪽 가장자리의 연락처는 보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제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누가 알아도 되는 정보가 아닙니다.” 우빈은 휴대전화 스피커를 낮췄다. 어머니 이명숙이 옆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럼 봉투 전체를 읽지 않겠습니다. 박현정 씨와 함께 공개해도 되는 부분만 확인할게요.” ‘그렇게 해 주세요.’ 다음 날 현정은 기록관리원 법무 담당자와 보존 담당 직원의 입회하에 봉투를 확인했다. 사람이 찾을 수 있는 연락처 정보가 있다면 기록자가 허락한 범위 밖으로 복제하지 않기로 했다. 종이는 누렇게 바랬지만 글씨는 선명했다. ‘1998년 11월 3일 03:14. 아동 보호대상자와 외부 대피자 정보를 수령 확인 대상에서 분리하고, 접근 권한이 제한된 보존 대상으로 지정함.’ 다음 줄에는 이유가 적혀 있었다. ‘통신 지시가 보호대상자 명단을 물품 반출 명세와 합산하도록 요구함. 인명 정보의 목적 외 사용을 거부함.’ 우빈은 목이 말랐다. “사고 전에 이미 사람을 물건처럼 처리하려 했군요.” 현정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사고 이전에 인명 명세와 물품 반출 기록을 합산하려는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됩니다. 사고가 날 걸 알았다는 것과는 아직 다른 이야기예요.” “그렇죠.”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이 일에 너무 오랫동안 매달려 모든 수수께끼를 한꺼번에 풀고 싶어졌다. 그러나 과거의 한 사람이 남긴 정확한 문장을 존중하려면, 거기 없는 사실을 덧붙이지 말아야 했다. 소라가 다음 줄을 읽었다. ‘제3채널의 증언과 연락처는 증언자의 별도 동의가 없으면 재생하거나 열람하지 않을 것.’ 서명 대신 작은 세모가 그려져 있었다. ‘기록원 M / 보존 요청 접수.’ 이름이 아니라 역할이었다. 누군가 후일 확인을 요청할 때까지 나눠 놓은 자료였다. 마지막 장에는 검게 칠해진 한 문장이 있었다. 거친 줄을 여러 번 그어 의도적으로 지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현정은 잉크를 걷어 낼 수 있는지부터 묻지 않았다. 이 문서를 직접 작성한 사람의 삭제 의사를 우선 확인했다. “왜 지우셨을까요?” 우빈이 물었다. 소라가 고개를 저었다. “어떤 문장이든 작성한 사람이 지워 달라고 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 사람이 보호하려는 건 다를 수 있죠.” 그날 오후, 정해원과의 옛 음성 기록에서 작은 단서가 나왔다. 사고 전날 그는 기록실과 여러 차례 통화한 내역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 주소를 경비실에 넘기지 마세요. 밤에 누가 찾아가더라도 먼저 확인하십시오.’ 문선영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누가, 무엇을, 왜 숨기려 했는지 방향이 잡혔다. 누군가 그날 보호대상자의 주소를 가져가려 했고, 기록실은 그것을 막았다. 저녁 여섯 시를 조금 넘겼을 때 금고가 다시 소리를 냈다. ‘마지막 줄을 보셨습니까?’ “검게 지워져 있는 건 봤어요. 읽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짧은 감사 뒤 여자는 한동안 조용했다. 이명숙이 방에서 나와 귤 접시를 내밀었다. 우빈은 접시를 받아 놓고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를 기다렸다. ‘그 줄에는 주소가 있었습니다. 열두 살 아이를 보내기로 한 곳의 주소요. 그 아이가 나중에 살아서 다른 곳으로 갔다면 그 주소는 더 이상 그 사람을 찾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우빈은 금고를 돌아봤다. “그 주소가 지금 필요한가요?” ‘그 주소가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소 자체를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여자의 말이 끝나자 벽시계가 잠시 멈췄다. 우빈은 처음으로 이 대화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만들어진 녹음이 아니라, 지금 어딘가에서 실제로 응답하는 사람일 가능성을 크게 느꼈다. 그때 어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우빈아. 누구랑 이야기하니?” “오래된 기록을 지켰던 분이요.” 명숙은 접시에 마지막 귤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분이 괜찮으면 고맙다고 전해 줘. 남의 아이들 이름을 함부로 넘기지 않은 거잖아.” 우빈은 그 말을 그대로 전했다. 금고 안에서 누군가 작게 웃었다. 웃음 끝에 숨이 한 번 끊겼다. 정민이 기억하던 바로 그 버릇이었다. 그러나 곧 화면의 색이 변했다. [보존 증언 수집 완료] [제3채널 녹음본 자동 생성] [배포 예약: 24:00] 금고는 그들의 대화를 ‘동의된 공개 증언’으로 바꾸려 하고 있었다. 우빈이 확인한 시간은 밤 여덟 시 십삼 분. 이제 네 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는 소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웠던 마지막 줄을 지키려면, 방금 한 대화부터 지켜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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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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