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는 그 이름을 기억하는 데 하루가 걸렸다.
우빈이 동림기록의 야간 당직 명세와 제3채널 작업 지시서를 보여 주었을 때, 태수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아들이 떠나기 직전 그를 붙잡았다.
“문 씨라고 했지. 문선영이었던 것 같다.”
태수는 식탁에서 손가락으로 네모 하나를 그렸다.
“내가 자물쇠를 잠그고 돌아섰을 때, 기록실에서 누가 종이 상자를 옮기고 있었어. 그 여자가 말했지. 사람 수가 틀렸다고.”
“그분이 문선영 씨였어요?”
“그때 다른 사람이 문 선생이라고 불렀던 것 같아. 선영인지 선경인지 확신은 못 한다.”
우빈은 이름을 굵게 적지 않았다. ‘문선영 추정’이라고 메모했다. 오래된 기억은 사람에게 출발점을 줄 수 있지만 끝을 보장하지는 못했다.
중앙기록관리원에서 서강재는 1998년 지방세 지급 자료의 일부를 확보했다. 정산 명세에는 동림기록 야간 근무자 세 사람의 사번이 있었다. 041, 042, 그리고 이름 없이 000이라고만 적힌 사번.
“000이 M-00일까요?” 소라가 물었다.
“지금까지는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정확한 연결 증거가 없어요.”
박현정은 계약업체의 낡은 보험 명세를 펼쳤다. 000번 사원은 퇴직 처리되지 않았다. 사망이나 실종으로 처리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1998년 11월 3일 이후 ‘재직 여부 확인 불가’라는 문구와 함께 지급 명세에서 빠져 있었다.
“퇴직한 사람이라고 적으면 퇴직 날짜라도 있어야 하죠.” 현정이 말했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들은 당시 동림기록의 대표였던 남자의 증언을 찾았다. 지금은 은퇴해 바닷가에서 작은 문구점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회사 운영 당시 기록실을 자주 내려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선영이라는 이름을 듣자 오래된 연필을 내려놓았다.
“선영 씨가 있었죠. 늘 퇴근할 때 서랍을 두 번 확인하던 사람. 외부에서 온 아이들 자료는 아무나 보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분은 어디로 갔습니까?” 우빈이 물었다.
남자는 대답 대신 긴 숨을 내쉬었다.
“그날 이후 다들 그 사람 얘길 피했어요. 난 분명 급여 명부에서 이름을 본 적이 있는데, 정산 서류를 찾으면 사번만 남아 있었거든요. 내가 잘못 기억하나 싶었죠.”
“실제로 사라진 분입니까?”
“몰라요. 그게 제일 미안합니다. 알아보러 가지 않았어요.”
우빈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남자는 다음 말에서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내 직원이었으면 급여를 줬어야 했어요. 지금이라도 기록이 확인되면 지급할 방법을 찾아볼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겠군요.”
그것은 금고가 만드는 거창한 계약과 달랐다. 실제로 일한 사람에게 돈을 지급해야 한다는 단순한 책임이었다. 우빈은 남자의 말이 더 믿음직하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현정은 자료실에서 모두를 불렀다. 원본 보관함의 감시 장치에 새로운 출입 흔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출입 요청: 000]
[성명: 미상]
[출입 시각: 1998-11-03 03:14]
현재의 시각이 아니라 옛날 시각이 통째로 들어 있었다. 보존실의 자동문은 잠겨 있는데도 그 앞 바닥에 젖은 발자국이 하나씩 찍혔다. 발자국은 문 바깥에서 시작해 실물 봉인함 앞에서 끝났다.
우빈은 문손잡이를 내려다봤다. 손잡이에 붙은 차가운 이슬이 천천히 글씨로 변했다.
‘지금 열면 이름이 노출됩니다.’
“열지 않을 거예요.”
우빈이 말하자 발자국이 멈췄다. 그런데 바로 뒤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마른 종이 다발을 발로 밟는 소리였다.
검은 장갑을 낀 형상이 복도 모퉁이에서 나타났다. 얼굴에는 사람의 얼굴 대신 출근 도장이 찍힌 카드가 붙어 있었다.
[기록 000 / 현직 보관인 자동 승계]
[대상자: 박현정]
현정의 직원증 이름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지난번 제1보관관 사건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현정은 뒷걸음질치지 않았다. 자신의 재직증명서를 꺼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기록을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998년 동림기록 직원이 아닙니다.”
검은 형상이 빠르게 다가왔다. 종이 카드가 현정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우빈은 망치 손잡이로 날아오는 카드를 쳐 냈다. 카드는 벽에 부딪혀 백 장의 출근표로 흩어졌다. 카드마다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
“누구든 하나를 쓰면 그 사람이 대신 책임을 받는군요.” 소라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린 또 이름을 쓰지 않아야겠죠.”
강재가 보험 명세와 퇴직 기록의 공란을 띄웠다. 현정은 여전히 이름이 남아 있는 업무 일지를 펼쳤다.
“현재 보관자의 역할은 원본의 보존까지입니다. 과거의 고용관계와 책임을 인수하지 않습니다.”
출근표가 허공에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그 틈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요. 대신 일한 적 없는 사람을 내 자리에 세울 수는 없습니다.’
검은 형상에 찍힌 출근 도장이 갈라졌다. 작은 금고가 입처럼 열리더니 그 안에서 가느다란 종이끈이 흘러나왔다. 종이끈 끝에 이름 하나가 나타났다.
‘문선영.’
우빈은 즉시 그것을 입으로 읽으려다 멈췄다. 누군가 일부러 내민 이름일 수 있었다. 대신 직원증 카메라에 그 장면을 남겼다.
그 순간 금고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 이름은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공개하겠다고 허락한 이름은 아닙니다.’
종이끈은 곧바로 타들어 갔다. 남은 재가 바닥에 숫자 세 개를 만들었다.
000.
우빈은 이해했다. 고작 이름을 알아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었다. 지금 그 이름이 누구에게 들리고, 누가 그 이름을 이용할 수 있는지까지 문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는 소라와 현정을 돌아봤다.
“우리가 먼저 묻죠.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증언하고 싶은지.”
복도 끝의 발자국들이 천천히 사라졌다. 대신 보존실 문 앞에 봉투 하나가 나타났다.
‘문선영 증인 / 공개 가능한 사실만 기재.’
봉투는 봉인되어 있었고, 받는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제15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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