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빈이 본 그림자는 폐역의 방범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관리 직원은 영상을 여러 번 확인하고도 같은 대답을 했다. 정식 허가를 받은 일행이 출입한 장면은 보였지만, 문 앞을 가로지른 종이 가방의 주인은 없었다. 화면의 시간 표시가 아주 짧게 두 번 깜박였을 뿐이었다.
“그림자가 안 찍혔다고 사람이 없었다는 말도 못 하겠네요.” 소라가 말했다.
“맞아요. 그렇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현정이 답했다.
그들은 1998년 동림기록 야간 당직자의 명단을 확인하기로 했다. 옛 회사가 폐업하면서 인사 장부 대부분은 흩어졌지만, 사고 당시 안전 점검을 의뢰받은 외부 기관에는 비용 정산 명세 일부가 남아 있었다. 서강재는 명세에서 이상한 항목을 찾았다.
‘야간 통신 기록원 1인 / 수당 지급 보류.’
받는 사람의 이름이 칠해져 있었다. 처음부터 빈칸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인쇄된 글자 위에 검은 잉크를 두껍게 발라 놓은 흔적이었다.
“돈을 안 준 것도 문제인데, 기록원 이름을 가릴 이유가 없잖아요.” 우빈이 말했다.
강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름을 알아내려고 용매를 쓰는 건 보존 규정상 신중해야 해요. 대신 같은 회계 항목이 다른 곳에 남았는지 찾겠습니다.”
며칠 전 확보한 폐역 표찰 사진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사진의 가장자리에 붙어 있던 관리 장비 번호가 외부 점검업체의 기록과 일치했다. 현정은 업체에 확인 가능한 범위의 작업 지시서를 요청했다.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소라는 이정민을 찾아갔다.
이정민은 작은 임대주택의 창가에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있었다. 오래도록 사라졌다 돌아온 사람에게 과거 이야기는 늘 조심스러웠다. 소라는 책상에 녹음기를 놓지 않고 먼저 물었다.
“엄마, 예전에 기록실에서 들었던 목소리 중에 기억나는 사람이 있어?”
정민은 물뿌리개를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기억나. 한 사람은 숫자를 빨리 읽었고, 다른 사람은 그 숫자를 지우려고 했어.”
“세 번째 사람은?”
“세 번째가 있었어?”
소라는 설명했다. 미결이 관리 프로그램이 된 경위, 1998년 새벽에 두 명령이 충돌한 로그, 삭제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 보존된 이름의 흔적. 정민은 단번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자기가 알던 일을 현재의 설명에 맞춰 다시 꾸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하나야.”
정민은 서랍에서 오래된 손수건을 꺼냈다. 모서리에 하얀 실로 작은 세모가 수놓아져 있었다.
“누군가 내게 이걸 줬어. 문을 여는 열쇠는 없다고. 대신 다른 사람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 주라고 했어.”
소라가 손수건을 펼쳤다.
“누가 줬는지 기억나?”
“기억 안 나. 그런데 목소리가 이상했어. 말을 끝낼 때마다 숨이 한 번 멎는 것 같았거든.”
그날 밤 현정의 메일로 1998년 외부 업체의 작업 지시서가 도착했다. 문서에는 동림기록이 ‘음성 확인 3채널’을 설치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하나는 현장 인원 확인용, 하나는 명령 전달용, 마지막 하나는 이의 제기자를 위한 독립 채널이었다.
세 번째 채널의 녹음 파일명은 남아 있었지만, 정작 길이가 0초였다.
“말이 나오지 않은 게 아니라 녹음을 남기지 않도록 만든 거군요.” 강재가 말했다.
현정은 문서의 주석을 읽었다.
‘제3채널 음성은 자동 수령 기록으로 전환하지 않는다. 녹음 금지 요청을 우선한다.’
소라가 손수건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엄마가 기억하는 사람이 이 채널을 썼을지도 몰라요.”
그때까지 우빈은 세 번째 목소리를 찾으면 이름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문서의 의미는 달랐다.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도록 일부러 기록하지 않은 목소리. 녹음이 없는 것은 결함이 아니라 약속일 수 있었다.
강재가 복원된 음향 파형을 화면에 띄웠다. 그가 가진 것은 원본 녹음이 아니라, 다른 채널의 끝부분에 희미하게 남은 울림이었다. 두 목소리 사이에 일정한 공백이 있었다.
우빈은 몇 번 듣고 눈을 감았다. 공백 뒤에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세 번 치는 소리가 났다.
“제가 어제 보관함에서 들은 신호예요.”
“같은 사람이 내는 신호라고 단정하진 마세요.” 현정이 말했다. “그래도 확인할 가치는 있네요.”
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회의실의 디지털 녹음기가 제멋대로 켜졌다. 화면에 빨간 점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제3채널 기록 복원 요청]
[동의자: 김소라]
소라가 즉시 말했다.
“난 동의한 적 없어요.”
붉은 점이 다시 켜졌다. 이번에는 정민이 건넨 손수건에서 종이처럼 마른 소리가 났다. 하얀 세모 무늬가 검게 변하더니 가는 글씨가 실밥 사이로 솟았다.
[음성 소유권 이전 / 목격자 가족에게 우선]
소라는 손수건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찢지도 않았다.
“이건 엄마가 나한테 준 물건이에요. 누가 녹음됐는지 몰라도, 그 사람의 목소리까지 받은 건 아니죠.”
소리 없이 회의실 조명이 흔들렸다. 강재는 장치 연결을 끊고 녹음기가 실제로 저장한 파일이 없음을 확인했다. 소라는 당시 화면 표시와 자신의 거부 발언을 별도의 기록으로 남겼다.
잠시 후 어두운 모니터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잘했습니다. 제 목소리가 기록되어야 한다면, 제가 먼저 허락하겠습니다.’
여자는 계속 말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제가 이름을 숨기는 이유를 알아냈어요. 숨긴 건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주소입니다.’
우빈의 등줄기를 따라 차가운 것이 흘렀다.
“어떤 주소요?”
화면은 다음 문장만 남긴 채 꺼졌다.
[제3채널 보호 대상 / 주소 1건]
[1998년 당시: 비공개]
[2026년 현재: 누군가 조회 중]
제15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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