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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54화
PAYLUA ORIGINAL · 제154화

154화. 폐역에 남겨진 승강장

빚을 먹는 금고 · 2,727자

오프라인 책장
폐역 제4승강장은 지하철 노선도에 없었다. 서람시 도시철도에는 한때 화물용 연결선이 있었다. 여객 열차가 들어온 적은 없고, 지금은 정비 자재를 두는 폐쇄 구역으로 분류됐다. 오래된 공사 문서에는 네 번째 승강장이라는 이름 대신 ‘4번 상하차면’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또 이름만 층이고, 이름만 승강장이네요.” 우빈이 말했다. 박현정은 장난처럼 웃지 않았다. “정확한 이름을 알았으니 실제로 방문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운행 시설이면 출입 제한부터 확인해야 해요.” 그들이 허가를 받아 들어간 것은 다음 날 낮이었다. 관리 직원 두 사람이 동행했고, 별도의 안전 조끼와 손전등을 지급받았다. 철로에 내려서는 대신 상하차면을 따라 난 점검 통로에서 자료를 확인했다.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먼지가 흘렀다. 오래된 타일은 물기를 먹어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공사 표지판 뒤에는 작게 ‘동림기록 반출 대기’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강재가 사진을 찍었다. “여기에서 문서를 옮겼군요. 그런데 1999년에 물류 구역이 폐쇄됐으니 그 이후에도 계속 쓴 건 아닐 겁니다.” “그럼 지금 남아 있는 건 뭘까요?” 소라가 물었다. 우빈은 대답하지 못했다. 상하차면 끝의 철제 문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 안쪽에서는 누군가 긴 판자를 긁는 소리가 났다. 금고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목 뒤가 서늘해졌다. 관리 직원이 문을 열려고 하자 현정이 막았다. “잠깐만요. 봉인 상태부터 사진으로 남겨 주세요. 안쪽에 시설물이 있다면 관리자가 확인하고요.” 문에는 도시철도공사의 폐쇄 표찰이 붙어 있었지만, 바로 아래에 또 다른 표찰이 겹쳐 있었다. ‘1998년 11월 3일 03:14 / 임시 격리.’ “그때부터 붙어 있던 걸까요?” 소라가 손전등을 비췄다. “표찰 자체는 새것 같아요. 물이 덜 먹었어요.” 강재가 가장자리를 찍었다. 새 표찰 아래의 원형 스티커를 확인하는 것으로도 두 문서가 다른 시기에 붙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제 봉인 해제는 진행하지 않았다. 우빈은 귀를 기울였다. 문 너머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 이름을 적으면 찾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 다음은 아주 작은 남자아이의 울음소리였다. ‘그러니까 대신 받으라고요.’ 우빈은 손끝으로 문짝을 두드릴 뻔했다. 하지만 150화에서 들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최초 기록을 열지 말라는 증언 조건. 만약 이 문이 원본 서류와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을 여는 순간 누군가의 주소가 금고에 노출될 수 있었다. “여기에 사람이 있나요?” 그가 문 너머로 묻자 소리는 끊겼다. 그런데 옆에 있던 관리 직원이 의아해했다.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요.” “저 사람도 안 들리나 봐요.” 소라가 속삭였다. 그 순간 우빈의 휴대전화 화면에서 숫자가 번졌다. [청각 기록 수령] [목격자: 정우빈] [원본 공개 대리 승인: 대기] “아니요.” 우빈이 낮게 말했다. “들은 걸로 서명하진 않습니다.” 문 안쪽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검은 실 같은 것들이 문틈으로 기어 나와 두 사람의 발목을 감았다. 우빈이 뒤로 물러나자 실들이 바닥 타일을 훑으며 따라왔다. 소라는 넘어질 뻔하다가 안전 난간을 붙잡았다. 철제 문에 기괴한 두 손바닥 자국이 나타났다. “문을 열라고 유도하는 거예요!” 소라가 외쳤다. 관리 직원들은 실제로 문에 아무 이상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우빈의 손목에는 검은 줄이 분명히 닿아 있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손에 든 망치를 내려다봤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작은 공구. 문을 부수면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우빈은 관리 직원에게 말했다. “안쪽 시설의 안전 여부는 오늘 열람 범위가 아닙니다. 문이 이상하니 이 구역에서 먼저 나오겠습니다.” 일행은 천천히 후퇴했다. 빛이 환한 통로로 돌아오자 검은 실이 힘을 잃었다. 강재가 손목의 자국을 확인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밖에 나왔을 때 소라는 역사의 낡은 환기 도면을 펼쳤다. 문 뒤 공간은 사무실이 아니었다. 외부 공기를 배출하는 길고 좁은 덕트실이었다. “그 안에서 아이가 울 이유가 없네요.” 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들은 음성은 실제 공간의 사람과 무관할 가능성이 큽니다. 누군가 기억 속 소리를 미끼로 쓴 거죠.” 그날 저녁, 관리 직원이 촬영한 표찰 사진과 강재가 확인한 이관 장부가 도착했다. 1999년의 동림기록 반출 명세 맨 끝에는 ‘원형 자료 격리 보존, 진짜 수령자 미확정’이라는 문장이 남아 있었다. 바로 아래에는 다른 필체로 적힌 낙서가 있었다. ‘삭제를 원하면, 먼저 보호 기록이 삭제됐다고 믿게 만들어라.’ 우빈은 낙서를 두 번 읽었다. 처음부터 삭제가 목적이라기보다, 모두가 삭제됐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목적일 수 있었다. 그러면 살아 있는 사람이 기록을 찾으려 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문을 열지 않으셨군요.’ “당신은 저 안에서 울던 아이를 압니까?” 우빈이 물었다. ‘그 목소리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의 자리를 원하는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그게 누구예요?” ‘그들은 빈칸을 사람으로 바꾸지 못하자, 이제 사람을 빈칸으로 바꾸려 합니다.’ 먼 데서 열차가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역에는 오래전부터 열차가 서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빈의 휴대전화에는 도착 안내가 떴다. [제4승강장 / 승객 1명 도착 예정] [승객명: 보존 증인] 그림자 하나가 상하차면 폐쇄문 앞을 지나갔다. 손에는 낡은 종이 가방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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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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