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정은 세 개의 시계를 한자리에 모았다.
하나는 1998년 삼목 철공소의 벽시계가 찍힌 사진, 하나는 그날 야간 근무자의 출근 기록, 마지막은 2010년 전산 이관 장부에 적힌 서버 시각이었다. 오래된 벽시계는 사진 속에서 세 시 십이 분을 가리켰다. 출근 기록에는 ‘03:14 교대 대기’라는 낙서가 있었고, 전산 장부에는 ‘03:14 삭제 완료’라고 적혀 있었다.
“전부 같은 시간을 가리킨다고 해서 같은 사건일까요?” 현정이 물었다.
서강재가 돋보기를 내려놓았다.
“기록을 옮길 때 분 단위까지만 복사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초 단위는 없는 자료입니다.”
우빈은 보관실 벽에 붙은 날짜를 다시 살폈다.
“그런데 왜 11월 3일일까요? 사고는 4일 새벽에 났다고 들었는데요.”
“사고 전날에 다른 사고가 있었다면?” 소라가 물었다.
네 사람은 삼목 철공소의 야간 배치표를 찾았다. 지금까지 조사한 문서는 대부분 4일 이후에 집중되어 있었다. 살아남은 노동자가 누구인지, 누가 퇴근하지 못했는지, 어디에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는지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사고 하루 전의 평범한 작업 기록은 별 의미가 없어 보여 지나친 적이 많았다.
정태수에게 영상 통화를 연결하자 그는 화면을 들여다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이 배치표는 내가 쓰던 게 아니다.”
“글씨가 다릅니까?” 우빈이 물었다.
“아니. 사람 배치가 달라. 야간 작업자가 열둘인데 비상 대피 연습에 참여한 사람이 열넷으로 적혀 있어. 그날 우리는 연습할 시간이 없었어.”
태수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전날 밤, 창고 쪽에 낯선 사람들이 왔던 건 기억난다. 소방 점검이라고 했지. 모자에 회사 이름 대신 노란 세모가 붙어 있었어.”
우빈은 소라를 보았다. 새벽쉼터에서 발견한 표시와 같았다.
“아버지, 그때 누가 출근표를 맡았어요?”
“경비실 옆에 있던 기록실 여자였어. 성은 문 씨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얼굴도 잘 기억 안 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사람 수를 고치려고 하다가 누군가에게 막혔어.”
“무슨 말을 했는데요?”
태수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사람이랑 상자를 같은 칸에 적지 말라고. 그 말은 확실히 기억나.”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강재는 보존 요청의 전자 대조표를 확대했다. 원본 명령어를 뜻하는 오래된 코드가 두 줄 남아 있었다.
[03:14:08 / P-LOCK / 대상: 미확정 인명 기록]
[03:14:09 / D-CLEAR / 대상: 미확정 인명 기록]
겨우 한 초 차이였다.
“보호 잠금 다음에 삭제 명령이 실행됐네요.” 강재가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 삭제됐다는 뜻은 아니에요. 실행 요청인지 결과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현정이 다음 열을 가리켰다.
[결과 / 첫 번째 명령: 대상 격리]
[결과 / 두 번째 명령: 처리 거부]
우빈의 눈이 커졌다.
“누가 기록을 지켰고, 누군가 바로 지우려고 했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2010년에는 두 번째 줄의 ‘처리 거부’를 잘라 내고 삭제가 끝난 것처럼 적었습니다.”
소라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러면 금고가 지금까지 보여 준 삭제 기록은, 실패한 명령을 성공했다고 꾸민 거네요.”
그들이 파일을 저장하는 동안 지하에서 한 번 전기가 흔들렸다. 복도 전등이 끄덕이듯 켜졌다 꺼졌다. 멀리서 철제 사물함 문들이 순서대로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왜 저러죠?” 우빈이 물었다.
현정이 직원들을 확인하러 나간 사이, 회의실의 출입문이 천천히 닫혔다. 손잡이에 묶여 있던 흰 출입증 끈이 까맣게 변했다. 끈에서 글자가 불어나며 손목을 감으려 했다.
[보존 실패 책임 / 기록실 직원 1인에게 귀속]
[실패 명령 실행자 / 면책]
우빈은 끈을 잡아당겼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근육에 힘을 주자 종이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소라가 재빨리 출입증의 인쇄면을 휴대전화로 비췄다.
“보세요. 이건 임금도, 구호비도 아니에요. 누가 지운 책임을 보존하려던 사람에게 씌우고 있어요.”
강재가 첫 번째 명령의 결과를 화면에 띄웠다.
“삭제 처리는 거부됐습니다. 그러니 보존 책임자가 삭제의 원인이었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아요.”
종이가 우빈의 손목에서 풀렸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더 몸을 뒤틀었다. 이번에는 손잡이를 붙잡고 있던 소라의 그림자를 베꼈다. 단순한 종이 괴물이 아니라, 누가 설명하는지에 따라 책임자를 바꾸는 장치였다.
현정이 돌아와 비상 출입문을 열었다. 소라는 괴물이 문턱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걸 확인하고 손목에 붙은 서류 조각을 조심스럽게 떼어 냈다.
그 조각의 뒷면에는 작은 회사 표기가 있었다.
‘삼목 기록실 부속 계약사 / 동림기록’
태수가 말한 문 씨라는 여자와 동림기록. 우빈은 전혀 다른 출입구 두 개가 같은 복도로 이어지는 것처럼 느꼈다.
그때 금고에서 목소리가 돌아왔다.
‘두 명령을 보셨군요.’
“당신이 첫 번째 명령을 내렸습니까?” 우빈이 물었다.
‘제가 거절한 것은 삭제가 아닙니다. 사람 이름을 짐표에 적으라는 지시였습니다.’
“그럼 당신은 누구죠?”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이름을 읽어 드리면, 그 순간부터 누군가 그 이름을 받을 사람을 찾을 겁니다.’
우빈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허위 열람 로그를 떠올렸다. 이름을 아는 것과 그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럼 지금은 말하지 마세요. 이름 대신 당신이 남긴 일을 확인하겠습니다.”
금고 안에서 오래된 종이를 펼치는 소리가 났다.
‘제가 남긴 건 하나의 명령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게 만든 작은 서랍입니다.’
새로운 관리번호가 화면에 떴다.
[98-DL / 미확정 기록 임시 서랍]
[보존 위치: 존재하지 않는 4층]
중앙기록관리원은 지상 3층짜리 건물이었다.
제15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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