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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51화
PAYLUA ORIGINAL · 제151화

151화. 문을 열지 말라는 증인

빚을 먹는 금고 · 2,519자

오프라인 책장
금고가 말을 건 뒤에도 정우빈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주방에서는 전기밥솥의 보온등이 켜져 있었다. 어머니 이명숙은 마트에서 늦게 돌아온 아들에게 미역국을 데워 놓고 방으로 들어간 참이었다. 식탁의 김이 서서히 식는 동안, 우빈의 방 한쪽에 놓인 검은 금고만 비정상적으로 차가웠다. [보존 명령 증인 / 접촉 가능] [증언 조건: 최초 기록을 열지 말 것] “열지 말라는 건 어느 쪽입니까?” 우빈은 금고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물었다. “지금 여기 있는 금고요? 아니면 1998년 최초 기록이요?” 잠시 후 금고 안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흘렀다. ‘제가 무엇을 열어서는 안 되는지 설명하려면, 당신이 먼저 그 기록의 제목을 정확히 말해야 합니다.’ “제목을 모르면 증언도 못 듣습니까?” ‘모른다고 기록하세요.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게 하는 건 제가 겪었던 일입니다.’ 잡음이 끊겼다. 우빈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황동 열쇠를 내려놓았다. 첫날의 자신이었다면 저 조건을 단순한 협박이라고 생각하고 당장 뚜껑을 열었을 것이다. 빚을 지워 주는 물건 앞에서는 누구나 빨리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 조급함 때문에 1억 8천만 원이라는 숫자가 종이 괴물이 되어 골목을 뛰어다녔다. 우빈은 금고의 화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만 사진 속에 해당 글자가 보이는지부터 확인했다. 이번에는 보였다. 몇 달 전만 해도 금고의 문장들이 휴대전화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의 손에 익숙해진 것은 초자연적인 힘이 아니라,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리해 기록하는 습관이었다. 그는 김소라와 박현정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제 방에서 목소리가 나왔어요. 제가 먼저 듣기 전까지는 누구 이름인지도 몰랐어요.” 현정은 화면 속 금고를 오래 바라봤다. “지금 뚜껑을 열지 않은 건 잘했어요. 물건 안에 실제 기록이 있는지, 이미 재생된 음성이 다른 데서 전송된 건지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그런데 1998년 11월 3일 새벽 세 시 십사 분이에요. 사고는 그다음 날이었잖아요.” 소라가 즉시 반응했다. “사고 전날 보존 명령을 내렸다는 거네요. 그럼 미리 위험을 알았을 수도 있고, 원래 진행하던 시험이었을 수도 있어요.” “둘을 구분할 자료가 필요합니다.” 현정이 말했다. “그리고 최초 기록은 아직 누구도 열지 말고요.” 다음 날 오전 세 사람은 중앙기록관리원에 모였다. 서강재는 2010년 전산 이관 목록을 출력해 놓았다. 오래된 테이프 보관함의 번호와 나중에 만든 전자 문서 번호를 나란히 놓은 표였다. 문제의 기록에는 제목이 두 개 붙어 있었다. [98-SM-03 / 미확정 보호대상 임시 봉인] [2010년 전산 표제 / 불량 채권 일괄 삭제] “같은 보관 번호인데 의미가 정반대입니다.” 강재가 말했다. “바꾸려는 사람이 일부러 그랬을까요?” 우빈이 물었다. “아니면 다른 문서가 같은 번호를 덮어썼을 수도 있어요. 아직은 둘 다 가능해요.” 현정이 봉인함 주변에 붙은 인계 표찰을 가리켰다. 표찰에는 봉인 해제 흔적이 없었다. 누구도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로 이관한 것이 아니라, ‘원형 봉인 유지’라는 지시가 여러 차례 재승인되어 있었다. 그 순간 복도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렀다. “보존실 삼 번 보관함의 원본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현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직 아무도 접근 허가를 신청하지 않았는데요?” 보존실로 달려간 네 사람의 눈앞에는 잠긴 채 놓인 보관함이 있었다. 봉인 띠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모니터에는 붉은 글씨가 켜져 있었다. [기록 열람 완료] [열람자: 정우빈] [대리 동의: 간주] 우빈이 물러섰다. “저는 만진 적도 없습니다.” 유리 너머 금고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손톱처럼 가느다란 검은 글자들이 화면 아래쪽에 달라붙었다. 그중 하나가 우빈의 이름을 흉내 내며 서명란으로 기어갔다. 소라는 화면을 가리켰다. “이건 열람 기록이 아니라 열람했다고 주장하는 기록이에요. 실제 접속 로그와 분리합시다.” 현정은 복수의 직원이 함께 확인하는 보존 절차를 시작했다. 봉인 띠를 손대지 않은 사실, 접근 권한의 미발급 상태, 감시 카메라에 나타난 출입 인원까지 차례로 기록했다. 강재는 허위 화면을 별도 장치로 촬영했다. 우빈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문을 열지 마십시오. 그들은 이제 열었다는 기록만으로도 사람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발신자는 없었다. 그러나 음성 메시지의 끝에는 아까와 다른 작은 소리가 섞여 있었다. 세 번의 금속 타격, 긴 침묵, 다시 한 번의 타격. 우빈은 목수였던 아버지가 작업실에서 문을 두드리던 방법을 떠올렸다. 잠긴 안쪽에 누가 있는지 묻고, 대답을 기다리기 위한 신호였다. ‘들리면 세 번 두드려 주세요.’ 그는 답장을 입력하지 않았다. 대신 탁자 모서리를 손끝으로 세 번 두드렸다. 잠시 후 잠긴 보관함 안에서 똑같은 소리가 돌아왔다. 보관함의 봉인은 여전히 온전했다. 그러므로 안쪽에서 대답한 것이 반드시 사람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누군가 그들을 처음부터 봉인을 열게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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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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